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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대통령, 국군, 종교

기자명 윤원철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김영삼 대통령이 국군중앙교회에서 예배를 본 일을 두고 많은 다른 종교인들이 언짢아하고 있다. 대통령의 조그만 동정 하나가 왜 그렇게 물의를 일으키는가? 몇 년 전인가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식사하다가 자기는 브로콜리라는 야채가 싫다고 한 마디 했더니, 브로콜리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화가 나서는 브로콜리를 몇 트럭인가 가져다가 백안관에 부려 놓는 바람에 혼이 난 적이 있었다. 공인의 처신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종교 문제는 브로콜리에 비교할 수 없이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생각해 보아야 할 사안이 많다.

종교의 자유는 우리 사회가 구현하려는 이념의 하나이며, 헌법에서도 기본권으로 보장되어 있다. 그런데, 어느 부문의 자유나 마찬가지로 종교 자유의 행사에 있어서도 어차피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자기의 자유를 행사하는 가운데 남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까지 개의치 않아도 좋을 만큼 무한정의 자유가 보장될 수는 없다.

보도에 의하면, 대통령의 이번 행사는 분명히 다른 종교인들의 신앙 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부작용이 있었다고 한다. 행사 전날, 다음날 있을 대통령참석 예배에 기독교인 장병들이 빠짐없이 참여하도록 독려하기 위해서 일직과 당직 근무 편성을 조정하여 다른 종교인들로 하여금 근무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일에는 대통령 경호를 위해 국방부 종교 센타의 출입을 통제함으로써 다른 종교의 신자들이 항의하는 사태가 있었고, 불교의 일요 정기 법회등 다른 종교의 집회에는 참석자가 격감했다고 한다.

종교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한국의 다종교 상황이 안고 있는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서 경고해 왔다. 다종교 상황은 현대 시민사회, 개방사회의 한 필연적인 모습이지만, 우리나라만큼 철저한 다종교 상황에 처하게 된 곳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그 상황을 잘 소화하고 전개해 나가면 현대 개방사회의 이상을 고도로 구현한 모범적인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각자가 절대 신념의 체계여서 절대적으로 배타적일 수도 있는 여러 종교들이, 갈등의 샘으로서가 아니라 인류 지혜의 총화로서 나란히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사회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조화임에 틀림없겠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부문의 자유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남의 종교 자유를 자기의 종교 자유와 똑같이 존중해 주어야 한다.

사적인 종교 활동도 자칫하면 남의 종교 자유를 침해하기 쉽다. 더구나 우리 사회에서는 제도와 행정에서조차 종교 자유의 형평 보장이 후진적인 상황이다. 종교 자유의 보장에 문제가 있는 대표적인 예의 하나가 군대이다. 군대에서의 종교 활동 문제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직접 경험한 바 있다. 훈련소에 있을때, 온 중대의 일요일 일과로서 예외 없이 교회로 인도되어 예배에 참석했다. 각자의 종교에 따라 교회에도 가고 법당에도 가고, 종교가 없는 이는 내무반에 남아 있고, 그런 게 아니었다. 설마 지금도 그 지경은 아니겠지만, 군부대 내에서 어불성설의 종교 탄압 사건이 종종 보도되는 것을 보면 아직도 문제가 첨예하게 남아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사회적 영향력이 가장 큰 공인인 대통령이(더구나 군통수권자이다)공적인 활동으로 거기에 가담했다는 점 때문에 이번 일이 큰 물의를 빚는 것이다.


윤원철 <서울대 종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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