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식씨, '월간 독립기념관'서 주장
일제에 의한 한국불교 말살 작업이 진행되던 1920년대. 당시 일본에 유학했던 학승들은 어떤 활동을 펼쳤을까.
김광식(독립기념관 전시부장)씨가 〈월간 독립기념관〉에 투고한 ‘1920년대 재일 불교유학생 단체'는 당시 일본유학생들의 활약을 소개하고 있다.
김 부장에 따르면 1920년대 일본에서 활약한 불교유학생 단체는 조선불교유학생학우회와 재일본조선불교청년회 두 곳이다.
조선불교유학생학우회는 재일 불교유학생 최초의 단체다. 승려들은 “당시 사회를 개조의 시대라고 이해하고 조선불교의 구태를 개조하고 사회의정신을 지도하려는 열정에서” 학우회를 결성했다.
학우회의 활동 중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회광의 반민족적^반불교적 행태를 저지하여 민족불교를 수호한 것”이다. 이회광은 한국불교를 조동종에매종하려다 한용운 스님 등에 의해 좌절되자 일본을 방문해 임제종과의 합병을 시도한다. 학우회는 이 사실이 일본의 중외일보에 보도되자 △일본 임제종 묘심사파가 있던 경도의 유학생 전학 △이회광 파직 △중외일보 기사취소 등의 운동을 벌이는 등 한국불교의 전통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재일본불교청년회는 학우회의 협소했던 기능을 극복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 청년회는 조선불교청년회의 일본 지회 성격으로 설립되는 등 국내 불교계와 밀접한 연관 속에서 결성됐다.
청년회는 1929년 각황사에서 열린 조선불교선교양종 승려대회를 앞두고임시총회를 개최해 △대회에 대한 인식의 문제 △참가에 대한 의사 결정 등을 토론하는 등 개혁지향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기관지인 〈금강저〉를 통해 국내 불교계의 모순 및 반동 행위를 비판한 것도 그런 맥락.
김 부장은 “국내 불교청년운동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본에서 불교청년운동을 지속한 것은 재평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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