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계 미신고시설 - 불우이웃의 보금자리 ‘의정부 쌍암사’

기자명 이재형

“스님이 우리 아빠예요”

도봉산역에서 12-1번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가니 우측으로 쌍암사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한 비포장 길을 따라 후여후여 올랐다. 400년은 됐음직한 은행나무가 신장처럼 버티고 있는 마을을 조금 지나자 비구니 만선 스님의 사리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만선스님 50년 시작…정산스님 이어



지난 1950년 한국전쟁 때부터 갈 곳 없는 아이들을 하나 둘 맡아 길렀던 노스님. 40여 년 동안 수백 고아들의 ‘어머니’를 자처하며 함께 웃고 울었을 스님의 유흔이 강바닥처럼 깊고 고요한 침묵으로 서 있었다.

수락산 기슭에 자리한 쌍암사에 들어서자 먼저 마주친 것은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목소리. 이곳 산중에도 월드컵 바람이 불었는지 아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공놀이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법당 안에는 칠순을 훨씬 넘긴 듯한 세 분 할머니가 오순도순 둘러앉아 초파일 연등을 만들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익숙한 솜씨로 못질을 하고 있던 주지 정산 스님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조그마한 방을 하나 만들고 있어요. 지금 할머니들이 머물고 있는 곳이 아무래도 불편해 보여서요. 이제 이 일도 거의 마무리 됐어요.”

쌍암사에는 아이 7명과 할머니 3명, 스님과 공양주 보살이 한 가족처럼 살고 있다. 지난 90년 86세의 만선 스님이 노환으로 입적한 후 어릴 때부터 이곳에서 자라 출가한 정산 스님이 이제는 아이들과 노인들을 돌보고 있다. 10평 남짓한 법당 건물에 석가래를 잇고 비닐을 쳤기 때문에 언뜻 초라해 보이기도 했지만 안쪽은 그런대로 꽤 넓어 보였다. 비인가 시설로 구분돼 시에서 어떤 도움도 받고 있지 못한 형편이지만 아이들의 얼굴에서 구김살 하나 찾아보기 어려웠다.



호나우도를 닮고 싶은 이환이



“친구들하고 있으니까 재미있어요. 할머니들도 같이 사니까 너무 좋고요.” 호나우도 같은 멋진 축구선수가 꿈이라는 이환(호암초등 4)이의 말이다. 20여 년이 넘게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서월녀(78) 할머니도 “물질적으로 풍요롭진 않지만 손주 같은 아이들과 친아들 같은 스님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노인들은 노인들대로 참으로 기막히고 기구한 사연들을 안고 산다. 미혼모의 아이, 태생도 모르는 아이, 형제가 한꺼번에 버려진 아이, 자식에게 쫓겨난 할머니 등. 이들에겐 더없이 아픈 상처지만 굳이 숨기려 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안고 살아가야 할 기억이기에 애써 외면하기보다는 받아들여 스스로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몫 다하는 모습에 흐뭇



변두리에 위치한 가난한 절. 이곳을 찾는 신도들 또한 대부분 가난하다. 그런 까닭에 들어오는 시주돈으로만 절을 운영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스님은 장례식장에서 염불을 하거나 49재를 지내는 등 백방으로 뛰며 마련한 보시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한다.

그렇게 십수년. 그동안 수많은 아이들이 이곳 쌍암사를 거쳐갔다. 이제는 어엿한 어른이 돼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자기 몫을 톡톡히 해내는 것을 볼 때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난다. 그러나 피붙이 하나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이들에게 ‘평범한 삶’이란 지극히 어려운 일. 중학교 졸업을 얼마 앞두고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며 뛰쳐나간 아이, 한 밤중에 전화를 걸어 “사는 게 싫다”며 한숨을 토해내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백천마디 말로도 표현 못할 안타까움이 스님의 가슴에 옹이처럼 박히곤 한다.

“부모 없는 설움은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좋은 환경에서 노인들을 모시고 아이들을 키우면 좋겠지만 어디 그렇습니까. 우리 절집안이라도 나서 이들을 보살펴야죠.”

아이들에게 늘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는 스님. 일곱 명 아이의 아빠이자 세 할머니의 아들인 스님은 지금의 생활이 행복하기만 하다.



의정부=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