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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授記)와 칭찬(稱讚)

기자명 혜민 스님

“희망 주는 칭찬 한마디 인생을 바꾼다”

박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최근에 『법화경(法華經)』의 오백 제자 수기품 (五白弟子授記品) 을 다시 보게 되었다. 법화경은 개인적으로 참 인연이 많은 경전인데 보면 볼수록 그 깊이와 오묘함에 놀라고 또 놀라는 경이다. 오백 제자 수기품의 내용은 부처님이 아라한 제자 500명이 일정한 세월이 흐른 뒤 모두 부처가 될 것이다라는 수기를(授記) 주시는 장면을 담은 것이다. 수기라고 하면 부처님께서 당신의 제자가 언제 어느 때 부처의 도를 이룬다 하는 일종의 예언 혹은 부처님의 보증을 말한다. 경전에 의하면 수기를 받은 아라한 제자들은 너무 기뻐서 펄쩍 펄쩍 뛰어 다녔다고 적고 있는데 이 대목을 읽으면서 항상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아마도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특별히 공부를 잘 하지도 그렇다고 말썽을 부리지도 않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은 30대 초반의 젊은 여선생님이셨는데 나와 나이가 같은 아들 한 명을 두고 계셨다. 담임 선생님의 아들 또한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또 1학년 때 나와 같은 반을 지냈던 터라 담임 선생님의 아들과 나는 꽤 친한 친구 사이였다.

그 날 따라 학교 수업이 끝나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걷고 있는 나를 담임 선생님 아들이 보더니 자기네 집으로 가서 함께 놀자고 졸랐다. 그 친구와 같이 놀고는 싶었지만 혹시라도 그 애 집에서 담임 선생님을 만날까 한참을 망설이고 있는데 그 애는 자기 엄마는 오후 4시 이전에는 절대로 집에 오지 않는다며 나를 설득했다. 그래서 결국 선생님이 오시는 오후 4시 이전까지만 논다는 계획 하에 그 친구네 집으로 같다.

그러나 그 애가 가지고 있는 많은 장난감에 온통 정신을 빼앗겨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오후 4시를 훌쩍 넘기고 말았는데 그 때 갑자기 대문이 열리더니 담임 선생님의 모습을 드러냈다. 숙제와 예습․복습은 하지 않고 친구와 장남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큰 꾸지람을 듣지 않을까 선생님을 보는 순간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나를 보시더니 아주 환한 얼굴로 나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한참 동안 나를 안아 주셨다.

그러더니 선생님은 그 친구가 착한 일을 할 때만 준다는 초코파이를 두개나 꺼내 나에게 주시면서 나에게 “너는 앞으로 공부도 잘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모범이 되며 나중에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선생님은 믿는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말에 그 어린 가슴이 얼마나 감동을 했는지. 그 날 이 후로 나는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정말로 다른 친구들에게 모범이 되도록 노력했다. 지금 내가 이 곳에서 박사과정까지 밟을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해 주신 말씀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부처님께선 선정 안에 드셔서 제자들이 미래에 불도를 성취하는 것을 보시고 수기를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그 제자들이 불도를 이루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자들은 자신이 존경하는 스승님으로부터의 큰 기대와 격려에 부응하기 위해 더욱 더 분발하는 가운데 불도를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알고 있는 노 보살님 중에도 어느 큰스님과의 짧은 친견을 통해 들었던 법문을 평생 삶의 목표로 삼고 정진하시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믿음과 희망을 주는 칭찬 한마디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혜민 스님

vocalizethi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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