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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 후 진료 계속하는 이유는 의술 이전에 ‘나눔’이기 때문”[부처님오신날 특집] 조보연 중앙대병원 갑상선센터장
남수연 기자  |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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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5  13: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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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상성질환의 ‘명의’로 손꼽히는 조보연 교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불교를 접한 이후 매주 빠짐없이 법회에 참석하고 있다. 대각사에서 출범한 ‘룸비니불교학생회'의 초창기 회원이었으며 지금은 사단법인 룸비니의 이사장으로 단체를 이끌고 있다.

국내 갑상선질환 최고 권위자는 단연 조보연(72) 교수다.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을 거쳐 2010년 3월 문을 연 중앙대학교병원 갑상선센터 책임자로 전격 영입되면서 다시 한 번 이 분야 국내 최고 명의임을 입증했다. 올해 나이 일흔 둘, 외래환자 진료는 오전에만 보고 있지만 여전히 하루 70여명에 육박하는 환자들이 그를 찾는다. 정년퇴임 전, 서울대병원 재직 시절에는 매일 200여명에 달하는 환자가 몰렸다. 암을 비롯해 갑상선과 관련된 각종 질환에 대한 걱정에 짓눌려있는 환자들을 하루 종일 대하는 일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결코 녹록치 않은 중노동이다. 하지만 그의 별명은 ‘스마일맨’ ‘조도사’다. 늘 웃는 얼굴로 환자를 대하고 동료의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건네는 소소한 대화 속에도 느껴지는 범상치 않은 내공 때문이다.

갑상선질환 분야 국내 최고
‘명의’로 손꼽히는 권위자

2011년 정년퇴임 후에도
하루 환자 70여명 줄이어
찡그리는 일없어 ‘스마일맨’
“나눔이 삶의 가장 큰 기쁨”

고1 때 룸비니학생법회 인연
평생 빠짐없이 주말법회 동참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젊었을 때는 매일 비슷한 질환의 환자를 대하며 짜증이 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어느 때 부터인가 환자들과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알게 됐죠.”

그는 베풂이 아닌 나눔이라는 단어를 강조한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많이 가진 사람이 적게 가진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다. 윗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많이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나에게 있는 것을 나와 평등한 자리에 있는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야 말로 삶의 가장 큰 가치라 여긴다. 의학계 최고 권위자, 명의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지만 그의 삶을 지탱하는 기둥은 세간에 알려진 명성이 아닌 어린 시절부터 몸에 스며든 불교의 향기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1962년 추석이었다. 이제는 사라진 국도극장 앞. 경복고등학교 교복을 단정히 입고 전차를 기다리던 고등학교 1학년, 17살 조보연의 뺨을 대뜸 잡아끄는 손이 있었다. 위아래로 검은 옷을 입고 고무신을 신은 남자는 마치 길거리에서 조카를 만나기라도 한 듯 환히 웃는 얼굴이었다. “순진하기 그지없는 열일곱 살 고등학생이 갑자기 뺨까지 잡혔으니” 당황할 겨를도 없이 이름과 주소를 묻는 그에게 순순히 이실직고를 하고야 말았다. 수첩에 ‘신상정보’를 적은 그는 “다시 만나자”는 말만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별사람도 다 있다’ 싶었지만 곧 잊었다. 그리고 한 달 즈음 지난 10월 중순, 집으로 엽서 한 장이 배달됐다.

“법회가 열린다는 내용이었어요. 법회가 뭔지도 몰랐지만 룸비니라는 모임 이름 옆에 ‘총장 황산덕’이라는 석자가 눈에 들었어요. 당시 서울대 교수였는데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박정희의 5·16쿠데타를 비판하는 사설을 써서 유명했었죠. 그 일로 황산덕 교수는 고초를 겪었지만 저는 그분의 이름을 보고 관심이 끌렸어요. 엽서에 불교라는 말은 한 마디도 없었죠. 토요일 오후, 법회가 열린다는 곳으로 찾아갔어요.”

   
▲ 조보연 교수는 사찰을 순례하며 직접 찍은 사진과 조사한 자료를 엮어 출간했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 뒤편에 위치한 대각사였다. 룸비니는 당시 서울의 명문고등학교였던 경복고를 비롯해 서울고, 경기고 학생들이 주축이 된 학생법회였다. 30여명 정도 되는 학생들 가운데는 대학생도 몇 있었다. 이름을 적어갔던 검은 옷의 사내를 그곳에서 다시 만났다. 학생들은 그분을 ‘법사님’이라고 불렀다. 학생들이 모이자 법회가 시작됐다.

“붓다 사라낭 갓차아미, 담맘 사라낭 갓차아미, 상강 사라낭 갓차아미. 무슨 뜻인지도 몰랐죠. 나중에야 삼귀의의 팔리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목탁도 없고 독경이나 염불, 기도도 없었다. 팔리어 삼귀의를 마치고는 곧바로 법사님의 강설이 이어졌다.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던 소년의 귀에, 아니 가슴에 말씀이 화살처럼 꽂혔다.

“‘우리의 마음은 영원하고 자유롭고 평등하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신이나 초월자가 있어 만들어주거나 빼앗는 것이 아니다. 우연도 아니다. 모든 것은 자신의 행동에 따른 결과다. 이 이치를 알면 인간은 영원하고 자유롭고 평등할 것이다. 그것이 곧 해탈이고 붓다의 근본사상이다. 이를 깨달으면 대인격자가 되는 것이다. 룸비니는 그런 대인격자가 되기 위한 학생들을, 젊은이들을 양성자는 재가불자들의 모임이다.’ 법사님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게 울립니다.”

열일곱, 단정하고 순수했던 소년 조보연의 인생에 새로운 나침반이 놓이는 순간이었다. 일대사인연의 순간이라 여긴다.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이라 첫 손에 꼽는다.

법회는 매주 토요일 어김없이 열렸다. ‘뺨을 잡히고 신상이 털린’ 학생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될성부른 떡잎’들이 그렇게 ‘길거리 캐스팅’으로 룸비니에 모였다. 법사님의 강설이 끝나고 나면 사홍서원을 한글로 노래했다. 어느 사찰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법회였다. 대학생이 되었을 즈음에서야 법회 때 ‘반야심경’을 봉독했는데 그것도 한글번역본이었다. 법회 강사로는 주로 대학교수들이 초빙됐다. 황산덕 교수를 비롯해 한글학자 양주동 박사, 서정주 시인에 이화여대 교목 김응호 목사나 연세대 교목 한태동 목사같이 신학자이면서도 불교를 깊이 연구해 일가를 이뤘던 기독교계 인사들도 자주 강사로 등단했다. 1년에 두 번 정도는 청담 스님도 법문을 해주었다. 학생법회에는 항상 50~60명이 모였다. 인기강사의 강연이 열릴 때면 대각사가 비좁아 경기고등학교 강당을 빌리기도 했다.

그들의 가르침 속에서 소년 조보연은 서울대 의과대학생이 되었고 유학을 거쳐 갑상선질환 분야 최고 반열에 올랐다. 룸비니에서도 고등학생법회를 거쳐 대학생법회, 그리고 성인법회인 법도회로 자리를 옮겨갔다. 까까머리 고등학생, 또는 대학생이나 새내기 사회인이었던 룸비니의 동기들 상당수는 이름만 대면 알법한 사회저명인사들이 되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데리고 와 신고식을 했다. 나중에는 자녀들을 위한 모임을 만들고 ‘싯다르타회’라는 멋들어진 이름도 붙여주었다. 어느새 일흔의 나이를 넘겼고 법사님도, 황산덕 교수도 세연을 접었다. 싯다르타의 아이들이 이제는 불혹의 나이를 넘나든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여전히 매주 한 번씩 룸비니 법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법회 날짜만 바뀌었을 뿐이다.




   
▲ 전국의 사찰을 다니며 찍은 사진과 자료를 모아 책을 냈다. 사찰이 낯설고 불교가 궁금한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조보연 교수는 “불자로서 받은 은혜를 갚는 길”이라고 말했다.



“나 내려놓는 첩경 신해행증…수행 형식 구분 말고 일념으로 지속해야”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기에
처음 접한 불교가 평생 자산
“부처님이라면 어떻게 할까”
난관 해결하는 기준으로 삼아

사찰 순례 자료·사진 모아서
교리·문화재 해설한 책 발간
부처님 가르침 만난 기쁨·은혜
이웃에 회향하는 또 다른 나눔


불자가 드문 의학계에서 ‘독실한 불자 의사 조보연’은 유독 눈에 띄었다. 의사들과의 대화에서도 사찰이나 불교 이야기가 나오면 더욱 신이 났다. 병원 사람들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절에 가는 게 좋았어요. 법회 때가 아니라도 주말이면 사찰을 찾아다녔죠. 일주문부터 대웅전까지 걸어가는 산길도 좋고 대웅전에서 부처님 마주하면서 잠깐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좋았어요. 힘들 때면 가서 하소연도 하죠. 뭐, 하소연 한다고 소원을 들어주시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려움을 극복해 보자고 스스로 다짐하는 거죠. 다들 좋아하는 골프도, 회식도, 술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죠.”

사진이 자연스럽게 취미가 됐다. 눈으로만 보고 돌아선 사찰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계기였다. 2000년대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된 것도 도움이 됐다. 사진을 살펴보며 왜 이 탑이 보물인지, 왜 전각마다 이름이 다른지 궁금해졌다. 하나 둘 찾고 기록했다. 그러더니 어느 때 부터인가는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도 해주었다. 묻는 사람이 많아지고, 설명해달라는 일이 늘어나더니 강연 요청이 생기고 책을 만들어보라는 권유까지 받았다. 결국 15년 넘게 모은 사진과 자료들을 엮어 지난 3월 책을 냈다. ‘사찰순례-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그의 발자취가 만들어낸 ‘낭중지추(囊中之錐)’다.

▲불과 17살에 법사님 말씀이 강렬하게 다가온 이유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였기에 더욱 순수하게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교리는 한 마디도 없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였다. 법회형식도 간결했다. 불교에 대한 이해가 없던 학생들도 쉽게 동참할 수 있었다. 어린이청소년 포교의 중요성, 그리고 방법론을 이미 룸비니에서는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불자감소가 지속되고 있지만 대안을 찾기가 힘들다.
“불교의 중심은 사부대중이지만 불교의 가르침은 신도대중에 중심이 맞춰져야 한다. 불교는 대중들에게 맞는 가르침을 그들의 눈높이에서 쉽게 전해야 한다. 사찰이라는 공간도 신도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불교의 무게중심은 스님들 쪽에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 스님들의 수행이나 깊이 있는 불교의 가르침을 신도들에게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스님들이 수행으로 얻은 가르침, 불교학자들이 연구한 수준 높은 결과물들을 신도들은 쉽게 이해하고, 생활에서 활용 가능해야 한다. 전달 방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어린이, 청소년을 포함한 현대인들 속에 불교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불교를 통해 얻은 가장 큰 변화는.
“비교적 어려서 불교를 접했기 때문에 삶의 모습 자체가 바뀌었다기보다는 조금씩 만들어져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거나 쉽게 말하자면 ‘억울하다는 생각’을 떨쳐낸 것이다. 남을 탓할 것이 없다. 어떤 문제에 부딪히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 스스로 능히 헤쳐 나가리라 생각한다. 선택의 문제가 있을 때는 ‘부처님 같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기준으로 삼게 된다. 욕심이 생길 때도 있고 명예나 돈 등의 유혹을 받을 때도 있다.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내 것이라 할 만한 것이 있는가를 자문한다.”

▲지식으로는 알아도 순간순간 선택하고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지속적인 리마인드가 필요하다. 법회에 꾸준히 참석하고 경전도 읽고 수행도 하면서 나를 돌아보고 마음에 거듭 새겨야 한다.”

▲일상에 바쁜 현대인들이 가능할까.
“모든 종교는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을 위한 조건 가운데 하나가 건강이다.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행복을 위한 필수조건임은 분명하다. 건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마음의 평안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마음의 평안을 위해 집착을 내려놓으라고 설하셨다. 편안하지 못한 이유는 나라는 생각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내 자존심, 내 명예, 내 것. ‘나’라는 생각은 무거운 짐과 같다.”

▲ 집착을 놓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신해행증이다. 처음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처음 불교를 접할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석가모니붓다의 가르침을 25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믿고 따랐다면 내가 그것을 못 믿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 가르침을 믿어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믿으려면 어느 정도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젊었을 때는 교리 공부를 하고 법회를 다녔다. 그렇게 나이 들면서 보니 더 중요한 것은 행이었다. 수행이다. 어느 것이 특별히 더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절이 좋으면 절을 하고 그것이 힘들면 염불을 하고 그러다 참선을 해도 된다. 무엇이든 간절한 마음으로 한다면 형식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요즘은 어떤 수행을 하나.
“염불을 한다.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한다. 예전에는 절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허리가 좋지 않다. 절도 나를 낮추는 좋은 수행이라 생각된다. 무엇이든 간절한 일념으로 하면 된다. 요즘에는 생각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자주 갖는다. 어떤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그리고 생각과 생각 사이, 생각이 끊어진 순간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무슨 수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재가불자의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참회라 생각한다. 지나간 것을 반성하고 앞으로는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이것이 반복되면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마음의 평안도 그 속에 만들어갈 수 있다.”

▲책을 보면 불교문화재에 대한 이해와 애정도 깊게 느껴진다.
“환자를 만나는 것이 의사로서 살아온 삶에 대한 회향이라면 책은 불자로 살아온 삶에 대한 회향이자 내가 받은 가르침에 대한 은혜갚음이다. 법보시용으로 제작할 계획이었지만 출판사의 권유가 있어 판매용으로 간행됐다. 불교가 낯선 이들에게 사찰에 담긴 뜻과 불교문화재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순례를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보살정신이다. 내려놓고 욕심을 줄이면 그것이 바탕이 되어서 나누는 마음을 갖게 된다. 베풂과는 다르다. 나눔은 평등한 마음에서 나온다. 나를 내려놓을 때 가능해진다. 이것이 보살사상일 것이다. 환자를 진료하는 것도 내가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것이다. 사찰을 순례하다 보면 나눔을 실천하는 불자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봉정암 순례 때 만난 노보살의 모습은 지금도 뚜렷하다. 일명 ‘깔닥고개’로 불리는 봉정암 계단 아래서 가쁜 숨을 고르던 노보살은 “봉정암 부처님을 뵙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구부정한 허리에 짊어진 배낭 속에는 쌀, 미역, 무 등이 살뜰히 자리하고 있었다. 별난 것 아니라도 부처님께 공양 올리려는 노보살님 옆에서 카메라 장비를 잔뜩 짊어진 채 봉정암으로 향하던 그는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제 그에게는 진료도, 강연도, 책도 나눔이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나눌 수 있다면 기꺼이 내어 놓는다.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요? 불자가 된 것이죠. 욕심을 줄이고 집착을 내려놓고, 나누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지를 배웠으니까요. 지나간 일을 붙잡고 있을 필요도 없고 앞일을 미리 걱정하지도 마세요. 부처님께서는 지금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가르치셨어요. 지금 이 순간 나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실천하세요. 살아보니 그게 제일 중요하더군요.”

매일 아침 6시면 진료실에 나오는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환자들을 만나려 한다. 근심하는 환자에게 웃으면서 말한다. “걱정 마세요. 잘 치료될 겁니다.”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함이다. 약을 잘 먹지 않는 환자에게는 제안한다. “약을 먹기 전에 부모님께 절을 하세요.” 정성껏 약을 복용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리고 불자들에게 당부한다. “‘나를 내려놓으세요. 무거운 짐을 덜 수 있어요. 그리고 나눔을 실천하세요. 그러면 행복이 훨씬 가까워집니다.”

일흔을 넘긴 명의의 충고다. 기꺼이 믿어볼 만하지 않은가.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440호 / 2018년 5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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