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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茶이야기[9]-막사발

기자명 조은

일본 찻잔 ‘기자에몬이도’는 막사발 본뜬 것

1979년, 내가 다도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 한국에서 생산되는 다기는 두어 종류뿐이었다. 차인들과 스님들은 해인사 아랫마을에서 김종희씨가 빚은 회백자 다기를 주로 사용했다. 약탕기를 닮은 듯도 하고, 전통 옹기를 닮은 듯도 한 큰 차관과 찻종은 찻물을 따를 때마다 물이 줄줄 흐르는 정교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다기를 처음 가져보는 기쁨과 질박한 멋은, 많은 다기를 사용해 본 지금까지 가장 잊을 수 없는 정감 있는 다기다. 첫정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출강하던 곳의 기초반 다기를 20여 벌 구하기 위해서 인사동 다기 파는 상점을 거의 빼놓지 않고 다녀보았지만 적합한 것을 찾지 못했다. 기초반에서 사용하기에 알맞은 백자 다기도 없었고, 있는 것은 값이 수십 만원씩 했다.
요즘 생산, 판매되는 다기 대부분은 분청일색이다. 색은 칙칙하고 질감은 거칠다 못해 황량감마저 느껴진다. 색이 어둡기 때문에 차색을 감상할 수 없고, 질감은 지나치게 거칠기 때문에 손에 닿는 느낌도 좋지 않다.
일본은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서 생산된 막사발을 가져다가 가루차 다완(茶碗)으로 만들었다. 그것을 이도자왕(井戶茶碗)이라고 명명하며 대명물(大名物)로 정해 놓고 마치 신의 물건처럼 숭상한다. 토기와 청자까지 포함하면 명품의 반열에 넣은 것이 수백 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도자기 전쟁이라고 할만큼,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수 많은 도자기와 도공들을 각출해 갔다. 일본의 구주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14대 심수관과 13대 이삼평 같은 명장 도예가들이 그때 징발되어 간 도공의 후손들이다. 그들은 일본에 가서 우리의 도자기를 근간으로 한 일본화된 도자기를 만들었지만, 다완만큼은 많이 변화시키지 않았다. 우리의 막사발의 자연미와 무기교가 일본 다도의 와비정신과 부합되었기 때문일 것
이다.
종교철학자이며 민예평론가였던 야나기무네요시가 어렵게 기회를 얻어 이도자왕 ― ‘기자에몬이도(喜左衛井戶)’를 감상 한 후 쓴 글을 보면 ‘이것은 더러운 부엌으로부터 아름다운 옥좌에 오른 것이다. 거들떠 보지도 않던 것이 아름다움의 귀감으로 추앙받는 것이다. 차인들은 도자기 유약 때문에 생기는 가는 빙렬에서 정취를 느끼고 유약이 벗겨진 자국에서 운치를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아무렇게나 매만진 것을 좋아했다. 다완이 가져야 할 조건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이도’는 일본에 건너 오지 않았다면 조선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민족을 폄하한 점도 없지 않지만, 야나기 무네요시는 이 글에서 조선의 막사발과 그것을 가져다가 대명물 다완으로 만든 차인들의 안목을 극찬한다.
조선시대 막사발은 관요가 아닌 민요(民窯)에서 생산된 민중의 밥그릇, 국그릇이다. 살기 위해서 흙을 다듬고 물레를 돌리지 않으면 안되는 도공들의 처절한 삶의 유물이다. 그 그릇을 사용한 백성들도 그것의 미적 가치나 아름다움보다, 그것에 ‘얼마큼의 음식을 담아 먹느냐’가 더 중요했을 것이다. 부엌에서 씻다가 깨뜨려도 아깝기는 해도, 몇 날 며칠을 두고 애달프지 않은 그릇이 조선의 막사발이다.
요즘 활동하는 도예가 중에는 일본에 가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사람이 많다 우리의 도공들을 징집해 가서 이룩한, 어느 정도는 일본화된 도자기 문화를 다시 역수입하는 것이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현대인의 기호에 맞아서인지 요즘 다기는 분청이 주를 이루고 지나치게 거칠다, 일본 다기보다도 훨씬 거친 것이 대부분이다. 잎차 다기와 가루차 다완 모두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막사발 기법으로 만들었다면 값도 그만큼 저렴해야 하지 않을까. 과장된 소박미가 아닌, 고졸한 차맛을 닮은 편안하고 안온한 사람과도 같은 느낌의 다기가 그립다.

조은 /한국다도연구원 원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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