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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바이의 창-거듭나는 불심

기자명 문보배
  • 기고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어려운 삶을 살아오면서 세 아이의 뒷바라지는 정말 힘겨울 때가 많았다. 그럴때마다 어떤 은신처로 피하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 간절했다. 그때 문득 무슨 종교든 믿음을 갖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러던 중 막내의대학 진학을 앞두고 결심한 종교가 '불교'였다. 큰딸의 자문을 얻어 선택한 나의종교 '불교'. 우리의 선조들이 토속신앙과 더불어 민족의 종교로 번창해 온 불교이기에 마음이 더 이끌렸다.

처음 몇 년간은 사찰에 합창단원으로 열심히 다니며 부처님께 기도 정진드렸다. 철야기도를 하며 소원성취를 비는 등, 기복에 기대어 부처님께 관세음보살님께 닥치는 대로 매달렸다. 닥치는 대로 매달릴수록 크게 이루어지는 것은 없고몸만 고달프고 삶은 짜증스럽기만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편하게 이루어져야할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부처님도 원망해보고 스님도 원망해보고 심지어는 '다니는 절이 시원치 않아서 일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렇게도 간절히 소망하는 중생의 뜻을 외면하고 들어주시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 얼마나 흐른 어느 날 참 불교는 기복(祈福)이 아닌작복(作福)의 불교임을 알게 되었다. 내 마음을 고쳐 스스로 선업을 쌓으면 그업이 내게 복으로 돌아오는 지극히 간단한 이치를 잊었었다. 타종교의 방식대로그저 빌고 기도 올리고 돈이나 듬뿍 시주하면 모든 일이 성취되는 줄 알았던 어리석은 중생이 비로소 거룩하신 부처님의 정법을 알게 됐다. 그릇 따라 이익을얻음이니 그릇을 크게 만드는 일, 즉 '복짓는 생활'이 불교인 것이다. 지식보다앞선 지혜를 일깨워 주신 부처님의 그 당연한 논리를 깨치는 데 몇 년이 걸린 것이다.

'생(生)과 사(死)'의 이치를 정연한 논리로 일깨워 주신 부처님이 아니시던가.불교는 삶의 진리를 전해주었고, 극락주의 천당과 지옥이 아닌 그 사람의 업에따라 갈라놓으니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 성문 연각 보살부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으셨던가.

아침예불을 드리며 오늘도 부처님의 정법대로 살기를 노력하는 어리석은 이 우바이는 기쁨을 기쁨이라고 말하기조차 어려우니 그 또한 상을 내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일까?


문 보 배/용인 경수사 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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