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峰突兀攙白雲(천봉돌올참백운)
一水潺湲瀉蒼石(일수잔원사창석)
自然聞見甚分明(자연문견심분명)
爲報諸人休外覓(위보제인휴외멱)
‘일천 봉우리 우뚝 솟아 흰 구름을 찌르고 한줄기 물은 조용히 잔잔히 흘러 푸른 바위에 쏟아지네. 자연스레 듣고 봄이 매우 분명하니 모든 사람을 위해 알리노니 밖에서 찾지 말게나.’ 충지(沖止, 1226~1292)의 ‘게송을 지어 여러 스님에게 보이다(作偈示諸德)’.
“구름은 푸른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다네(雲在靑天水在甁).”
선사의 한 마디가 산의 적막을 깬다. 고요한 산기슭 큰 소나무 아래에서 나이 든 선사와 젊은 학사가 서로 마주하고 있다. 선사는 학사와의 대화에 몰입한 듯 대나무로 만든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뺐다. 무엇이 즐거운지 선사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향해 오른손을 쭉 내밀었다. 마치 그가 내뱉은 말을 암시하는 것처럼,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은 위로 향했고,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탁자에 놓인 병을 가리키듯 아래로 굽혔다. 관복 차림의 젊은 학사는 그의 오른손을 흥미롭게 응시하며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선사의 가르침을 경청한다.
이 그림은 당나라 때 활동한 약산유엄(751~834) 선사와 낭주자사인 이고(722~841)의 문답을 그린 선회도이다. 유엄은 선의 핵심이 담긴 짧은 화두로 담성, 양개 등 걸출한 선사들을 양성한 인물이다. 한편 이고는 당나라 때 산문의 대가이자 탁월한 시인이었던 한유의 조카사위이자 제자로, 훗날 불교의 심성론인 ‘복성서(復性書)’를 저술한 문장가였다.
선사의 명성을 듣고 약산을 방문한 이고가 도(道)에 관해 물었다. 이에 선사가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위를 한 번 가리켰다가 다시 아래를 한 번 가리키며 “이제 알겠소?”라고 되물었다. 이고가 그 의미를 모르겠다고 답하자, 선사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의 한 마디는 산의 적막을 깨며 이고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경덕전등록’에 실려 있는 이 고사는 대표적인 선의 화두를 보여준다. 남송대의 화가 마공현(馬公顯)은 이 고사를 화면에 그대로 재현했다. 그가 살았던 시대에 자주 그려졌던 것처럼, 화면 한쪽에는 소나무가 우뚝 솟아있다. 누군가 끌어당기듯 표현된 가지들은 맵시 있는 각을 이룬다. 그것은 마치 불가의 큰 스승인 선사의 가르침이 그와 마주 보고 있는 학사에게 전해지는 느낌을 준다. 선사가 손을 위아래로 가리키며 말한 화두의 내용을 단지 두 손가락을 굽힌 채로 묘사하고, 그 손가락이 탁자 위에 놓인 정병을 가리킨 묘사에서 화가의 뛰어난 기량을 엿볼 수 있다.
선사의 가르침은 ‘자명(自明)’이다. 구름이 하늘에 있고 물이 병 속에 담겨 있는 이치는 당연하다. 이는 모든 만물이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모든 이치도 제각기 그 자리에 있음을 말한다. 즉 도는 어떠한 증명이나 분별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하다. 푸른 하늘의 구름은 눈으로 보면 되고, 넘실거리는 물은 귀로 들으면 된다. 무엇 하러 다른 곳에서 도를 찾는가. 답은 이미 보고자 듣고자 하는 내 마음에 있는 것이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46호 / 2018년 7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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