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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시대 구업(口業)

기자명 심원 스님

한동안 국회를 마비시킬 정도로 논의가 분분하던 드루킹 사건이 5월29일, 정부가 ‘드루킹의 인터넷상 불법 댓글조작 사건과 관련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일명 드루킹 특검법)을 공포·시행함으로써 새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사건은 드루킹 일당이 매크로 프로그램인 ‘킹크랩'을 개발하여 댓글 순위를 자동으로 조작한 사건이다.
‘댓글 순위 조작’은 분명히 옳지 않은 악행이다. 그런데 이 행위를 신구의(身口意) 삼업에서 본다면 어디에 속할까? 고전적 의미구분에 의하면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만 굳이 배당한다면 구업에 속한다 할 것이다.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인 언어의 범주에 들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순간에 누군가에 의해 생각을 조종당할 수 있다는 섬뜩한 현실과 직면하게 되었다. 최신 기술은 소셜미디어 상에서 순식간에 가공할만한 파급력으로 정보를 퍼뜨려 사람들의 생각 형성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인터넷시대, 구업의 의미와 범주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자판에서 손을 떼자마자 내가 올린 글이 누군가에 의해 세상으로 퍼져간다. 천리 정도가 아니라 지구 반대편까지 말이다. 그 결과 다른 이의 말을 퍼나르고 전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치명적인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1855년 발표된 시인 베쓰 데이의 작품으로 알려진 ‘세 가지 황금의 문(Three Gates of Gold)’이란 시는 말을 할 때, 특히 전해들은 말을 다른 이에게 전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잘 표현하고 있다. “말을 하기 전에 세 가지 황금의 문을 거치도록 하라. 첫째는 ‘그것은 참말인가?’라는 문이고, 다음은 ‘그것은 필요한 말인가?’라는 문이며, 마지막은 ‘그것은 친절한 말인가?’라고 하는 가장 좁은 문이다.”

말이란 일단 입에서 떠나면 내 것이 아니다. 스스로 생명을 가지고 떠돌게 된다. 책임이 막중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에 대해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천금의 무게를 가지고 남의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 먼저 내 입에서 나오려 하는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임에도 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는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꼭 필요한 말인지 한 번 더 숙고해야 한다. ‘필요하다’는 것은 그 말을 함으로써 너와 나, 그리고 현재 상황에 긍정적 역할을 하느냐는 것이다. 시의적절한 말은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지만 불필요한 말은 세상을 오염시키는 공해가 되고 쓰레기가 된다. 친절한 말이란 말하는 방식, 태도에 관한 것이다. 사실일 뿐 아니라 꼭 필요한 말이라도 말하는 태도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그런데 현실은 오히려 세 가지 황금의 문과는 반대 쪽 문으로 향해있다. 참말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들려오는 풍문에 남보다 먼저 한 다리 걸치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 상에는 진실은 증발하고 카더라 통신이 난무한다. 다음으로 필요한 말인가 여부에는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가 얻고자 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 바로 필요성이 된다. 말의 대상이 되는 ‘어떤 이’는 목적을 충족하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말하는 태도도 결코 친절하지 않다. 온화하고 품격 있는 표현은 진부하다고 여겨진 지 오래이다. 경쟁이나 하듯이 보다 더 강하고 보다 더 자극적인 표현을 동원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현행원품’에서는 “불보살이 세상에 출현하여 법을 설하는 이유는 일체 중생의 보다 나은 이익을 위함이니, 불보살의 존재 근거가 자비심이기 때문”이라고 하셨고, ‘금강경’에서는 “여래는 참답고 진실한 말씀만을 하시는 분이다”고 하셨다.

출가든 재가든 불자라면 부처님을 스승으로 하여 부처님처럼 살기를 서원한 사람들이다. 세상의 흐름이 어디로 가든 남의 말을 할 때 자비심을 바탕으로 너와 나의 행복을 위함인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 다음 천금의 무게로 입을 떼야 할 것이다.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강사 chsimwon@daum.net

[1442호 / 2018년 6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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