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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작자 미상의 ‘목우도(牧牛圖)’

기자명 김영욱

우직한 행동·청정한 진성 갖췄는가

‘증일아함경’ 등 많은 경전서
수행을 소 치는 법에 비유해
소 발자국은 ‘마음’ 소는 ‘선’

작자 미상 ‘목우도’, 1310년, 비단에 먹, 87.9×43.3㎝, 일본 奈良國立博物館.
작자 미상 ‘목우도’, 1310년, 비단에 먹, 87.9×43.3㎝, 일본 奈良國立博物館.

随時水草活渠身(수시수초활거신)
純浄何曾染一塵(순정하증염일진)
苗稼自然都不犯(묘가자연도불범)
収来放去已由人(수래방거이유인)

‘그때그때 수초로 그 몸을 길러, 순수하고 청정하니 언제 티끌 한 점에 물든 적이 있었던가. 볏모는 자연스레 범하지 않으니, 묶어놓고 놓아주는 것이 이미 마음대로 되는구나.’
잇산 이치네(一山一寧, 1247~1317)의 ‘목우도에 찬하다(牧牛圖贊)’.

늦여름의 해가 진다. 잔잔한 석조(夕潮)가 출렁이고 물안개가 저 멀리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세월 담긴 얼룩이 마냥 홍시빛 물든 석양 같지 않은가. 꾸밈없는 자연의 소박한 정경이다. 강가의 어린 목동이 소에게 풀을 먹인 뒤 제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자 고삐에 매인 소도 고개를 내려 따라 멈춘다. 소가 목동의 마음을 잘 알고 목동도 소의 마음을 잘 아는 것처럼. 목동의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번진다.

불교에서 소는 중요한 존재이다. 예를 들면, 석가모니부처님은 ‘유교경’에서 비구들에게 5욕(五慾)을 멀리할 수 있는 공부를 소와 목동의 관계에 비유했고, ‘증일아함경’에서도 수행자에게 필요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11가지 소 치는 방법에 빗대어 강조했다. 아마도 묵묵히 제 걸음으로 만 리를 걸어가는 우직한 행동과 순수하고 청정한 진성(眞性)을 갖춘 성품이 수행자에게 더할 나위 없는 모범이었을 것이다.

‘목우도’는 선문에 발을 내딛는 입문(入門)부터 깨달음을 얻는 대오(大悟)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그린 ‘십우도(十牛圖)’의 다섯 번째 그림이다. 이를 소에 비유했기에 ‘심우(尋牛)’라고도 한다. 화면 속 목동은 수행자이자 구도자이며 소는 마음 또는 자성(自性)을 의미한다.

‘오등회원(五燈會元)’을 보면, 남천보원(南泉普願, 748~834)에 의한 목우 공안의 연원이 나온다. 그가 어렸을 적에 소를 길렀는데, 소를 기르는 과정을 통해 마음을 길러 도를 깨우쳤다는 것이다. 즉 소를 찾고 키우고 떠나보내는 일련의 행위가 수행자가 스스로 자성을 바로 보고 깨달음을 얻는 과정과 같다.

소를 찾기 위해 먼저 소의 발자국을 본다. 그리고 쫓아가 소를 잡는다. 이제 길을 들이기 위해 고삐를 매어둔다. 묶고 풀고를 반복하면 어느새 소가 자유로이 따른다. 이제 방목한 소는 때때로 수초를 먹어도 볏모를 마음대로 범하지 않는다. 서로의 간극이 좁혀진 만큼 목동은 소의 등에 올라타 집에 돌아온다. 어느 순간 소는 사라지고 목동만 남는다. 이윽고 목동도 사라지고 하나의 둥근 원만 남는 것이다.

소의 발자국은 마음이고 소는 곧 선(禪)을 말한다. 누구나 마음을 찾고 선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선을 얻더라도 마음이 안 놓여 고삐로 매어둘 것인가, 아니면 고삐를 풀고 걱정 없이 지낼 것인가 하는 행동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비록 정해진 답은 없지만, 오랫동안 고삐를 묶고 푸는 수행 끝에서 걸림은 없어질 것이다. 어떤 선을 얻더라도 선에 대한 믿음을 관철해야 비로소 편안해지는 것이 아닌가. 저 목동의 미소처럼 말이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52호 / 2018년 8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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