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성보] 2. 근대 고승과 북한 사찰
[북한의 성보] 2. 근대 고승과 북한 사찰
  • 권오영 기자
  • 승인 2018.05.15 16: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북이 분단되기 이전 금강산은
근대 한국불교 선지식들의 요람

▲ ‘해동제일선원’으로 불렸던 마하연 선원터. 한때 53칸의 방을 가진 큰 절이었지만 한국전쟁으로 소실됐다. 조계종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제공

남북이 분단되기 이전 북한 사찰은 근대 한국불교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선지식들의 요람이었다. 특히 불교의 보고로 알려진 금강산은 유점사, 장안사, 표훈사, 신계사 등 명찰이 위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해동제일선원’으로 불렸던 마하연 선원이 위치해 스님들로부터 각광받는 곳이었다.

수월·만공 스님, 마하연 조실역임
장안사, 한암·석우 스님 출가사찰
초대 종정 효봉스님 신계사서 출가
고봉스님, 평양 영명사 주지 역임


661년 의상 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마하연은 금강산 만폭동 계곡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로 유점사의 말사였다. 한때 53칸의 방을 가진 큰절이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소실돼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상태다. 남북 교류가 재개되면 제일 먼저 복원될 사찰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금강산 마하연은 근대 한국불교의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 스님의 두 제자 수월․만공 스님과도 인연이 깊다. 일제강점기 왜색불교에 저항하며 한국 선불교의 전통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수월, 만공 스님은 1907년과 1931년 각각 금강산 마하연 선원의 조실을 맡아 후학들을 이끌었다. 그런 탓에 근대 한국불교계에 이름을 날렸던 수좌스님들치고 금강산 마하연을 거치지 않은 스님들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금강산 마하연은 1950~60년대 전통불교 회복운동에 앞장섰던 금오 스님의 출가사찰로도 유명하다. 1896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금오 스님은 15세 되던 해 금강산으로 유람을 갔다가 마하연 선원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의 모습에 매료돼 출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석왕사, 월정사 등에서 10여년간 수행했으며 1925년 만공 스님으로부터 전법게를 받아 경허․만공 스님으로 이어지는 한국 선불교 전통을 계승했다. 금강산 마하연은 또 6․7대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성철 스님과 13대 총무원장을 역임한 자운 스님이 생사를 걸고 용맹정진했던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금강산 4대 사찰 가운데 하나인 표훈사는 용성 스님과 인연이 깊다. 1880년 해인사에서 화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용성 스님은 이후 금강산 표훈사에서 무융선사에게 ‘무자’ 화두를 받고 정진해 깨달음을 얻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금강 장경봉에 위치한 장안사는 고구려 양원왕 7년(551년) 혜량 스님에 의해 창건됐다. 한때 6전(殿), 7각(閣), 2루(樓), 2문(門)에 10여채의 요사를 자랑하던 거대 사찰이었지만 한국전쟁 때 불타 지금은 주춧돌과 사리탑만 남아 있는 상태다. 장안사는 마하연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선풍을 드날렸던 스님들이 즐겨 찾던 곳이기도 했다. 특히 장안사는 조선불교 조계종의 초대 종정을 역임했던 한암 스님의 출가사찰이다. 1876년 3월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난 한암 스님은 스무 살 되던 해 금강산 구경을 갔다가 발심해 장안사로 출가했다. 1912년 평안북도 우두암에서 홀로 정진해 확철대오 했고, 1921년 다시 금강산 장안사에서 정진하며 후학들을 지도했다. 한국전쟁 때는 국군이 오대산 상원사를 소각하려 하자 목숨을 걸고 이를 막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현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의 은사이자 1950년대 비구․대처의 갈등에서 비구측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석우 스님도 장안사가 출가사찰이다. 석우 스님은 금강산 불교출신의 대표적인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1915년 금강산 장안사에서 출가해 ‘초발심자경문’ ‘육조단경’ 등을 익혔고, 유점사에서 동선 스님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았다. 이후 마하연, 영원암 등 금강산에서만 20여년간 수행했다. 영원암 시절에는 만해 스님, 백성욱 박사 등과 교분을 맺기도 했다.

▲ 서산대사의 입적처이자 청담 스님이 용맹정진했던 곳으로 알려진 묘향산 보현사.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

2007년 조계종과 북한불교계가 공동으로 복원해 남북불교교류의 상징으로 꼽히는 금강산 신계사는 근대 한국불교의 대강백으로 꼽히는 한영 스님과 ‘절구통 수좌’로 불리며 대한불교조계종의 초대종정을 역임한 효봉 스님의 출가사찰이다.

금강산 유점사는 대강백이자 초대 동국역경원장을 역임한 운허 스님이 수학했던 사찰이다. 189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독립운동에 참가했다 일본 경찰에 쫓겨 금강산 봉일사로 몸을 숨겼다. 그곳에서 불연이 닿아 출가를 결심하고 수행자의 길에 들어섰다. 스님은 유점사에서 서기를 보며 종무행정을 익혔고, 동국경원에서 경전을 수학했다. 이 일은 훗날 운허 스님이 동국역경원 설립을 주도하는 계기가 됐다.

금강산뿐 아니라 북한에는 근대 고승들과 인연을 맺은 사찰이 많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평양에 건립한 아홉 개 사찰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금수산 영명사는 만공 스님의 법제자로 알려진 고봉 스님이 주지를 맡았던 곳이다. 또 북한 국보유적 40호이자 임진왜란 당시 승군을 이끌었던 서산대사의 입적처로 알려진 묘향산 보현사는 조계종 2대 종정을 역임한 청담 스님이 1932년 용맹정진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440호 / 2018년 5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