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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부처님오신날의 추억-이영자 원장(동국대)편

기자명 이영자
  • 기고
  • 입력 2004.08.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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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인해 이루던 ‘마을 축제’

부처님 오신날은 모든 불자들의 축제다. 부처님께서는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진리의 길, 인간의 길을 일러주셨기 때문이다. 요즘 초파일 행사를 생각하면 먼저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리는 대규모 봉축행사를 비롯해 남녀노소가 각양각색의 연등을 들고 광화문네거리를 행진하는 모습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초파일 때면 등장하는 해맑은 동자승들의 천진난만함도 더 이상 낯선 풍경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가 맞는 초파일 모습이 예전의 초파일 행사와는 크게 다른 듯하다. 먼저 초파일이 공휴일로 제정된 것이 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였고 불자들이 전체적으로 모여 대규모 행사를 갖는 것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만 각 사찰의 능력에 맞게 봉축행사를 열거나 동네를 행진하는 소규모 행사가 대부분이었으며, 곳에 따라 마을의 축제가 되는 곳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에 돼서야 처음 절에 가봤다. 이전에는 가볼 기회가 사실상 없었다. 역대로 많은 분들이 고위관직을 지낸 만큼 엄격한 유교집안이었고 따라서 불교를 접할 기회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님과 어머님께서는 간혹 탁발승이라도 올라치면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보시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또한 오빠들이 사찰 근방으로 소풍을 가게되면 적은 비록 적은 돈일지라도 시주금을 손안에 쥐어주곤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이러한 모습이 비단 우리 부모님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탁발하는 스님들이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서 구걸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며 조금이라도 보시하는 것을 당연한 일처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11살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를 따라 월정사 포교당(지금의 강릉 관음사)을 처음 갔다. 당시 월정사 포교당은 1920년대 월정사, 건봉사, 유점사가 힘을 모아 세운 것으로 만해 스님, 이종욱 스님, 전관응 스님 등 발자취가 남겨 있는 절이다. 그래서 인지 강릉지역 불교의 중심은 포교당이었고, 이 때 청년회 활동을 했던 사람들도 교사, 대학생 등 당시 엘리트였고 그들이 어린이들을 지도했다. 일요일이면 선생님들이 재미있는 불교이야기를 해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초파일 때면 강릉은 물론 인근지역인 동해, 삼척 등 각지에서 모여드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볼거리도 다양했다. 그 때 나는 고전무용과 연극을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 흥겨웠고 당시 들었던 회심곡은 나의 불교학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최근 어린이·청소년 불자들이 줄어든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딱딱한 교리를 자녀들에게 주입하기보다는 불교를 친숙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듯하다. 이번 초파일 아이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추억을 하나쯤 심어주는 것도 참으로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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