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물건 뒤에 가려진 이면, 혜안으로 봐야
100. 물건 뒤에 가려진 이면, 혜안으로 봐야
  • 최원형
  • 승인 2018.06.12 10:04
  • 호수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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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돈 침대사태, 소비자에겐 아무런 책임 없을까?

침대서 방사능 내뿜은 라돈검출
건강에 좋다는 기대가 부른 참사
원자력안전위원회 책임 크지만
진정 필요에 의한 소비 고민해야

늘 허약한 아이가 잠이라도 좋은 침대에서 자면 건강해지지 않을까 싶었다는 어느 부모의 사연이 안타깝다. 아이 건강에 좋을 거라는 믿음으로 비싸게 구입한 침대가 오히려 아이 건강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친 꼴이 되었으니 그 부모는 두고두고 자책을 하게 될 것 같다. 음이온이 나오고 원적외선, 항균 등의 기능이 있다는 말만 믿고 구입했던 침대에서 방사능을 내뿜는 라돈이 검출되었다. 그것도 기준치를 적어도 10배 이상이나 초과해서 말이다. 라돈은 무색·무취한 기체로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들어가 폐암을 일으키는 물질로 알려져 세계보건기구가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침대에서 라돈이 나온다는 것을 처음 안 곳은 미숙아를 둔 가정이었다. 미세먼지로 문을 닫고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실내 공기가 염려스러워 공기 질을 측정하는 기기를 구입했다고 한다. 침대 가까이만 가면 측정기에서 삑삑거리는 신호음이 나서 처음에는 측정기가 고장난 줄 알았다고 했다. 측정기가 정상이라는 걸 알고 난 뒤에도 유독 침대에서만 경보음이 요란한 것을 알게 됐고 그게 라돈 침대 사태의 시작이었다. 처음 라돈이 측정되고 나서 제조사에 연락했을 때 제조사는 라돈이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제조사도 억울할 것이 정부에서 허가를 다 받고 제품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모두가 피해자가 됐다. 이번 사달의 제일 큰 책임은 방사능이 시민들 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관리 감독해야 할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있다. 방사성물질의 가공업자 및 가공시설에 대한 관리규정을 원자력안전위원회 관리규정에서 제외시켰다. 사태 수습은커녕 우왕좌왕하고 있는 행보에 실망을 금할 길이 없다. 대체 우리의 안전은 누가 지켜줄까?

하루 평균 7~8시간 잠을 자며 하루의 고단한 몸을 쉬는 데 쓰이는 물건이 침대 아닌가. 잠을 자며 숨 쉬는 동안 라돈은 온전히 호흡기를 통해 폐로 들어갔다. 자는 내내 지속적으로 피폭이 된 것이다. 피폭은 인체가 방사능에 노출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방사능 피폭은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키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며 단기간에 그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두고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제품으로 시장에 나온 물건 가운데 건강을 위해 샀다가 오히려 건강에 심대한 해를 끼친 사례는 라돈 침대가 처음은 아니다. 라돈 사태만 하더라도 이미 2007년에 한차례 문제가 됐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십 년이 훌쩍 지나 또다시 불거졌다. 해결되지 않은 채 잊혔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주거형태가 대부분 아파트다 보니 쉽게 건조해지는 겨울철이면 노약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가습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가습기는 물통 관리를 잘 해야 한다. 물통이 세균 번식처가 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며칠만 방치하면 물때가 끼어 혹시라도 공기 중으로 세균을 퍼뜨리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다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이 등장했다. 물통을 세척하지 않아도 가습기 살균제만 넣으면 세균 걱정은 끝이라 했다. ‘편리’한 세상이라며 별다른 의심 없이 썼던 많은 가정에서 참사가 벌어졌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피해자들은 많은데 과연 누가 제대로 책임을 졌던가? 그리고 여전히 우리 주변에 유해화학물질들은 넘쳐나고 있다. 이번 라돈 침대 역시 ‘건강’에 좋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부른 대참사다.

침대에서 검출된 라돈은 음이온 발생을 위해 쓰인 모나자이트에서 나왔다. 모나자이트는 희토류의 한 종류로 인산염광물이다. 희토류란 희귀한 광물이라는 뜻이다. 모나자이트를 비롯한 희토류는 세계 여러 곳에서 생산이 되나 주로 안전에 대해 비교적 느슨한 개도국을 중심으로 생산되고 있다. 희토류 채굴로 인한 방사능 오염을 꺼리는 나라들이 있기 때문이다. 희토류 채굴지역 일대는 방사능으로 오염되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 또한 제품 사용여부와 무관하게 피폭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위험천만한 물질이므로 물질의 이동과 제품 공정 등에서 시민의 안전을 더욱 세심하게 챙겼어야 할 관계부처의 의무 방기는 분노할 일이다.

그런데 물건을 소비하는 우리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을까? ‘오늘날 인류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무수한 제품을 만들어낸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문제가 생겼다. 누가 이 모든 물건을 구매할 것인가?’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에 나오는 구절이다. 상상할 수 없던 무수한 제품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과연 진정 필요에 의한 소비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선택하는 혜안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물건 뒤에 가려진 이면을 보려는 노력도 또한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이것이 일련의 참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아닐지.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43호 / 2018년 6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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