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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 사리원 금강국수공장

기자명 이학종

“국수로 이어진 동포애 이렇게 진할 줄이야”

법타스님 “힘들땐 성불사 부처님께 매달려라”조크
공장직원들 “법보신문 여기서도 잘 읽고 있습니다"


구월산을 빠져 나와 사리원 시내로 향한다. 시내의 한 호텔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평불협이 설립해 지원하고 있는 금강국수공장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금강국수공장은 북녘의 동포들이 굶주림으로 고통 받을 때, 남쪽 불교계에서는 유일하게 직접적인 지원을 했던 곳이니 그 모습을 직접 찾아보는 것도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다. 금강국수공장을 방문 뒤에는 인근 정방산에 있는 성불사를 방문하도록 일정이 잡혀있어 마음도, 발길도 바쁘기만 하다. 좀더 여유 있게 방문을 했으면 좋으련만 다음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사리원 시내 순 한글간판 눈길

사리원은 북한에서는 중간 크기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남쪽으로 따지면 작은 지방도시나 큰 읍 정도의 규모로 보인다. 블록으로 지은 5층 크기의 건물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간선도로를 따라 늘어선 아파트의 1층에는 거의 상가가 조성돼 있다. 상점의 간판은 70년대 남쪽의 거리 상점의 모습과 흡사한데, 영어나 한문 표기는 일체 찾아 볼 수 없고, 모두가 한글로 쓰여 있다. 한글로 된 간판이 되레 이색적으로 느껴져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런 느낌은 내 심신의 상당부분이 부지불식간 미국 문화에 익숙해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한 것이니 입맛이 씁쓸하다.

사리원 시내 중심가로 들어오자 제법 큰 규모의 아파트가 눈에 띤다. 4층 규모의 소형 아파트들도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있다. 거리는 오가는 사람으로 분주하고 뛰노는 아이들이 천진한 미소와 재잘거림은 차라리 정겹다. 우리 일행을 발견하고는 먼저 ‘남조선에서 온 손님’임을 알아챘는지 밝은 미소로 손을 흔들어주는 주민들도 심심찮게 눈에 띤다.

이윽고 승합차는 점심 예약이 되어 있는 시내 한 호텔에 도착했다. 시설은 그리 고급스럽지 않지만 정갈하고 깨끗하다. 식당의 벽에는 거대한 크기의 벽화가 붙어 있는데, 법타 스님에게 물으니 시범적으로 조성된 ‘지상낙원’을 북한의 화가들이 그린 것이란다. 서둘러 점심식사를 마치고 구내 서점에서 구월산과 칠보산, 금강산 등의 전설을 모아놓은 책을 몇 권 구입한 후 시 외곽지역에 있다는 금강국수공장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금강국수공장은 개천과 논밭 사이로 난 길을 한 20여분 달려간 곳에 위치해 있다. 국수공장으로 가는 찻길 옆으로는 허름한 살림집과 회색 건물들이 드문드문 서 있다. 작은 다리를 통해 개천을 건넌 후 개천 옆으로 난 뚝방길을 5분쯤 달리다 내려서니 곧바로 금강국수공장의 마당이다. 석판에 붉은 글씨로 쓴 ‘금강 국수공장’이라는 현판은 이미 사진을 통해 여러 차례 본 것이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감회가 새롭다.



남쪽 손님맞이 정성껏 준비

마중을 나와 있는 10여명의 공장식구들과 인사를 나눴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부장님, 법보신문 잘 보고 있습니다”라며 반갑게 악수를 청해 온다. 평양의 조불련 본부는 물론 사리원의 금강국수공장에서도 법보신문을 읽고 있다니 놀랍고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장장의 안내를 받아 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회의실처럼 생긴 방에 정성스럽게 다과를 차려놓았다. 맥주와 꽃감, 사과, 명태포, 사이다, 땅콩 등을 회의 탁자 위에 늘어놓았는데, 가히 성찬이라 할 만하다. “어려운 살림에 이런 것을 무엇 하러 준비했느냐”는 인사에 “차린 것은 없지만 정성으로 알고 맛있게 들어 달라”는 답사는 우리네의 익숙한 예법 그대로다. 국수공장을 세워주고 매월 국수를 만들 밀가루를 보내주는 남쪽의 손님들을 맞이하는 그들의 정성이 정겹다.

간단히 다과를 마치고 2층에 있는 공장 구경에 나섰다. 덜컹덜컹 기계소리가 가득한 작업장 안은 구수한 국수냄새로 가득 찼다. 흰 가운과 모자를 쓴 공원 대여섯 명이 국수를 뽑아내고 포대에 담느라 눈 돌릴 틈도 없이 바쁘다. 남쪽의 불자들의 작은 정성이 모여 북녘 사리원의 공장에서 이렇게 동포들의 식량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현장이라니! 이 어찌 감격스런 광경이 아니겠는가.

처음 금강국수공장을 방문한 일행은 감격을 감추지 못한다. 여러 번 이곳을 방문했을 법타 스님은 국수 몇 가락을 직접 먹어보며 밝은 미소를 짓고 있다. 공장의 벽면에는 손으로 직접 그린 ‘국수생산 공정도’가 붙어 있다. 다가가 살펴보니, 밀가루 탱크에 있는 밀가루가 한 시간당 500킬로그램씩 공급하는 공급기를 거쳐 적당한 양의 소금물과 섞인 후 국수를 직접 만드는 공정인 알파 1,2기를 거쳐서 성형기와 열처리를 한 후에 1차 절단에 이어 수평 건조로로 보내지는 과정이 소상하게 그려져 있다.


"힘드냐”질문에 미소로 답변

국수 가락을 커다란 가위로 자르는 한 여성 공원에게 다가가 “힘들지 않느냐”, “하루에 몇 시간이나 기계를 가동하는가” 등을 물었지만 대답대신 밝은 눈웃음을 지을 뿐이다.

“일을 하다가 힘에 부치거나 삶이 고달플 땐 가까운 정방산 성불사로 달려가 부처님께 매달려라. 그러면 부처님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실 것이다”라는 법타 스님의 격려를 듣는 직원들의 표정이 해맑다. 법타 스님의 인사말이 끝나자 ‘그렇지 않아도 성불사에 가면 기도를 한다’는 이도 있고, ‘스님 말씀을 들었으니 앞으론 정말 그렇게 하겠다’는 이도 있다. 즐거운 표정들이다.

문득 법타 스님이 “기왕에 성불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 부장이 성불사 노래를 한번 불러보라”고 제의한다. ‘반주 없이는 노래하지 않는다’는 것이 평소의 소신이지만 북녘의 동포들과 함께한 자리인 만큼 흔쾌히 응했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노래가 한 두 소절 이어지니, 누구랄 것도 없이 따라 불러 어느새 그만 합창이 되었다. 진한 동포애가 아니라면 처음만난 사람들끼리 이렇게 정을 나누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리라.

‘언제든 북에 오면 꼭 다시 들려 달라’는 금강국수공장 식구들의 말을 뒤로 하고 국수공장을 빠져 나왔다. 시간은 벌써 오후 3시를 넘어서고 있다. 서두르지 않으면 성불사를 제대로 볼 수 없기에 정반산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이학종 부장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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