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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 희곡 - 아름다운 그늘

기자명 우봉규
  • 기고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날 먹고 원숭이는 살려주렴"

등장하는 동물:

원숭이
표범

무대:아득히지평선이보이는초원의한가운데. 몇 그루의 키작은 나무들만이 외롭다.햇볕은 쨍쨍.

막이 오르면

소는 커다란 몸집으로 햇볕을 가리고 있고, 원숭이는 소가 만드는 그늘에서버젓이 누워있다. 그러나 원숭이는 그것도 싫증이 났는지 소의 꼬리를 잡고장난질. 그러나 곧 원숭이는 소의 잔등에 올라탄다. 그리고 쏟아지는 햇볕을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한참을 깔깔거린다.

원숭이:참으로 좋은 날이야. 히히히!

소:이곳은 위험해. 어서 숲으로 돌아가야지.

원숭이:내가 싫다고 했잖아. 히히히!

소:내가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왜 내 말을 듣지 않나?

원숭이:이젠 무섭지 않아.

소:벌써 표범이 이리 오고 있을거야.

원숭이:왜 내가 이걸 이제야 알았는지 몰라.

소:무슨 소리야?

원숭이:비밀, 그렇지만 곧 알게 될거야.

소:표범은 언제나 사납지.

원숭이:(자신만만하게)그렇지만 오늘은 달라.

소:(물끄러미 원숭이를 쳐다본다)

원숭이:이제 내가 싫구나?

소:나도 표범은 당할 수 없어.

원숭이:그렇지만 난 당할 수 있지.

소:내가 죽으면 너도 죽게 돼.

원숭이:다른 소를 따라다니면 되지.

소:그 소도 죽으면.

원숭이:너같은 소는 얼마든지 있어. 봐 이쪽 저쪽 풀밭에 널린 게 니 소잖아.

소:성질이 고약한 놈들도 있다구, 그러다가 뿔에라도 받히면?

원숭이:난 태어날 때부터 날쌔기 때문에 아무 걱정없어.(재빠르게 소의 등에서 내려와 벌렁 하늘을 바라보며 눕는다)이처럼 따뜻한 햇볕을 아는 이가 이세상에 나 말고 또 있을까? 이 따스한 볕이 있다는 걸 표범에게 알리면 다시는 날 잡아먹으려 하지 않을거야.

소:(어이가 없어서)…일전에 표범에게 쫓기던 여우가 자기가 먹던 머루 다래가 이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걸 들고 표범을 찾아갔지.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 줄 아나?

원숭이:어떻게 되었는데?

소:그걸 먹은 표범이 당장 배탈이 났지.

원숭이:그래서?

소:그대신 여우를 잡아먹었지.

원숭이:그렇지만 난 달라. 난 진정으로 저 햇볕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것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그걸 표범에게 알려주면…

소:어리석군.

원숭이:언제까지나 쫓겨다닐 수는 없어.

소:그래서 표범을 찾아갈 셈인가?

원숭이:찾아가지 않아도 이 언덕으로 올거야.

소:그럼 정말 혼자 표범과 맞서겠다는 말이야?

원숭이:그래. 그 놈은 억센 발톱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지만 난 뛰어난 혓바닥을 가지고 있거든. 헤헤! 넌 저기 숨어서 구경이나 하라구?

소:여기에 숨을 곳은 없어.

원숭이:(의기양양하게)내 뒤에 숨으라구.

소:….

그 때, 굶주림에 지친 표범이 으르렁거리며 나타난다.

소:숲으로 돌아가야 해.

원숭이:아니야, 우선 쉼호흡을 하고….

표범이 어슬렁거리며 그들에게 걸어온다.

원숭이는 얼른 뛰어나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린다.

표범:?

원숭이:왜 도망을 가지 않느냐구요?

표범:흐흐, 아주 이젠 죽을 각오를 했구나.(소를 바라보며)그런데 그대는 어째서?

소:…….

표범:흐흐흐!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군. 그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먹이가 통째로… 흐흐흐!

원숭이:이 숲의 아저씨에게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표범:흐흐흐!(가소롭지만) 그래, 무슨 말이냐?

원숭이:아저씨는 모르고 계시겠지요.

표범:그래, 넌 많이 알아서 좋겠다. 흐흐!

원숭이:전 오늘 아저씨에게 그 소중한 것을 가르쳐 드리기 위해 이렇게 죽음을 무릅썼답니다.

표범:대견하구나. 흐흐!

원숭이:아저씨, 우리에게는 저 따뜻한 햇볕이 있습니다. 그 햇볕이 얼마나좋은지 아저씨께서는 모르고 계셨지요? 저는 그걸 안 순간 아저씨에게 그걸제일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표범:오호! 그걸 얘기하려고 이렇게 있었다아? 그렇지. 나는 항상 저 흰소가만들어주는 그늘 밑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흐흐흐!

원숭이:(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예, 그렇습니다요!

표범:흐흐흐! 이렇게 햇볕 좋은 날 배를 땅에 대고 앉아 너의 피와 살을 뜯으면 더욱 맛이 좋겠지이? 으흥!

원숭이:예?

표범:(비로소 이빨을 드러내며)이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난 저 햇볕 때문에 숨을 쉴 수도 없어!

원숭이:(두려움에 벌벌 떨며) 아니 아저씨 제 충성스런 마음을 어찌 그리 몰라주십니까?

표범:충성, 흐흐흐! 추웅성!

원숭이:마음씨 좋고 씩씩한 아저씨, 아저씨의 안부를 우리 어머니도 물었고, 아버지도 물었어요. 행여나 어디서 무슨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으셨나 하구요. 아저씨 안녕하시기를 우리는 언제나 빌고 있었답니다.

표범:교활한 놈, 네가 날 아저씨라고 불러 속이려 드는구나.

원숭이:아니어요. 전 언제나 아저씨를 만나기를 빌고 또 빌었어요.

표범:그런데 왜 몸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떠느냐?

원숭이:어이구, 이건 너무 기쁜 나머지… 우리 원숭이들은 원래 기쁘면 몸을떤답니다.

표범:호, 너는 내 꼬리를 마구 짓밟고, 밤에 잠을 잘 때면 요란한 소리로 떠들었다. 너 때문에 내가 고통받은 생각을 하면….

원숭이:아저씨 그렇게 말씀하실 것이 아닙니다. 아저씨는 언제나 나를 향해앉아 있었고 너는 아저씨를 향해 왔으며 아저씨 꼬리는 뒤에 있는데 어떻게내가 밟을 수 있겠습니까?

표범:웃기는 소리, 나는 나무를 잘 탄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 항상 앞 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날뛰었다. 벌써부터 내가 널 잡아먹기 위해 벼르고 있었는데 이제 어머니 아버지를 팔아 나를 속이려 해!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원숭이, 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 꼬리가 없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원숭이:그럼, 아저씨 꼬리는 수를 헤일 수 없이 많다는 말씀인가요?

표범:이 세상 어느 곳이든 바다고 산이고, 그 어느 곳이든, 내 꼬리 없는 곳없으니 이제 넌 날 피할 수 없다.

원숭이:(한참을 생각하다가)나쁜 놈.

표범:흐흐, 이제야 본 마음을 이야기 하는구나.

원숭이:이전에 우리 부모와 형제는 이러한 말을 내게 하였다. 나쁜 놈은 그꼬리가 길다고, 그래서 나는 저 허공으로부터 왔다!

표범:나는 네가 허공으로부터 온 줄을 안다. 그러나 그렇게 올 때 너는 내먹이를 방해하러온 것이다. 네가 저 허공으로부터 올 때 너를 보고 사슴떼가달아났다. 나는 너 때문에 그 맛있는 먹이들을 잃었다.

원숭이:(또 한참 생각하다가)아저씨, 제발 저에게 사슴에게 했던 그 난폭한짓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아무쪼록 내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제발!

이윽고 재빠르게 소의 등 뒤에 숨어버린다.

소는 말없이 표범을 쳐다본다.

표범:원숭이가 주는 고통을 참는 그대, 무슨 계획이 있어서인가? 그는 경솔하게 벗을 배반하고 모든 욕심을 채우는 왕처럼 행동한다. 뿔로써 그것을 떠받아 치우고, 발로써 그것을 짓밟아버려라. 진정 내게는 그토록 용맹한 그대가 어째서 저 원숭이에게는 그토록 관대한가?

소:내가 아니면 누가 저것을 받아주겠는가? 필시 다른 사나운 소에게 받쳐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표범:그것이 어찌 그대와 상관 있는가?

소:그는 언제나 내 그늘에 와서 쉬었다. 내 뿔을 잡고 놀았고, 내 꼬리를 잡고 희롱하였다. 그를 대신해 줄 다른 어떤 동물도 없다. 내가 그를 내치지않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표범:미련한 그대, 어찌 그것이 그대를 위한 일이었겠는가?

소:난 나를 위한 그 어떤 행동을 다른 누구에게도 찾지 않는다. 난 내 주인을 위해서 밤낮으로 일한다. 그리고 죽어서는 그들의 고기가 된다. 그렇다고주인을 떠받을 수는 없다. 그들은 언제나 내 그늘에 있었으니까.

표범:그늘?

소:이 세상 누구나 그늘을 가지고 있다. 그 그늘 안에서는 시비를 가릴 수없다.

표범:그래서 등에다가 똥을 싸도, 밤에 시끄럽게 떠들어도, 꼬리를 가지고장난을 쳐도 참았단 말인가?

소:그늘은 참는 것이 아니고 덮어주는 것이다.

원숭이:히히, 봐라 난 이토록 충실한 내 종을 거느리고 있단 말이다. 그러니얼른 썩 물러가도록 해라! 원 아무리 막 되먹은 놈이라고 하지만 어른은 알아봐야지.허험!

표범:흐흐흐! 저 뛰어난 혓바닥, 그렇지만 오늘 그걸 내가 아주 맛있게 먹어주마.

소:내 앞에서는 누구도 피를 볼 수 없다.

표범:그대를 내가 그 뿔이 성하기 전에 잡아먹었어야 했는데.

소:내대신 수많은 내 형제들이 너의 먹이가 되었지 않았느냐?

표범:그렇지만 오늘은 그대의 살과 피가 필요하다. 난, 이상한 그대로하여벌써 몇 날 며칠을 굶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소:진정으로 그대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라면 나를 먹으라. 내 육신이 살아 있는한 그 어떤 누구도 내 앞에서 피를 보게 할 수는 없다.

표범: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소:그대신 나를 먹게 되면 내 옆에 붙어 떨고 있는 이 가엾은 원숭이는 살려주어야 한다.

표범:약속은 할 수 없지만, 그대를 먹어 배가 부르면 저런 말라깽이 원숭이에게는 관심도 없다. 오늘은 아니지만 결국 내게 죽게 되겠지만 흐흐흐!
소, 표범에게 목을 늘어뜨린다.

원숭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리저리 마구 날뛴다.

표범, 억센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릉거린다.

이윽고 소에게 돌진한다.

표범의 무지막지한 포효와 원숭이의 째지는 비명소리 들리는 그순간하늘을 찢는 천둥과 번개, 그리고 캄캄한 어둠.

그 캄캄한 어둠을 뚫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하늘의 소리:햇볕이 따스한 것만을 알고 그들의 고마움을 모른 원숭이가 모든 중생이며, 소를 잡아먹은 그 표범이 우리들에게서 한시도 떠나지 않고 우리를 망가뜨리는 번뇌이다. 그리고 어리석은 원숭이에게는 그늘을 만들어주었으며, 굶주린 표범에게 순순히 잡아먹힌 분이 바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을 하시던 전생의 부처님이었다. 그는 수도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세월을그렇게 그의 살과 피를 원하는 중생에게 자신의 목숨을 주었다.



지은이 우봉규


60년 경북 상주 출생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황금사과」로 동양문학 신인문학상
「객사」로 월간문학 신인 문학상
「남태강곡」으로 삼성문예상
「석정시의 불교적 해명」으로 해인상
「갈매기야 훨훨 날아라」로 계몽사 아동

문학집

국립극장 광복50주년 기념작 「눈꽃」공연
작품집으로, 장편소설 「이곳에 살기 위
하여」, 「저 산문밖에는 아직도 눈이 내리
고」와 중단편집으로 「은하계밖으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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