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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설조 스님 41일 단식 무엇을 남겼나

기자명 이재형
  • 교계
  • 입력 2018.08.01 17:24
  • 수정 2018.08.14 15:00
  • 호수 1451
  • 댓글 49

범계 문제 의식은 높였지만 불교 자율성은 훼손

설조 스님이 7월30일 오후 3시30분경 41일간 지속했던 단식을 중단했다. 설조 스님은 서울 조계사 옆 우정공원 앞 농성 천막에서 구급차에 탄 뒤 녹색병원으로 이송됐다. 조장희 기자
설조 스님이 7월30일 오후 3시30분경 41일간 지속했던 단식을 중단했다. 설조 스님은 서울 조계사 옆 우정공원 앞 농성 천막에서 구급차에 탄 뒤 녹색병원으로 이송됐다. 사진=조장희 기자

1994년 조계종개혁회의 부의장과 불국사 주지 등을 지낸 설조 스님이 7월30일 오후 3시30분경 41일간 지속했던 단식을 중단했다. 설조 스님은 서울 조계사 옆 우정공원 앞 농성 천막에서 구급차에 탄 뒤 녹색병원으로 이송됐다.

설조 스님은 구급차에 타기 전에 “41일 단식 동안 가장 보람되고 기뻤던 일은 교단을 바로잡고자 수많은 불자들과 시민들이 의지를 모아주셨던 점”이라며 “여러 심려를 끼쳐드려 대통령과 국민들께 송구하다”고 밝혔다. 녹색병원 의료진은 “단식 시작보다 15% 몸무게가 줄고 부정맥도 나타나고 있다”며 “단식을 더 진행하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설조 스님은 응급실로 이동해 소변 검사 및 심전도 검사 등을 받고 일반 병실로 옮겼으며, 당분간 정밀 검사를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불교계 내부 범계 의혹을 사회적 관심사로 불러일으킨 설조 스님의 긴 단식은 일단 마무리됐다. 설조 스님은 41일간 왜 단식을 했던 것이며 그 결과는 무엇일까. 또 어떤 의미와 과제를 던진 것일까.

PD수첩 설정 스님 등 의혹 제기…종단은 자체적 규명 노력 진행

▷설조 스님 단식 배경

설조 스님이 단식에 돌입한 것은 6월20일이다. 당시 불교계는 고위직 스님들의 범계 의혹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해인사 전 주지 선각 스님이 불법도박사이트 운영자로부터 수십억 원의 돈을 받은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은 사건이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된 것이 지난해 말로 불교계에서는 이 사건이 여전히 회자되고 있었다. 특히 선학원 이사장 법진 스님이 여직원 성추행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아 선학원 내부는 물론 전국비구니회 등의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을 때였다.

조계종 내에서도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범계 의혹이 점차 불교계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친자 논란은 설정 스님이 총무원장 후보로 나섰던 지난해 10월, 친딸이 있다는 의혹 제기로 시작됐다. 설정 스님은 “사실무근”이라고 강력히 반발하며 “조속한 시일 내에 의혹을 해명하겠다”고 밝히면서 총무원장에 당선됐고 원로회의의 인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의혹은 쉽게 해명되지 않았다. 집행부 불신 및 종단 내부 갈등의 불씨도 점점 커져갔고, 설정 스님을 지지했던 측에서도 불신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이 사건을 불교계 안팎으로 널리 알린 것은 PD수첩이었다. 명진 스님과 친밀한 관계였던 최승호 MBC사장은 취임 전부터 “조계종 개혁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공언했고, 실제 5월1일 PD수첩을 통해 설정 스님을 비롯한 불교계 지도자들의 자식, 성추행 등 범계 의혹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PD수첩이 방영되자 불교계 내부에서는 이에 대한 평가가 크게 엇갈렸다. 종단 비판에 앞장섰던 일부 단체들은 제기된 의혹 자체를 기정사실화하며 당사자들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종단에서는 PD수첩 내용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적지 않고 당사자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은 편파적인 보도라며 반발했다. 그럼에도 의혹은 해소돼야 한다는 견해들이 빠르게 확산됐다. 때마침 종정 진제 스님이 의혹 규명을 하교함에 따라 명예원로, 원로의원, 교구본사주지, 종회의원, 비구니대표, 재가자 대표 등 50여명으로 구성된 교권 자주 및 혁신위원회가 출범했다.

혁신위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무렵 PD수첩은 5월29일 몇몇 조계종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지도자급 스님들의 해묵은 도박 의혹을 비롯해 불교계 내부 문제를 또다시 다뤘고, 몇몇 단체들은 이를 계기로 관계자 즉각 퇴진 및 구속 등을 외치며 종단 내부 문제를 사회적 이슈화하는 데 주력했다.

설조 스님은 6월20일 조계종 중앙종회 종책모임인 법륜승가회와 함께한 기자회견에서 설정 스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설조 스님은 6월20일 조계종 중앙종회 종책모임인 법륜승가회와 함께한 기자회견에서 설정 스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노스님 목숨 살리자” 동정론 확산…설정 스님 조기 사퇴 이끌어내

▷설조 스님 단식 돌입과 설정 스님 범계 의혹 확산

설조 스님은 6월20일 단식에 들어가며 “현 종단 사태의 원인은 비(非)비구들의 종권장악”이라며 “이 목숨을 바쳐 유린된 종권을 회복하고 적법하지 않은 사람들이 물러날 때까지 단식을 하겠다”고 밝혔다. 일찍부터 “PD수첩에 언급된 스님들은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조계종 중앙종회 종책모임 법륜승가회 소속 스님들도 설조 스님 단식에 맞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설정 스님에게 PD수첩 보도내용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해명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지금까지 속 시원한 해명은 없고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종단과 종도를 위해 공심으로 이제 물러나라”고 주장했다.

‘88세의 노스님’이 불교계 정화를 부르짖으며 결행한 단식은 오래지 않아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종헌종법과 종단 논의 틀 안에서 해결 방법을 모색하자는 총무원장과 집행부, 문중 스님 등 제안과 설득이 있었지만 설조 스님은 대화를 거부하며 총무원장의 무조건적인 퇴진 요구를 굽히지 않았다. 일체 타협을 거부하는 설조 스님의 태도에 종단은 당혹스러웠지만 외부에서는 오히려 호기심과 뜨거운 관심으로 화답했다. 측근 가운데는 설조 스님을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을 잇는 최고의 고승으로 떠받들고 석존에 비유하는 일도 있었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한 설조 스님 단식이 장기화됨에 따라 외부 인사들이 설정 스님의 사퇴를 요구했고 불교계 내부에서도 목숨을 살려야 한다는 동정론이 확산됐다. 상대적으로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던 설정 스님은 7월2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조속한 시일 내에 사퇴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히고, 곧바로 설조 스님을 찾아가 “마음을 내려놓고 종도들 의견 따르기로 했으니 단식 푸시고 건강 잘 챙기시라”는 말을 건넴으로써 사실상 사퇴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됐다. 설조 스님의 단식이 총무원장의 조기 사퇴를 이끌어낸 것이다.

설조 스님의 단식이 장기화됨에 설정 스님이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고 7월27일 설정 스님은 사실상 사퇴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종정스님 하교와 종령에 의해 발족한 의혹규명위의 활동도 유명무실화 됐다.
설조 스님의 단식이 장기화됨에 설정 스님이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고 7월27일 설정 스님은 사실상 사퇴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종정스님 하교와 종령에 의해 발족한 의혹규명위의 활동도 유명무실화 됐다.

종회의원부터 수좌회, 타종교인, 어버이연합 관계자까지 동참

▷불교계 안팎 비판 세력의 집결

현 조계종 집행부에 비판적인 중앙종회 종책모임 법륜승가회와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 등은 처음부터 설조 스님의 단식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여기에 종단 비판에 주력해오던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와 참여불교재가연대가 곧바로 합세했다. 이들은 조계종 스님들이 도박과 성폭력 같은 속세의 범죄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음을 시위와 성명서 발표 등을 통해 끊임없이 부각시켜나갔다. 동시에 PD수첩이 의혹을 제기한 인물들을 적폐로 규정하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PD수첩이 성추행 의혹을 강력히 제기했던 교육원장 현응 스님의 사건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변수가 발생했다.

그러나 설조 스님의 단식은 PD수첩에 대한 불교계의 반발과 비판 흐름을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PD수첩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했다. 종단 비판세력들도 이를 계기로 현응 스님 성추행 의혹에 대한 언급은 회피하되 설정 스님 친자 의혹과 새로운 사안으로 떠오른 포교원장 지홍 스님의 범계 의혹을 전면에 내세우며 3원장 퇴진을 요구했다. 여기에 창건주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불광사 신도들이 종단 비판 대열에 합류했고, 10여명의 원로의원들과 전국선원수좌회 의정·월암 스님 등 종단 내 영향력 있는 인사들도 속속 참여했다.

함세웅 신부와 이해동 목사 등 타종교 성직자가 포함된 외부인사들도 설조 스님을 적극 지지했던 한 축이며, 나중에는 어버이연합 관계자까지 참여했다. 이들은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청와대 수석 등을 만나 국고보조금 횡령 등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등 적극적인 실천행동에 나섰다. 그러나 의혹의 진실여부가 가려지지도 않았음에도 신부와 목사 등이 불교계 최고 지도자인 총무원장 퇴진요구에 동조하는 것은 종교 간섭 내지 불교계 내부갈등을 조장하는 볼썽사나운 행태에 불과하다는 불교계의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함세웅 신부 등은 7월26일 기자회견에서 “10년간 국고보조금 2500억원이 지원되는 사업에 조사나 감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들었다”며 “이 같은 문제는 불교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와 종교 전체의 문제이며, 이를 방기하는 것은 문체부의 직무유기”라고 주장하면서 불교계 의혹을 거듭 제기했다.
함세웅 신부 등은 7월26일 기자회견에서 “10년간 국고보조금 2500억원이 지원되는 사업에 조사나 감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들었다”며 “이 같은 문제는 불교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와 종교 전체의 문제이며, 이를 방기하는 것은 문체부의 직무유기”라고 주장하면서 불교계 의혹을 거듭 제기했다.

설조 스님 88세는 거짓...전과자·성추행 당사자도 조계종 비판

▷설조 스님 및 종단 비판자들의 도덕성 논란 확산

6월20일부터 시작된 설조 스님의 단식은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설조 스님은 조계종의 부패에 대해 노골적인 비판을 그치지 않았고 그럴수록 조계종 스님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확산됐다. 설조 스님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수록 불교계는 더욱 부패한 집단으로 전락해갔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 설조 스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나이 문제였다. 우정공원 단식장에는 ‘88세 설조 스님’이라는 명패가 내걸렸다. 이 때문에서 ‘구순을 바라보는 노스님의 단식’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주된 키워드가 됐다.

그러나 설조 스님의 실제 나이는 77세다. 설조 스님은 호적을 고쳐 실제 나이와 수계날짜를 속였고, 불국사 주지시절 분담금 28억 원을 납부하지 않았다. 심지어 문화재관람료를 개인명의 통장으로 관리해온 혐의 등으로 1998년 조계종 재심호계원으로부터 ‘제적’의 징계를 받은 일도 있었다.

당시 재심호계원 징계결정문 등에 따르면 설조 스님은 1942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났으며 속명은 이규성이었다. 1959년 금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사미계를 받았으며, ‘월태’라는 법명으로 승적을 취득했다. 그러나 월태 스님은 1963년경 ‘양심적 병역 거부’와는 다른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전북 김제에서 새로운 호적을 취득하고, 실제 나이를 11살 앞당겨 1931년생 ‘이설조’로 고쳤다. 승적의 법명도 ‘설조’로 바꾸고, 사미계 수계날짜를 1948년 7월15일 정혜사에서 받은 것으로 위조했다. 승적대로라면 설조 스님은 실제 나이 6살에 사미계를 받은 셈이다.

최근 중앙일보가 이 같은 사실을 보도하면서 설조 스님의 실제 나이가 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설조 스님은 나이를 속였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스스로 밝힌 적이 있음에도 꿋꿋하게 ‘88세 설조 스님’이라는 명패를 고수했다. 측근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이 때문에 타인의 범계 의혹에는 "마구니" "적주(賊住)" "사기협작집단의 수괴" 등 야멸찬 질책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의혹을 넘어 범법 행위로 드러난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는 전혀 아랑곳 않았다는 질책을 받고 있다.

설조 스님의 단식장 주변에서 종단 비판에 매진했던 몇몇 인사들의 도덕성 문제도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변호사법 위반을 비롯해 공직선거법 위반, 명예훼손 등으로 실형을 받았던 김영국씨가 조계종 적폐청산시민연대의 공동대표를 맡아 종단 비판에 앞장서면서 도덕성 논란에 휩싸였다. 또 ‘룸살롱 출입’으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던 명진, 도박 및 횡령 혐의 등으로 멸빈을 받은 장주(이대마) 스님, 후배 만화가를 성추행한 의혹으로 대학에서 징계를 받은 만화가 박재동씨 등 부적절한 언행으로 지탄을 받았던 인사들까지 조계종 비난에 앞장서면서 ‘내로남불’의 전형을 보였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무엇보다 설조 스님을 살려야 한다며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사퇴를 압박하던 전국선원수좌회 대표들이 정작 설정 스님을 만나서는 “수좌들이 지켜드릴 테니 승려대회까지는 절대 물러나면 안 된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져 수행자의 본분과 거리가 먼 이율배반적 정치행태라는 비판도 받았다.

설조 스님이 설정 스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는 가운데 설조 스님 자신에 대한 각종 범법행위 등 의혹도 제기됐다. 또한 설조 스님을 지지하는 이들 가운데 전과자, 성추행자, 이교도 등이 있어 논란이 됐다. 특히  설조 스님을 살려야 한다며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사퇴를 압박하던 전국선원수좌회 대표들의 표리부동한 발언이 알려지면서 수행자의 본분과 거리가 먼 이율배반적 정치행태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설조 스님이 설정 스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는 가운데 설조 스님 자신에 대한 각종 범법행위 등 의혹도 제기됐다. 또한 설조 스님을 지지하는 이들 가운데 전과자, 성추행자, 이교도 등이 있어 논란이 됐다. 특히 설조 스님을 살려야 한다며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사퇴를 압박하던 전국선원수좌회 대표들의 표리부동한 발언이 알려지면서 수행자의 본분과 거리가 먼 이율배반적 정치행태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20~30일 지나서 사우나 및 장시간 법문 “단식 정말 맞나”

▷설조 스님 단식 진위를 둘러싼 의혹들

연일 경신되는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설조 스님의 단식은 감탄을 넘어 경이로움으로까지 이어졌다. 세간에서 구순이 가까우면 거동도 쉽지 않을 나이다. 설조 스님의 실제 나이를 감안하더라도 77세면 노령에 속한다. 민주화 과정에서 생명을 내놓고 여러 차례 단식을 시도했던 40~60대의 민주화 인사나 정치인들도 단식기간이 20~30일을 넘기는 사례는 많지 않았다. 그만큼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이는 스님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9월 “조계종 적폐청산”을 외치며 비장한 각오로 단식에 돌입했던 효림 스님이 9일 만에, 명진 스님도 18일 만에 응급실로 옮겨졌다. 또 지난 3월에는 선학원 법진 이사장 퇴진을 요구했던 설봉 스님이 7일 만에 구급차에 실려 갔다. 설조 스님 자신도 2013년 원로회의 개혁을 촉구하며 돌입했던 단식기간이 21일이었다. 예외적으로 극단적 단식을 시도했던 지율 스님이 2003년부터 2006년까지 5차례의 단식을 실시했으며 그 기간이 38일에서 무려 100일에 이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당시 지율 스님은 40대였고, 단식과정의 모습은 살아있는 사람의 형상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했다.

때문에 팔순에 가까운 노스님이 40일 넘게 단식한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가능하냐는 의혹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실제 설조 스님은 단식 24일째인 7월13일 대중목욕탕을 다녀오는 모습이 교계 언론에 공개됐다. 또 전문의에게 소견을 의뢰한 결과 “(근 쇠약, 칼슘 부족으로 골절 우려가 예상되는) 고령자가 장기간 단식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입욕 사우나를 하는 것에 대해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고 의견을 실었다. 각화사 선원장 노현 스님도 “설조 스님께서는 단식 20여일이 훌쩍 넘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걸어서 목욕탕을 다녀오셨다니요, 제발 스스로 불망어(不妄語) 계를 범하고 계신 건 아닌지 자문하신 뒤 깊이 참회하시길 바랍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의혹제기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설조 스님의 ‘초인적인 단식’은 계속됐다. 단식 35일째가 넘어 대중들을 상대로 20~30분씩 법문하는가 하면 단식장에서 50m 떨어진 곳에 있는 화장실을 직접 걸어 다녀오기도 했다. 이런 이유 등으로 단식 39일째인 7월28일 설조 스님이 손등에 반창고를 한 모습이 인터넷 매체에 보도되자 일각에서는 설조 스님이 “단식 중간 중간 ‘링거액’을 맞고 있는 것 같다” “제대로 단식을 하는 게 맞느냐” 등 말들이 조계사 안팎에서 무성히 회자됐다.

설조 스님은 단식 20일을 넘기고서도 사우에 다녀왔으며, 30일 이후에도 장시간 대중법문과 화장실에 직접 걸어서 다녀오는 초인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진은 설조 스님이 화장실에 가는 모습.
고령의 설조 스님은 단식 20일을 훌쩍 넘기고서도 사우나에 다녀왔으며, 30일 이후에도 장시간 대중법문과 화장실에 직접 걸어서 다녀오는 초인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진은 설조 스님이 단식 39일째인 7월29일 화장실에 직접 걸어서 가는 모습. 법보신문에 제보된 동영상 캡처 사진.

불교계 부패집단 내몰려…“정부에 개혁 구걸” 비판도

▷승단 및 불교계 이미지 하락

정치권 인사를 비롯해 사회저명인사들까지 설조 스님의 단식장을 찾으면서 설조 스님의 단식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특히 단식장을 찾은 인사들은 “불교계가 유사 이래 지금처럼 타락한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불교계를 부패 집단으로 내몰았다. 여기에 신부와 목사 등 타종교인까지 가세해 불교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성명과 발언들을 쏟아냈다. 심지어 청와대 민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불교계가 국고보조금을 횡령하고 있다며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청원을 내기도 했다.

불교계 내부에서 국고보조금 횡령 의혹은 사실일 수 있고, 검찰조사에 따라 범죄내용이 드러나면 실정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고보조금은 불교계뿐 아니라 다른 종교나 단체가 두루 받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계만을 표적으로 삼을 일은 아니다. 조사가 필요하다면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는 종교계와 모든 단체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비판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 단체는 불교계를 표적으로 삼고, MBC·SBS 등 공중파 방송에서 보도하도록 유도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불교계 내부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상황을 정치권과 외부 언론을 끌어들여 불교계의 기반을 뿌리 채 흔들어 정치세력을 바꾸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설조 스님도 단식 기간 내내 정부 관계자와 사회 인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고보조금 등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특히 대통령에 보내는 서한을 통해 “고위직 승려와 돈 많은 승려들은 상식 이하의 의식을 가진 자들” “저들은 바로 쓰여야 할 성금을 부정하게 가로채고, 패당을 만들고, 종권을 독점하고 유관기관과 언론인 중 부패한 자들과 연대하여 무풍지대에서 난행을 자행해왔다” “방종한 행동이 그 교단 내규뿐 아니라 미풍양속을 해치고 일반사회질서를 유린하여도 법치대상이 아니라고 해서야 되겠냐” “불교교단이 전례 없는 부패집단이 되어 대통령님의 짐이 되어드려서 죄송하기 그지없다” 등 현 불교계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며 정부의 대응을 거듭 요청했다.

심지어 단식을 중단하고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도 “불교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의 역할이 있다면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주관적 입장에서 바라봐 달라”는 호소를 잊지 않았다. “종교계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표명에 대해 정치권력의 적극적인 개입을 거듭 요구하고 나선 셈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설조 스님의 언행은 정부 개입을 구걸하는 것으로 1980년 신군부에 의해 10·27법난이 자행되기 전 일부 승려들이 정치권에 불교계 정화를 끊임없이 요청했던 행태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설조 스님을 비롯한 측근들은 불교계에 대한 대통령 등 정치권력의 개입을 적극 요구했으나, 정작 문재인 대통령은 이용선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을 통해 "종교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설조 스님을 비롯한 측근들은 불교계에 대한 대통령 등 정치권력의 개입을 적극 요구했으나, 정작 문재인 대통령은 이용선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을 통해 "종교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극단 치달은 한국불교…권위 잃은 종헌종법”

▷설조 스님 단식 의미와 새로운 과제

설조 스님 단식은 불교계 범계 및 비리 의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렸다. 불교 내부뿐 아니라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시킴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종단의 청정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견해들이 있다. 개신교와 가톨릭에서도 각종 비리와 사건들이 잇따라 터져 나오지만 정작 내부 비판의 목소리가 낮아 이에 대한 교단 안팎의 민감도가 크게 낮은 상황이다. 그러나 불교계는 의혹만 불거져도 “총무원장 사퇴” “총무원장 구속” 등 종단에 대한 극단적인 비판을 서슴지 않는 단체들이 적지 않다. 게다가 설조 스님의 이번 단식은 불교 지도자들의 범계와 비리 의혹에 대한 민감도를 더욱 높여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설조 스님은 단식과정에서 모든 쟁점을 총무원장 등에 맞추고 선학원 이사장 법진 스님의 전횡 논란 및 여직원 성추행으로 실형을 받은 충격적인 사건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선학원 개혁의 열망이 묻혀버린 것은 설조 스님을 비롯한 측근들이 의도했건 그렇지 않던 간에 아쉬운 일로 꼽힌다. 또한 불교계 내부에서 스님들과 불자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하기보다는 정치권이나 외부 언론에 기대 종단 개혁을 도모하는 것은 불교의 자율성과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함께 설조 스님의 단식이 시기적절했는지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간디의 경우처럼 힌두교와 이슬람교도의 유혈사태를 멈추게 하려는 정치종교 지도자의 단식과 다르며, 인권유린·살인·고문 등에 맞서기 위한 민주투사의 단식과도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설정 스님 친자 문제는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며, 종정스님의 하교와 종령에 의해 원로, 중앙종회의원, 율사스님 등이 참여해 의혹을 밝히려는 노력들을 진행 중이었다. 설조 스님의 단식은 종정스님의 하교는 물론 종령에 의해 발족된 교권 자주 및 혁신위원회 산하에 의혹 규명 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세간의 헌법과 법률에 해당하는 불교계의 기본적인 법체계인 종헌종법이 부정되는 것으로, 앞으로 어떤 스님이 불교지도자가 되더라도 누군가 의혹을 제기하고 설조 스님처럼 극단적인 방식을 고집하면 물러나야 하는 막다른 상황에 조계종이 내몰렸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종헌종법의 권위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불교계는 더욱 갈등과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게다가 불교에서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중도’와는 거리가 먼 생명을 담보로 한 소통불가의 단식이나 총무원 청사 점거 등 극단적인 과거의 투쟁 양상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종단 관계자는 “설조 스님의 단식이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아 다행이지만 이제 불교계는 종헌종법보다 승려대회나 점거 등 힘의 논리가 크게 작용하게 될 것”이라며 “불교계가 성숙한 종교로 거듭나느냐 아니면 제3종교로 전락하느냐는 역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됐다”고 전망했다.

설조 스님이 41일간 단식했던 우정공원 천막.
설조 스님이 41일간 단식했던 우정공원 천막.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451호 / 2018년 8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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