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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학자와의 만남-이도흠 박사

기자명 이재형

“불교학, 이젠 현실을 말하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듯 불교학도 시대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한국불교학은 지난 1700여 년 동안 불교의 흥망성쇠와 함께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그리고 이러한 불교학의 끊임없는 모색과 변화는 불교를 지탱해준 밑거름이 됐다. 이제 다시 새로운 불교학이 요구되고 있다. 즉 불교계라는 한정된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 속에서 정체성과 보편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법보신문은 매월 1회 불교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학자들을 찾아 그들이 말하는 불교와 불교학에 대해들어본다.

최근 펴낸 신라인의 마음으로 읽는 삼국유사는 기존의 번역, 해설, 현장답사기와는 크게 다른 것 같다. 마치 시간이동을 해서 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듯하다고 할까.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나타내려 했는가.

“문학, 역사와 철학, 문헌과 고고학적 성과를 종합해 가능한 한 그 시대의 문화적 맥락에서 당시 신라인의 마음을, 나아가 신라인을 살아있는 실체로 읽고자 했다. 즉 종의 몸으로 부처가 된 욱면, 관음보살께 빌어 천 개의 눈에서 한 개를 떼어내 눈 먼 아이의 눈을 뜨게 한 희명 등 신라의 이름 없는 위대한 민중들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번 책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는.

“그간 삼국유사 연구가 대부분 실증적인 연구에 치우쳐 새로운 실증이 나올 때마다 이전의 성과가 뒤엎어지는 것을 반복하는 오류를 벗어날 수 없었다. 반면에 이번 책은 새로운 방법론을 이용해 문화와 세계관이란 맥락에서 텍스트를 읽었기에 그 해석은 총체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문화의 원형을 삼국유사에 찾는 이유는.

“삼국유사는 우리 민족의 신화와 설화, 역사가 응축되어 있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중국이나 서구 문화에 침투 당하기 전 한 민족의 사유와 정서로 형성된 것이기에 그것은 우리 민족 고유의 원형과 상징, 이미지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문화란 것이 외부와의 끊임없는 접촉, 수용에 의해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풍성해지는 것 아닌가. 우리 문화의 원형을 찾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다른 문화가 있을 때 한 문화는 그것과 차이를 통해 정체성을 갖는 것이며 문화는 다양할수록 건강하다. 북한처럼 타문화의 수혈을 받지 못하는 폐쇄적인 문화는 고인 물이 썩듯 망하며 청나라처럼 주체가 없는 문화는 타문화에 종속돼 사라진다. 현재 우리문화는 미국문화일색이 돼버렸다. 이는 우리의 정체성을 죽이는 것일 뿐 아니라 미국 문화를 망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것은 ‘차이의 철학’과 다양성을 통한‘공존의 인식’이라고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좬삼국유사좭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책은 ‘화쟁(和諍)기호학’을 이용해 삼국유사를 새롭게 해석한 책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화쟁기호학은 이 책에서 어떻게 원용되고 있는가.

“화쟁기호학을 수사학의 두 축인 은유와 환유에 초점을 맞추고 거기에다 체(體)-상(相)-용(用) 삼대의 축을 투영시켜 삼국유사를 이해하고자 했다. ‘화쟁’은 도(道)와 언어의 원융(圓融)이다. 일상언어의 속성에 집착해 낱말이나 문맥에 얽매이는 세속의 말 또는 상투적 의미로 언어기호를 이용하는 문어(文語)와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와 문맥에 얽매이지 않고 세계의 실체를 파악해 이를 왜곡 없이 드러내는 말인 의어(義語)를 대비시켜 삼국유사를 해석했다.”

원효 스님의 화쟁사상이 21세기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고 한 까닭은.

“화쟁은 모순과 대립을 한 체계 속에 묶어 담는 것이나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상생의 논리다. 이는 플라톤에서 자크 데리다까지 끊임없이 구분하고 나누어 왔던 서구 철학과 크게 다른 점이다. 미국문화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현대 우리 사회는 흔히 브레이크 없는 욕망의 문화, 자기중심적 문화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성인에게도 악마적인 요소가 있으며 악마에게도 성인적인 요소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사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악마적인 요소만을 키워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서로를 살리는 문화가 아니라 서로를 도구화하는 죽임의 문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화쟁은 자연과 인간, 주체와 객체, 말과 글, 동양과 서양을 화해시키고 상생토록 하는 대화와 회통의 철학이다. 따라서 진(眞)과 속(俗), 부처와 중생, 도와 언어를 융합했던 원효 스님의 화쟁사상은 앞으로 인류가 지향해야할 참다운 대안사상이라고 확신한다.”

그러한 주장에 대해 혹시 ‘꿈’이나 ‘고독한 광야의 외침’이란 비판은 없는가.

“한번은 내 강의를 듣는 한 학생이‘꿈같은 얘기’ 아니냐고 반론했다. 그때 나는 출석부를 펴들고 누구누구는 상놈의 자식이니까 당장 강의실에서 나가라고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학생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렇게 썰렁한 시간이 1분 가량 흘러갔다. 나는 학생들에게 정중히 사과한 후 지금은 이 행동이 말도 안되는 것 같지만 현재의 휴머니즘이 보편화되지 않는 150년 전만 하더라도 이것은 대다수 통념이었다고 설명했다. 화쟁도 마찬가지다. 비록 지금은 그것이 세계화·보편화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화쟁’이 옳고 정당한 이상 소수의 사람일지라도 끊임없이 바꾸려 노력한다면 반드시 변화가 되리라 믿는다.”

한 기고문을 통해 인문학의 위기, 그리고 우리 문화의 정체성 상실의 주요한 원인으로 학자들은 학문태도를 지적한 것으로 아는데.

“일제 식민지, 군사정권이 이어지면서 자기 시대의 문제에 괴로워하거나 자신이 디디고 있는 현실에서 인간의 문제를 통찰하려는 토양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 이런 것은 이단으로 간주됐고 시련과 억압을 당했다. 이 속에서 지식인들은 곡학아세를 하여 영화를 누리거나 ‘상아탑’에 안주해 학문을 현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공리공론으로 떨어뜨렸고 오히려 이것을 ‘학문의 순결함’ ‘학문의 엄숙함’으로 포장했다. 그러나 비전이 없는 학문이 경박하다면 현실이 없는 학문은 공허한 것 아니겠는가. 이제 인문학은 한국이라는 땅에 굳건히 발을내리고서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불교는 가장 깊이 있고 차원 높은 신앙이지만 역대로 귀족이나 왕족의 지배 수단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현재 불교계는 어떻게 보는가.

”요즘 불교계는 그 내부의 문제에 너무 경도돼 있어 사회 참여나 기여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불교적인 삶과 사상을 현대의 부조리와 병폐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런 모습에서 탈피해 정토를 지향하면서도 굳게 땅에 발을 디디고 있는 아미타불처럼 꿈과 현실, 종교와 세속적인 삶을 하나로 아우르고 그 갈 길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불교계의 지식인층이라 할 수 있는 불교학 연구자들의 과제는 무엇이라 보는가.

“불교학 내에서도 그 영역과 특성의 차이가 큰 만큼 다양한 연구가 이뤄질 수 있겠으나 어떻게 하면 불교와 현실을 만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이는 불교학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또 불교학이 소수만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세계 지성인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보편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즉 사회적인 것의 진리로서 불교학과 세계적인 보편성을 갖는 진리로써의 불교학을 동시에 추구해야 할 것이다.”


대담·정리=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이도흠 박사는

이도흠(44) 박사는 화쟁기호학을 원용해 철학, 역사학, 문학 등 관련논문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소장학자인 동시에 한겨레문화센터 문화비평학교 담임 강사로 문화비평가를 양성하고 있는 문화비평가이다. 지난 93년 신라 향가의 문화기호학적 연구-화엄사상을 바탕으로(한양대)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화쟁기호학’이라는 새로운 인문학 이론을 만들어 좥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좦(1999)를 펴내 학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 박사는 한 단락의 글을 쓰기 위해 때로는 100편의 논문을 독파할 정도로 치밀하게 연구하는 학자로 알려져 있다. 또 소쉬르에서 바르트, 원효에서 데리다, 플레하노프에서 바흐찐을 넘나들며 동과 서의 거대한 사상적 흐름을 ‘회통’시키고 있다.

스스로 ‘꿈꾸는 사람’이라고 밝히는 이 박사는 그 꿈이 꿈에서 그치지 않도록 글을 통해, 사회참여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켜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의 나이 많은 수강생 중 한 명인 고려대 전자공학과 안순신(51) 교수는 이 박사를 “있는 그대로를 보려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독서량과 사색을 통한 안목으로 사회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이 박사는 사람들이 이데올로기나 미디어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세상과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한다. ‘올바르게 읽는 만큼 세계를 보고, 올바르게 읽는 만큼 자유롭다’는 그의 신념에 따른 것이다.

현재 한양대와 서울여대에 출강하고 있으며, 연내에 문화비평서적과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는 화쟁기호학 관련서적을 펴낼 계획이다.



화쟁기호학이란

삶 속에서 진실 찾는 인문학 방법론

화쟁기호학은 원효 스님의 화쟁사상을 통해 내용자체에 치중하는 형식주의 비평과 정치·경제·사회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마르크시즘 비평을 하나로 아우르는 상생(相生)의 인문학 이론이다.

즉 근대언어학의 주요성과인 구조주의 언어학 및 기호학의 성과를 원용한 이 이론은 형식주의 비평과 마르크시즘 비평의 팽팽한 긴장을 원효의 화쟁사상과 불교의 화엄사상을 원용해 하나로 엮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도흠 박사의 화쟁기호학은 대다수 서구의 인문학 이론처럼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하나의 틀 속에서 종합-해석-비평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그의 독특한 이론은 문화비평을 비롯한 텍스트의 재해석에서 그 탁월함을 발휘한다.

이미 인물과 사상에서 화쟁기호학을 이용해 현대 한국문화와 방송에 대한 깊이 있는 비판을 시도했던 그는 최근 좬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좭(푸른역사)를 통해 새로운 삼국유사를 선보였다.

즉 삼국유사 텍스트의 내적 구조 분석과 함께 이를 사회와 문화, 당시의 세계관과 연관시켜 해석함으로써 문학성은 물론 신라인들의 구체적 삶의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독특한 삼국유사 읽기 덕에 신라의 아저씨와 아줌마 그리고 스님들의 생활을 진솔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인권환 교수가 “형식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종합한 체계를 구상해 한국문학사 전체를 하나의 포괄적 방법으로 일관성 있게 기술하겠다는 시도는 대단히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시도가 아닐 수 없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의 화쟁기호학은 실험적이지만 문학의 지평을 축소하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인 삶 속의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는 새로운 인문학의 한 방법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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