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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 - 존재의 여백 풀어낸 격외의 작업

기자명 이학종
  • 불서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최승호의 시를 읽으면 아함경의 사성제 법문을 듣는 느낌을 갖는다…(시인은)초기불교에만 머물지 않고 『유마경』으로 나아간다. 유마거사와 같이 `중생이 아프므로 나도 아프다'고 증언한다."

《책안의 불교 책밖의 불교》의 저자 김호성 박사는 최승호의 세 번째 시집《진흙소를 타고》를 이렇게 평했다. 최승호의 시가 둘이 아닌 진리(불이법문)를 노래하는 선시(선시)와 (아직은)거리가 있다고 지적한 김 박사는 그러면서도 일부 선시풍의 시와는 달리 위선(위선)과 위악(위악)의 제스쳐가 없어 좋다는 기대를 빼놓지 않았었다.

최승호씨가 최근 《여백》이라는 이름의 시집을 냈다. 지난해 발표한 시집《눈사람》이후 지난해 연말과 올초까지 집중적으로 씌어진 시들을 묶은 것이다. 이 시집은 《눈사람》의 연장선상에서 쓰여진 제1부 `눈사람'과, 시를 부정하려는 회의적인 생각들이 시쓰기의 밑그림이 되어준 제2부 `여백의 단상', 그동안 최승호 시인이 보여준 독특한 메타포(은유)를 가지고 쓴 메타시(시)형식의 제3부 `길', 그리고 소설 한 토막 혹은 산문시 형태로 존재의 여백을 전면에 풀어헤치는 제4부 `물안개' 등 모두 4부로 구성돼 있다.

이번 시집의 특징은 각각의 시들이 마치 한 편의 대하시를 읽는 듯이 일관된 이미지로 다가오는 점이다.

"산성눈이 쏟아지고 그을음 때묻은 눈이 내리는 세상에서 순수한 눈사람을 찾아보기란 어렵게 된다. 현대적인 눈사람이란 소음에 진동하는 눈사람이며 잡(잡)을 품은 채 시커먼 공해를 뒤집어 쓸 수 있는 눈사람이다.//나는 상상한다, 하수도 한복판에서 서 있는 눈사람을. 청년 예수도 석가 노인도 너절한 사람의 때를 씻어주던 성스러운 때밀이."<시 `잡스러운 순수'전문〉

일체중생이 천차만별의 형태를 갖고 있으나 모두기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불교의 진리를, 하늘의 달은 하나이지만 천 개의 강마다 달이 비추는 이치를 최승호는 메타시와 잡문시(잡문시) 형식의 산문시를 통해 드러내보이고 있다. 그 스스로 산문시를 넘어서는 시도를 격외(격외)의 작업이라며 혹 이를 불온하게 보는 이가 있을까 우려를 나타냈지만 어쩌면 시의 철저한 자기부정을 통해 신생(신생)을 꿈꾸고자 하는 시인의 이같은 용기가 백척간두진일보의 치열한 선적(선적) 이미지를 시어로 형사화하는데 성공한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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