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금지된 사랑’에 치중한 함량미달
연출한 영화보다 영화인으로 활동한 이력이 더 강열한 인물인 정지영은 작품세계가 지나치게 편차가 크다.
그는 1983년 고은의 ‘산산이 부서진 이름’을 영화화하기로 작정하나 보류한 후에 근 10년 후에 결국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라는 제목의 영화를 연출한다. 그 사이에 지리산 빨치산을 다룬 ‘남부군’과 월남전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하얀 전쟁’에서 ‘여자가 숨는 숲’같은 성애영화를 연출하여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는 김기영의 ‘파계’와 선명하게 대조된다. ‘파계’는 법통전수를 둘러싼 사찰내의 권력다툼과 파계를 통한 깨우침이라는 불교소재 소화에 전력을 다했다.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는 법통전수나 화두를 푸는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거나 눈에 띄지않고 침해(최진영 분)와 묘혼(김금용 분)간의 금지된 사랑이 팔할이요 침해의 속세에 대한 그리움이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다. ‘파계’는 법통 전수 과정에서 지속적인 수련과정을 통한 점수(漸修)보다 불현듯 깨달음에 도달하는 선불교의 돈오(頓悟)의 승리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는 침해와 묘혼의 사랑에 많은 공을 들여 두 스님의 고뇌에 찬 대사와 밀애 장면이 주를 이룬다.
감독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불교가 산 속이라는 제한된 공간에만 존재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조실스님의 다비식이 끝난 다음 법당에 남아있는 묘혼과 대조적으로 사찰을 떠나는 침해의 모습은 세속으로 공간을 확장해야한다는 감독의 의도가 개입된 것 같다.
하지만 침해의 떠남이 사전에 충분한 설득력을 지닐 만한 고뇌에 찬 결단이기보다는 조실스님인 법연의 열반 이후 전격적으로 내려진 결단이므로 너무 돌연해보인다. 그리고 침해의 떠남은 성과 속의 경계가 없음을 자각한 자의 만행이 아닌 묘혼과의 도피행각을 꿈꾸는 도피처로써의 속세이거나 철들면서부터 동경해온 사찰로부터의 탈출로써 기능하여 감독의 의도를 벗어난다.
묘혼과 침해의 만남과 정신적 갈등은 관객을 흡입할 만큼 촘촘하게 짜이지 못하고 불교적 세계를 전하려는 원작자의 의도도 탈색되어버렸다. 즉 금기의 사랑이라는 상업적 코드도 성공적으로 구사하는데 미흡했으며 동시에 불교적 세계를 담아내는 데 함량 미달을 면치못하고 있다. 상업적인 열애와 불교적인 교리가 모두 두 손을 빠져나가는 바람에 침해의 하산은 연출 의도를 위반한 채, 가산을 정리해 집을 나서는 소년 가장같은 어색함을 노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영길의 카메라가 잡아내는 한국의 설경과 호롱불의 붉은 색감이 배어나는 선방의 분위기는 한 폭의 그림같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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