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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부처님오신날의 추억-고영을 화백 편

기자명 고영을
  • 기고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종교 달라도 봉축 함께 하신 아버님

올해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 올수록 나의 가슴 속에는 슬픔이 물처럼 차 오르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이 이리도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지난 1월에 유명을 달리하신 친정아버님 생각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매년 부처님오신날이면 나는 친정부모님을 모시고 절에 갔다. 두 분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나 탱화를 그리며 불교에 귀의한 딸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다른 날도 아닌 부처님오신날이면 꼭 함께 절엘 가 주셨다.

그래도 불자가 아니고 타종교인이라는 점은 마음에 걸리셨는지 두 분 모두 절에 가게 되면 굉장히 어색해 하셨다. 아버님은 젊었을 때부터 몸이 자주 안 좋으셨다. 5년 전부터 건강이 더 나빠지셨는데 지난해에 결국 병원에서 간암 통고를 받았다. 연로하신 아버님에게 간암은 일종의 사형선고인지라 가족들은 적극적인 투병을 권하지도 못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효도하는 셈치고 아버님에게 아버님의 마지막 날들을 절에서 보내실 것을 권유했다. 의외로 아버님은 딸의 제안을 선선히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몇 달간을 전남 옥과 성륜사에서 여법하게 지내셨다. 늘 염주를 목에 거신 채 한순간도 거르지 않고 단주를 돌리며 고통을 이기시던 모습, 절 마루에 앉아 공양하시던 모습은 지금도 내 망막에 맺혀진 채 지워지지 않고 있다. 세례까지 받으신 아버님의 그런 모습은 매우 놀라웠고 또 한편으로는 의아하기조차 했으나 후에 어머님의 이야기를 듣고 다소 의문이 풀렸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어머님을 따로이 불러 앉히시곤 젊었을 적 어느날 꾸었던 꿈에 대하여 얘기해 주셨다고 했다. 그때도 아버님은 병 중이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신장님을 만났다고 했다. 아버님에게 나타난 신장님은 “너는 진작 불자가 되었어야했다. 왜 이러고 있느냐” 하셨다는 것이다. 몸은 병약했어도 매우 조용하고 과묵한 성격을 지니셨던 아버님은 그런한 꿈을 꾼 것을 심지어 어머님에게도 평생 말을 않고 있다가 죽음이 임박해서야 고백하신 것이다.

후에 이 이야기를 전해 듣게된 나는 아버님을 진작에 부처님의 제자로 이끌지 못한 것을 몹시 후회하게 되었다. 아버님은 부처님의 품 안에서 죽음을 맞으셨지만 불교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떠나신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님을 떠나 보낸 후 어머님은 자식들의 뜻에 따라서 절에서 부친의 49재를 지내셨다. 어머니는 49일 내내 절에 머무르며 마지를 올렸고 이를 계기로 불자가 되어 가셨다. 비록 다른 종교를 갖고 계셨으나 유난히 절 밥을 좋아하는 내 아이들의 모습을 대견해 하시고 결국 넓은 마음으로 부처님의 품에 귀의하신 두 분. 두 분의 모습에서 나는 법연(法緣) 확연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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