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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계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기자명 리영희
  • 기고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본지 고문을 역임한 한양대 리영희 명예교수는 지난 8월 9일 한국전쟁 당시 신흥사의 경판·보제루 등 성보 훼손을 막은 공로로 만해 실천상을 받았다. 리 교수가 8월 19일 본지에 보내온 불교계에 대한 감사의 글을 게재한다.

나는 대한불교와 조계종에 대하여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자 이 글을 적습니다.
8월 9일 강원도 백담사에서 집행된 수상자에서 나는 뜻밖에, 그리고 분수에 넘치는 제4회 만해상 6분야 중의 ‘실천상’을 수여 받았습니다. 수상자 소감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72세의 이 나이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미몽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민족이 우러러보는 만해 한용운 선생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에 값하는 일을 한 것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한용운 선생이 어떤 분이십니까?

정인보(鄭寅普) 선생의 말처럼 “인도에는 간디가 있고, 조선에는 만해가 있다” 할 분이 아닙니까. 또 벽초 홍명희 선생의 말처럼 “조선의 7천의 승려를 다 합해도 만해 한 사람을 당하지 못한다”하고 했던 어른이 아니십니까!

그 같이 고귀하고 뛰어난 사표(師表), 인간으로서의 사표, 민족지도자로서의 사표의 이름으로 제정된 상을 나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수여해 준 대한불교계와 총무원장 서정대 스님에게 깊이 감사합니다.
8월 9일 백담사에서의 행사는 나에게 겹으로 된 영예와 기쁨이었습니다.
불교와 불교계에 대해서 내가 감사해야 할 또 다른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50년 전인 1951년 겨울, 내가 젊다기보다는 차라리 어린 22세의 하급장교로서 제2차 북진 도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육군 보병 제11사단 제9연대 소속 중위 때입니다. 우리 부대가 양양에서 무릎 높이의 눈을 헤치고 신흥사에 이르렀을 때 선착한 연대수색중대의 병사들이 추위를 쫓기 위해서 사찰 건물의 벽판자와 절 안의 경판을 마구잡이로 들어내고 뜯어내어 절의 앞 가람에 부셔서 쌓아 올려 거대한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6·25 전쟁 중 혹한의 전투지에서 국군장병이 흔히 저질렀던 불행한 일입니다.

불교신자가 아니었던 나로서는 신흥사 소장의 경판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값진 문화재인지… 등을 알 까닭이 없었지요. 신흥사 자체가 얼마나 귀중한 사찰인지도 나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다만 공산주의 인민공화국 치하에서도 잘 보존된 불교사찰과 경판이 종교를 소중히 여긴다는 남한의 군대에 의해서 파괴 소진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 신흥사가 남과 북의 어느 쪽에 남게 되건, 더욱이 이 전쟁으로 통일이 된다면 통일국가와 불교의 귀한 문화재로 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나는 급히 부연대장을 설득해서 불을 끄게 했습니다. 불 속에서 타다 남은 경판 부스러기까지 주어서 판고에 되넣게 했습니다. 우리부대는 그리고는 마등령을 넘어 진부령으로 잔적을 수색 토벌하는 힘겨운 북진을 계속했습니다.

6·25가 끝나고도 여러 해 뒤에 알았지만, 신흥사의 경판은 산스크리트·한문·언문(한글)의 새 언어로 새겨진 것으로서, 한국에서 유일한 귀중 문화재라고 합니다. 원래의 완결 판수의 절반 가량만이 지금 보존되어 있다고도 들었습니다.

그런 자세한 사실들은 나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신흥사와 그 경판이 완전 파괴 소실되었을 지도 모를 위기를 모면케 했다는 사실만은 그후 몇 차례의 설악산 관광여행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더 많은 경판을 불 속에서 구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반세기전, 50년 전에 있었던 일을 이 나라의 불교계가 알아주고, 감사의 뜻을 공개적으로, 총무원장의 이름으로, 많은 참석자들 앞에서 공표해 주니, 72세가 된 나의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50년 전의 스물 두 살 때의 군복 입은 나의 어린 모습이 회상되어서 감개무량합니다.
한국불교의 무량한 발전을 빕니다.


리영희/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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