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면 스님은, 다양한 분야서 역량 발휘
일면 스님은, 다양한 분야서 역량 발휘
  • 남수연
  • 승인 2018.09.21 16:46
  • 호수 14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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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경북 경주서 출생한 일면 스님은 1959년 합천 해인사에서 명허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걸망지고 떠나는 한 스님의 뒷모습을 따라 집을 나설 당시 세납은 겨우 열세 살이었다. 해인사서 출가의 뜻을 밝혔지만 ‘어리다’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부름이라도 거들겠다며 절에 남아 스님들을 시봉했다. 실수도 많았고 눈물짓는 일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가야산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5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1964년 사미계를, 1967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평생 화두정진한 은사 명허 스님은 일면 스님의 뚝심을 알아봤다. “참선해 불교를 일으켜라” 권했다. 하지만 스님은 사판의 길을 자청했다. “나 홀로 천지를 모두 밝게 하려기보다는 한 분야라도 제대로 비춰 보겠다”는 신념이었다. 

해인사승가대학과 동국대 불교대학 승가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제9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을 시작으로 13대까지 5선 의원으로 활동하며 행정력을 펼쳐보였다.  

그런 스님의 발목을 잡은 것은 건강이었다. 간경화 진단을 받고도 몸을 돌보지 못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스님은 2001년 간 이식수술을 통해 새 생명을 얻었다. 동시에 ‘이생의 인연 다하는 날까지 새 생명 얻은 은덕을 갚겠다’는 발원도 생겼다. 2005년부터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을 맡아 현재까지 생명나눔문화 확산에 헌신하고 있다.

인재불사의 원력도 남달랐다. 1993년 학교법인 광동학원 이사장 소임을 맡아 광동중·고등학교를 명문사학으로 발전시켰다. 조계종 3대 교육원장, 학교법인 동국대 이사장 등으로 교육불사의 원력을 이어갔다. 

대중교화 활동은 봉선사 주지에 이어 2005년 군종특별교구 초대교구장에 취임하며 더욱 빛을 발했다. 46개 군법당 중창, 14개 군법당 신축으로 군포교에 혁신을 일으켰다. 3년여 만에 16만여명의 불자장병이 탄생했고, 70여억원의 군포교 기금도 확보했다. 원력과 덕화의 조화로 이룬 쾌거였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대한적십자 박애장 금장, 대원상 대상, 대한불교조계종 22회 포교대상 공로상, 만해대상 등을 수상했다. 일면 스님은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원로의원이다. 

 

[1457호 / 2018년 9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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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 2018-09-21 18:11:37
2000년 수술하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