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이 나입니다』

기자명 김광하

폭력과 미움의 악순환 보여준 시집

이산가족이 남과 북에서 서로 만나고, 또 남북이 서로 통하는 도로가 닦여지니 통일의 가능성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그러나 최근 북한 핵 문제로 시비가 분분하다. 미국이 이 문제로 북한을 응징하겠다고 하니 전쟁이 또 다시 이 땅에 들이닥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작년에 우연히 서점에서 류춘도 선생의 시집 『당신이 나입니다』를 구해 읽게 되었다. 류춘도 선생은 육이오 전쟁 당시 의대생이었는데 북조선 군의관으로 종군하였다. 그러다 인민군 퇴각 때 포로로 잡혔다 풀려난 후 남한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살아오신 분이다. 70이 넘은 저자는 지난 50여 년 동안 전쟁에서 겪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혼자 간직하고 살았다고 한다. 이 시집은 그동안 감추고 살았던 자신의 고통을 시로 토해낸 책이다.

'나는 병원입구에서 유령같은 사람들을 본다. 아! 저 사람들은! 갑자기 숨을 멎는다. 불에 탄 얼굴은 공처럼 부어 오르고 벗겨진 피부 밑 시뻘건 살에서 체액이 흘러내린다. 처참한 모습들, 휘청될 때마다 풍겨오는 지독한 화약냄새, 끝없이 밀려오는 똑같은 모습들, 그러나 수용할 곳도 약도 더 이상 없다.

비통한 눈으로 하늘만 응시하는 군의관들, 논배미 안에 줄지어 누운 부상병들, 고작 나뭇가지로 그들을 덮어주는 것밖에는… 나는 구급낭을 멘 채 그들 옆에 언제나 서성거린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자신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논배미의 회상' 중에서)'

'쫓겨가는 저들, 쫓고있는 저들, 그 누구인지, 땅을 치며 울부짖는 어버이 두고, 아, 우리의 강산이여, 말해다오, ('아름다운 강산이 울부짖는다' 중에서)'

전쟁이 가져오는 슬픔과 원한 앞에 지역과 이념의 차이는 의미가 없다. 육이오 때, 서로의 가슴에 총을 쏜 그 젊은 꽃들의 아픔과 그들을 잃어버린 부모와 친척들 그리고 남북이 갈라서며 헤어진 피붙이들의 한과 슬픔을 과연 어떤 정치이념이 풀 수 있을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이념적 경직성, 증오, 폭력적 태도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 땅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폭력과 미움의 악순환을 경계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다시 새기게 되었다. 전쟁이 가져오는 슬픔과 고통의 참상을 현실 그대로 본다면 과연 이런 이념적 논쟁이나 대립에 집착할 수 있을까?

나 자신도 혹 모임에서 토론하는 중 나도 모르게 이념적 대립의식이 일어나면 류춘도 선생의 절규와 부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게 된다. 북한주민들의 굶주림,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을 볼 때, 불자(佛子)로서 내가 과연 그 고통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아니면 이념적 비판에 매달리고 있지나 않은지 스스로 살피고 자책하게 된다.



김광하 외국인노동자 인권문화센터 상임위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