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선물이 될 때까지
죽음이 선물이 될 때까지
  • 금해 스님
  • 승인 2018.09.03 14:26
  • 호수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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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 기도 부탁하는 노보살님
남은 건 죽음밖에 없다 말했지만
빈 종이 위패에 이름 적지 못해
집착 벗으면 죽음 새 삶의 시작

지옥중생까지 구제한다는 지장기도의 백미(白眉)인 우란분절·백중 기도 날입니다. 노보살님이 오랜만에 절에 오셨습니다. 불과 여름 한 철 못 만났는데, 그사이 많이 약해지신 듯 보여 걱정되었습니다. 노보살님은 여름 무더위 지내면서 많이 아팠다며, 이제 죽을 때가 되었나보다 하며 넋두리를 하십니다. 그러면서도 이야기 끝에 꼭 큰아들네 가족 기도를 부탁합니다.

여든이 훌쩍 넘은 노보살님은 평생을 아들 걱정을 하며 살았습니다. 아들은 나이 오십이 되도록 특별한 직업이 없고, 다 큰 손자는 방에서 컴퓨터만 하며 밖을 나오지 않습니다. 며느리가 시장에서 일품으로 벌어오는 돈으로 눈치 보며 집안 살림을 꾸려갑니다. 여름 내내 그렇게 아팠어도 잠깐도 쉰 적이 없다고 합니다. 시골에서 혼자 있는 딸이 같이 살자며 손짓하는데도 노보살님은 큰아들 걱정에 떠나지를 못합니다. 자신이 없으면 아들 가정이 무너지리라 생각하고 계시지요. 아들과 손자가 어서 빨리 자기 길을 찾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 세월이 30년입니다.

백발의 주름진 마른 얼굴을 보며 손을 잡았습니다.

“보살님은 자기 길을 잘 찾으셨어요?”하고 물었습니다.

노보살님은 힘없이 머리를 흔듭니다.

“살 만큼 산 늙은이가 찾을 길이 뭐가 있겠어요? 죽는 거 밖에요….”
“그렇지요, 죽는 길을 찾아야지요. 아들네 갈길 걱정할 일이 아니고, 보살님 길 찾는 게 수천 배는 더 급한 일입니다. 죽는 길을 어떻게 가시려고요!”
“이러다 가면 가는 거지 뭐!”
“그렇게 자신 있으시면 지금 본인 위패 한번 써 보실래요?”

노보살님이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저를 바라봅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죽습니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입니다. 가는 길에는 순서가 없다며 아주 쉽게 얘기하지만, 어느 누구도 오늘, 지금 여기서 죽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토록 평범한 죽음이 왜 자신에게만은 특별한 때, 충분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오리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비어있는 위패 종이에 노보살님은 차마 자기 이름을 쓰지 못했습니다. 떨리는 노보살님 손에 염주를 쥐여주며, 아들 생각 대신 관세음보살님 기도를 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순간만이라도 악착같이 따라붙는 집착에서 벗어나길 바랬습니다.

여행 갈 때 짐이 많으면 결국 못 떠납니다. 아무런 집착이 없어야 홀가분하게 가야 할 길을 갑니다. 죽음이란 여행 앞에서 자식이라는 무겁고 무서운 짐이 있으면 떠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런 짐이 어찌 하나뿐이겠습니까!
 

금해 스님
서울 관음선원 주지

마음이 맑고 깨끗해 항상 선업을 쌓으며 세속의 갖가지 집착에서 벗어나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당당합니다. 그러면 영가의 행렬 속에 들어간다 해도 연꽃처럼 아름답고 찬란하게 서 있을 것입니다. 죽음조차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선물이 될 것입니다. 죽음이 선물이 될 때까지 붓다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서원합니다.

 

[1454호 / 2018년 9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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