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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불교 (끝)-불교의 사회적 행동주의

기자명 박경준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참여불교는 불교이상세계 건설의 전환점"

불교 해방운동의 이념적 근거는 '자비·연기법·무아'
'식민정책·사회적 불평등' 등 현실참여 근본 원인


연재를 마치면서

그동안 인도와 스리랑카를 비롯해서 동남아 각국 불교의 사회참여에 대해서 장장 21회에 걸쳐 기획 연재를 해왔다. 본래의 기획 중에는 스리랑카의 참여불교운동가 A.T.아리야라트네와 베트남의 틱낱한 스님, 그리고 일본 창가학회의 활동이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들 세 가지 기획은 제외하게 되었다. 아리야라트네의 경우는 때마침 한국을 방문한 그와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 기사가 나갔기 때문에 제외하게 되었고 틱낱한 스님은 현재 파리에서 활동 중이며 본국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리고 창가학회는 일본불교계의 다른 종파와 단체의 활동과함께 별도로 다룰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로 이번 기획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금년안에 내용을 보다 상세하게 단행본으로 엮어서 간행될 《참여불교》에는 이 세부분이 다 수록될 것이므로 참고하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미국 제임스 메디슨 대학교의 종교철학과 셀리 B. 킹 교수는 인도를 비롯하여스리랑카와 동남아 각국의 참여불교는 식민지 정책, 외국의 침략, 전쟁, 서구화,억압, 사회적 불평등, 빈곤, 차별 정책 등이 그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그는 참여불교를 현대에 있어서 불교의 사회적 행동주의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불교의 행동주의는 전통사회가 근대화의 요구와 직면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혁신주의와 신전통주의를 그 대안으로 선택하게 되듯이 혁신주의와 신전통주의에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혁신과 신전통주의
로버트 N.벨라는 '근대 아시아의 발달과 종교'에서 "혁신주의는 사회의 혁신과국가의 부흥을 주장하며 초기의 스승(敎祖)과 가르침에로의 회귀를 주장하며 전통을 희석시키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근본 가르침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전통에 대한 강도높은 자기 비판이 따른다"고 한다. 반면 신전통주의는 "최소한의 변혁을 통하여 가능한 한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이념이며 다른 어떤전통보다도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근대적 사상과 방법론을 이용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벨라의 분석에 맞추어서 볼 때, 불교의 사회적 행동주의자들은 전통주의적이거나 신전통주의적인 특성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으나 모두가 혁신주의자라고 킹 교수는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근본적인 관심사는 사회변혁이라고말하고 있다. 실제로 '참여불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를 혁신시키는 데 관심이 있었다. 그중에는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스스로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임무를 사회변혁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불교를 만드는데두었다. 그 한 예로 붓다다사를 들 수 있다. 그는 철학적으로는 사회와 불교를분리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우선적으로 불교를 혁신시킨 다음에 그 불교를 바탕으로 사회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달라이 라마는 또 다른 범주에 해당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가외부 세력의 침입 때문에 강제로 변화를 겪으면서 이미 상처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변화라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 되어 버린다. 이들의첫 번째 관심사는 이러한 도전에 불교가 제대로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들은 부차적으로 불교와 사회의 혁신에 대한 자신들의 통찰에도 깊은 관심이 있으며 그것을 확산시키고자 하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이들은 혁신주의자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고 킹 교수는 말하고 있다.


새로운 불교의 정당화
이러한 불교의 사회참여운동을 역사의 맥락에서 살펴본 크리스 퀸은 아시아 불교인들의 사회적 행동주의의 유형은 전례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들은 근대라고 하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발생한 새로운 것들을 반영하며 불교인들은 그들의 사회적 행위를 정당화시키고자 노력하는 데 대개의 경우 그 정당화는언제나 불교적이다. 그것은 불교의 사회적 행동주의자들이 대부분 자신의 뿌리를붓다에게서 찾고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잇다. 그들은 스스로를 '붓다의 종'이라고부르고 있다. '나는 고(苦)와 고의 완전한 소멸만을 가르친다'고 한 붓다의 말을인용하면서 그들은 붓다가 한 일을 계속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들은'세계의 평화는 바로 붓다의 목적이다'라고 함으로써 붓다의 가르침과 현실을 접목하고 있다.

현재의 가르침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붓다와 팔리 경전에 의존하는 방법, 즉 과거의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정당화하는 이러한 방법은 불교혁신주의는 물론, 우리가 살펴본 많은 인물들에게 있어서 전형적인 것이다. 이러한 유형은 붓다다사의 경우 특히 두드러지는데 그는 다른 사람들도 이 길을 정확히 따를 수있도록 이정표를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학생 시절에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가르침들이 모자라 방황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주석서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강원 교육을 포기하고, 혼자서 팔리 경전과 율장을 읽으며 그 안에서 자신의필생의 사업을 시작하는 길잡이를 찾았다.

이러한 '근본으로의 회귀'는 또 다른 경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사르보다야운동은 팔리 경전을 참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붓다가 사회적·경제적 가르침을제시한 이러한 경전을 강조하고, 사성제와 팔정도, 사범주(四梵住=사무량심)를재해석하면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다. 술락 시바락사는 종종 팔리 텍스트에 의존하면서도 오늘날에 필요한 긴급한 문제라는 측면에서 이를 재해석하면서 사성제와 오계, 사범주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비구니 종단을 부활시키려는 노력에 대한 그들의 지지는 오늘날 그에 대한 정당화와 앞으로 닥칠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처 방안을 위하여 고대의 율장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으로 모아진다.

같은 원칙에 따라, 달라이 라마는 산티데바(Santideva:寂天)의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 Bodhicaryavatara)》을 참조하고, 틱낱한은 《유마경(維摩經,Vimalakirti Nirdesa》을 참조하는 등, 비(非) 테라바다 인물들도 이러한 팔리 텍스트 원전에 대승과 탄트라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첨가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근원으로의 회귀 형태인 것이다.

참여, 불교의 지향점
불교의 사회적 행동주의자들은 그들이 신봉하는 사회적 행동의 기초가 되는 동기를 설명하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텍스트 뿐만 아니라 잘 정비된 불교 원리들을 언급하기도 한다. 사실, 그들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불교원리들을 참조한다. 그리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간다. 그들 중 한 사람으로 달라이 라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나와 남이 서로 바뀔 수 있다는 원리를 강조하면서 이런 의미에서 사회적 행동에 가장 적절하고 유일한 동기는 자비와 연민의 세계라고 끊임없이 역설한다. 붓다다사의 경우, 그의 사회적 가르침은 분명히 고(苦)와 이기주의에 대한 가르침에서 자연스럽게 발전한 것으로서 이것들은 더욱 근본적인 원리가확장된 표현이었다. 같은 선상에서 술락은 무아(無我)란 나와 남의 비착취로 나타나야 하며 이러한 원리를 통해서 사회적 가르침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틱낱한 역시 연민과 자비를 강조하는데 특히 타인을 위한 행동의바탕으로서 나와 남의 불이성(不二性)을 강조한다. 따라서 자비와 연민과 무아는우리의 모든 사회 행동주의자들의 사실상의 기본적인 동기로서 반복하여 등장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시아 불교 행동주의자들이, 그 활동의 기반을 경전의 근거(주로 붓다의 교설)에서 뿐만 아니라 실천과 경험에서도 찾으려 했음을 알게 된다. 경전적인 근거와 철학적 원리는 불교의 사회적 행동주의를 불교적으로 정당화시키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고 또 실제로도 그렇지만, 사회적 행동주의의 실질적 동기는 자비와 연민, 무아라는 발로 반복되어 설명되는 경향이 있다.이러한 경험적 조건들은, 그들이 모두 강조하듯이 불교적 실천과 함께 길러져야한다. 각각의 지도자와 운동이 서로 다른 실천 방법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것은 오계, 팔정도, 사범주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의 선정(禪定)이다.

상호의존성이라는 불교적 원리는 아마도 사회 행동주의자들이 자신의 관점을이해하고 표현하며 정당화사키는 데 이용하는 가장 강력한 이념 수단이라고 할수 있다. 물론 이러한 원리가 사용되는 방법은 상호의존성에 대한 가장 분명한형태의 주장에서부터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상호의존성의 원리가 가장 철저하게, 그리고 가장 효과적으로 적용된 경우는 붓다다사와 틱낱한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에게 상호의존성은 가장 중요한 것이며 그 적용성 또한 무한하게 확산된다.

살아있는 존재는 세계를 공유하며 그런 이유로 각자의 행위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상호의존성의 원리를 적용한다. 평화를조성하기 위한 그들의 프로그램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으로서, 전 세계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이해를 강화시키고, 서로 다른 사회들 간에 관계 개선과 이해를 증진시키며, 모두의 행동을 요구하는 환경의 위기를 주장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다. 달라이 라마 역시 세계의 상호의존적인 특성이점차 증가하기 때문에 정치문제와 환경문제는 물론, 기타의 문제들을 해결하기위해서는 국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전 세계의 상호의존성을강조한다.

이러한 예를 통해서 한 가지 중요한 요소를 알 수 있다. '참여불교'에 등장했던 행동가들은 광범위한 불교적 유산과 전통 중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주제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해동주의를 표출하거나 이념화하고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들은 붓다가 제창한 이래 줄곧 강조되어온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끌어내었다. 연민과 상호의존성, 무아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그들의 또 하나의 목적은 그들의 불교적 실천이 주는 이익에 있다. 그들의 불교적 실천이 주는 이익이란 가정생활, 직장, 학업 등에서 조화롭게 성공하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차원의 행복이다. 사르보다야 운동은 스리랑카 농민들의 행복이다. 최소한의 경제적 풍요와 내면적 평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 목표로 되고 있는 것이다.

맺는 말
지금까지 살펴본 참여불교는 아시아의 종교계 뿐만 아니라 사회와 정치계에도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들이 이러한 위치를 변명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운동이 앞으로 전개해 나갈 형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예언할 수는 없지만 이운동의 많은 지도자들이 조만간 중요한 인물로 부각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근대성에 대한 보수적인 불교계의 반응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의 여부 역시 예측할 수는 없지만 아시아 불교예의 모습이 변화를 겪어 왔고앞으로도 아시아가 계속 근대성과 직면함에 따라 그러한 변화는 계속되리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불교해방운동 전체는 불교의 발전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고 있으며 불교가 제시하는 미래상으로 진화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박경준/동국대 불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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