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제환공과 성인
86. 제환공과 성인
  • 김정빈
  • 승인 2018.10.15 16:24
  • 호수 14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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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관찰하고 모르는 걸 묻는데 탁월함 있으니

환공, 침략한 연에 맞서 출병 때
습봉의 말에 산중서 생명수 찾아

환공, 사냥하던중 괴물 보았다며
두려움에 떨면서 고통스러워하자
관중, 귀신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환공과 관중 시대 성인이라 함은
밝은 귀로써 하늘의 말 듣는 존재
그림=근호
그림=근호

북방의 산융이 기마병 만 명을 이끌고 연나라를 침략해 수도를 포위하자 연나라 임금이 제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제환공은 곧 군대를 동원하여 연나라로 향했고, 이에 산융이 포위를 풀고 물러났다.

환공은 재상인 관중의 계책에 따라 융족이기는 하나 협조적인 한 종족의 도움을 받아 산융의 본거지를 공략하기 위해 이백 리를 전진했다. 지리에 밝은 융족들은 제나라 군대를 복룡산 아래로 유인하였다. 그곳은 사방 십여 리에 걸쳐 물이 흐르는 샘이 없는 곳이었다.

공손습붕이 말했다.

“제가 듣기로 개미가 살고 있는 곳 근처에 물이 있다고 합니다. 개미는 겨울에는 따뜻한 곳을 찾아서 양지에 살고, 여름에는 서늘한 곳을 찾아서 음지에 삽니다. 지금은 겨울이므로 양지에서 개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말에 따라 산의 양지를 찾아 그곳을 파니 물이 나오자 모든 병사들이 환호했다. 환공이 감탄하여 말했다. “습붕은 가히 성인이라 하겠다.”

물을 얻은 제나라 군대는 산융을 격파하고 포로로 잡혀 있던 연나라 군사들을 구출했지만 산융의 지휘부가 고죽국으로 달아났으므로 환공은 군대를 이끌고 고죽국으로 쳐들어갔다.

산머리를 몇 개 넘어가니 길이 막혀 수레가 전진할 수 없었다. 양편이 돌산이고 겨우 말 한 필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때 산이 움푹하게 꺼진 곳에서 기이한 존재가 튀어나왔다. 환공이 자세히 보니 사람 같으나 사람은 아니고 짐승 같으나 짐승도 아니었다. 키는 한 자가 조금 넘고 붉은 옷에 검은 관을 썼는데 두 다리는 벌거숭이였다. 그 기이한 존재는 환공 앞에 와서 절을 하더니 이내 석벽 사이로 달음질쳐 사라졌다.

환공이 옆에 있던 관중에게 물었다.

“저것이 무엇이오?”
“신은 본 것이 없나이다.”

환공이 자신이 본 것을 자세히 이야기하자 관중이 말했다.

“그 물건은 유아입니다. 유아는 패왕지주와 함께 나타나는 물건인데 주공께서는 그것을 보신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몇 년 뒤의 어느 날, 환공은 수초라는 신하와 함께 연못가에서 사냥을 하던 중 갑자기 두려움에 넋을 잃은 표정을 지으며 우두커니 섰다. 수초가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묻자 환공이 말했다.
“내가 한 괴물을 보았는데 형상이 무시무시하였다. 상서롭지 못하다. 급히 중부(관중을 높여 부르는 이름)를 불러오라.”
“중부는 성인이 아닌데 어떻게 귀신에 대해 알겠나이까?” “연나라로 토벌 갔을 때 중부는 유아를 알아맞혔다. 그가 성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느냐?”
“그때 주공께서 유아가 어떻게 생겼다는 형용을 먼저 말씀하시자 중부는 그에 꿰어 맞춰 대답한 것뿐입니다. 이번에는 주공께서 단지 귀신이라고만 말씀하시고 형상은 말씀하지 마십시오. 그런데도 중부가 귀신을 알아낸다면 저도 중부가 성인이라는 것을 믿겠나이다.”

환공은 그날 밤 학질이 난 것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열 증세를 보였다. 관중을 비롯한 여러 대신들이 문병을 왔다. 환공은 귀신을 보았다고 말한 다음 관중에게 귀신의 형상을 말해보라고 말했다. 관중은 즉답을 하지 못했다.

관중은 임금이 본 귀신에 대해 자세히 형용하는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리겠노라는 방을 성문에 붙였다. 며칠 뒤에 한 사람이 갓을 뒤로 젖혀 쓴 모습으로 비둘기를 들고 관중을 찾아왔다.

그가 환공에게 말헀다.

“주공께서 병을 얻은 것은 주공 자신이 자신을 상한 것입니다. 어떻게 귀신이 주공을 상하게 하오리까?”
“그런즉 귀신이 과연 있기는 있는가?”
“있나이다. 물에는 망상(罔象)이 있고, 언덕에는 신(峷)이 있고, 산에는 기(夔)가 있고, 들에는 방황(彷徨)이 있고, 습지에는 위사(委蛇)가 있나이다.”
“위사가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보라.”
“위사는 크기가 수레바퀴만하고, 길이는 멍에의 채만 하며 자색 옷에 붉은 관을 썼나이다.”

환공은 벌떡 일어나며 “그것이 내가 본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정신이 상쾌해져 병이 순식간에 나아 몸이 가뿐해졌다.

위사를 형용하여 설명한 자의 이름은 황자로, 그는 서쪽 시골에 사는 농부였다. 환공이 그에게 벼슬을 내리려 하였지만 그는 사양하고 떠나갔다. 환공은 병이 나은 것을 기뻐하며 관중에게도 큰 상을 내렸다. 이에 수초가 환공에게 물었다.

“중부는 위사를 형용하지 못하였는데 어찌하여 상을 내리십니까?”
“내가 들으니 혼자 하는 일은 어둡지만 여럿이 하는 일은 밝다고 한다. 그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내가 황자의 말을 들을 수 있었겠는가?”

환공은 습붕과 관중을 성인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성인이란 누구일까? 불교의 입장에서 성인은 깨달음을 성취한 사쌍팔배, 또는 보살과 선지식들이다. 그러나 환공과 관중의 시대에 성인(聖人)은 밝은 귀(耳)로써 하늘의 말을 들어 드러내는(呈) 존재였다.

그런 의미에서 성인은 무(巫)와 통한다. 무는 귀신에 대해 말한다. 귀신은 여느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지만 인간사에 간섭한다고 무들은 말한다. 하지만 무가 하는 말들은 대상에 꿰어 맞춘 것들이 많으며 실제와 부합하지도 않는다. 무들의 세계는 ‘혼자서 하는 일은 어두운 세계’ 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진정한 성인을 ‘여럿이 하는 밝음’의 세계에서 찾게 된다. 습붕의 탁월함은 자연 관찰에 있고, 관중의 탁월함은 모르는 것을 남에게 찾아서 물은 데 있다. 실제로 세상을 움직여여만 하는 사람은 귀신을 알아맞힌 황자가 아니라 그의 말을 청해서 들은 관중인 것이다.

예전에는 아리송했던 것들이 밝은 지식 세계로 환하게 드러나는 과학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무의 세계에 빠져든다. 무만이 무는 아니다. 불교를 내세워 눈에 안 보이는 세계를 허랑하게 늘어놓은 불교 지도자들 또한 무의 일파이다. 신자를 현혹시키고 자신을 우상화하는 어둠의 선지식이 아닌, 이성과 건전한 판단의 세계에서 밝게 빛나는 참선지식이 그리워지는 요즈음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60호 / 2018년 10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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