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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담스님의 반야심경강의

기자명 혜담 스님
  • 동정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⑪행

그렇다면 식은 무엇을 인연으로 해서 있는가? 이것을 탐구해서 발견한 것이 행이다. `행'이란 말은 이 12연기설의 항목 외에도 삼법인의 하나인 `제행무상'이라고 할 때의 행과 `다섯가지 모임'의 하나인 행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 모두가 범어 `삼스카아라(samskara)'의 역어로서 `위작.조작' 등의 뜻으로 해석된다. 즉 `만들어진 것' 혹은 `지어서 만드는 힘'을 행이라고 한것이다.

이 행에는 신행.구행.의행의 세 종류가 있는데, 이것은 행이라는 말이 업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위의 식은 인식이나 판단을 하는 힘인데, 그 배후에는 그 사람이 가진 특유의 습관이 있다. 우리들이 식에 의해서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것은 완전한 백지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특유의 욕망이나 성격, 소질 등에 채색 되어 거기에 움직여 판단한다.

가령 사냥이나 낚시를 하는 행위를 두고 어떤 사람은 살생이라고 죄악시하는가 하면, 또다른 사람은 건전한 레저라고 당연시한다. 무엇 때문에 한가지 사안을 두고 사람마다 이렇게 가치기준이나 판단이 다른가? 그것은 식에 갖추어져 있는 습성, 즉 업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식을 배후에서 조종하면서 개인적인 것으로 형성하는 힘이 행이다.그래서 `행으로 말미암아 식이 있다'고 설하는 것이다.


무명

마지막으로 행, 즉 업은 무엇 때문에 짓게되는가를 고찰해서 발견한 것이 무명이다. 무명이란 `명'이 없다는 의미로서, 여기서 말하는 명은 지혜를 뜻한다. 그러니까 지혜가 없는 것을 무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명의보다 구체적인 의미는 단순히 올바른 지혜가 없다는 것 뿐만 아니라,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미망에 덮혀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 미망성은 맹목적이다. 가령 어떤 중생이든 간에 살고자 하는 의욕을 가지고 있는데, 그 살고자하는 욕망은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이유도 없으면서 무조건 살고자 몸부림친다. 어디 하잘것 없는 미물 뿐인가. 우리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이 살고자 하는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맹목적인 삶의 욕구가 바로 무명이다. 우리들이 만약 그 무명심을 바로 볼 수만 있다면 행은 저절로 없어지고 생사의 고통도 사라진다. 그러나 무명을 확연히 본다는 것은 그렇게 용이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무명은 일종의 꿈과 같은 것이어서 꿈을 꾸고있는 상태에서는 그것이 꿈인줄 모르기 때문이다. 꿈 속에서는 꿈 그 자체가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명에 의해서 마음이 미혹되어 있는 사이에는 무명의 미망성을 알 수가 없다. 미혹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무명을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들이 수행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잠을 깨고나면 꿈인 것을 알듯이, 우리들이 어떤 수행을 통해서 무명을 발견한 때에는 무명은 없어지고 만
다. 결국 무명이라는 것은 앎에 의해서 없어진다. 따라서 무명이 무엇을 인연으로 해서 생기는가를 더 추구할 필요가 없고, 12인연은 무명을 발견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다.

이제 《반야심경》에서 설하는 12인연도 없고 12인연이 다함도 없다는 이유를 설명할 때가 되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12인연은 생사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그것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추구하여 마침내 무명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교법체계는 현상적인 인간 육신이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설한 의론이다. 그렇지만 공 가운데는 그러한 어떤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무일뿐이다.


혜담 스님 /선우도량 공동대표,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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