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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안영과 우맹의 재치

기자명 김정빈

재치는 답답한 삶 깨뜨려 자유로움을 확장한다

제나라 재상 안영 사신으로 오자
초왕, 골려주기 위해 질문 던져
제나라 출신 도둑 손가락질하며
“제나라 사람 도둑질 능한가” 묻자
“초나라의 풍토 때문 아닌가” 답변

초나라 장왕 사랑하는 말 죽자
대부 벼슬 준해 장례하려 하자
악사 우맹이 울면서 하는 말이
“대부의 예가 아닌 제후의 예로
사당과 만호 봉읍 내리길” 읍소

그림=근호
그림=근호

제나라 재상 안영(晏嬰)이 사신으로 온다는 것을 안 초왕은 그를 골려 주기 위해 몇 가지 계책을 마련했다. 안영이 초나라 수도에 이르렀을 때 성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키 작은 그를 놀리며 정문 옆에 있는 작은 쪽문으로 들어갈 것을 권했다. 이에 안영이 응수했다.

“그 문은 개가 드나드는 문이고, 사람이 드나드는 문은 정문이오. 내가 개나라 문으로 들어가리까, 초나라 문으로 들어가리까?”

수문장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정문으로 안내했다. 궁궐에 들어가 초왕에게 인사를 올리자 초왕이 안영에게 말했다.

“그대 같은 작은 자를 사신으로 보내다니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소? ”
“어찌 사람이 없겠습니까? 다만 우리나라는 타국에 사신을 보낼 때 어진 임금이 있는 나라에는 어진 신하를 보내고 그렇지 않은 나라에는 평범한 신하를 보낸다는 법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보잘것없는 제가 오게 되었습니다.”

잠시 후 초왕과 사전에 약속을 한 두 신하가 죄인 한 사람을 결박지어 초왕과 안영 곁을 지나갔다. 초왕이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묻자 신하가 “이 자는 제나라 출신인데 도둑질을 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초왕은 안영을 돌아보며 “제나라 사람은 도둑질에 능한가요?”하고 물었다. 이에 안영이 대답했다.

“귤나무 열매는 회수 남쪽에서는 귤이 되고 북쪽에서는 탱자가 되는데 이는 토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나라 출신인 저 자가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을 하게 된 것은 초나라 풍토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감탄한 초왕은 장난을 그만두고 안영을 귀빈으로 후대하였다.

어느 때 안영의 주군인 경공이, 자신이 사랑하던 말이 병들어 죽은 것을 문제 삼아 말 기르는 자를 처형하려 했다. 옆에 있던 안영이 임금 대신 치죄를 하겠노라고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안영은 말 기르는 자에게 다가서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세 가지 큰 죄를 지었다. 첫째, 너는 임금이 아끼시는 말을 죽게 한 죄를 지었으니 죽어 마땅하다. 더 중요한 것은 네가 임금으로 하여금 하찮은 짐승 한 마리 때문에 사람을 죽도록 한 일이다. 세 번째로, 네가 죽고 나면 이 소문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백성들은 임금을 원망할 것이고 제후들은 비웃을 것이니, 이것이 너의 세 번째 죄이다. 나의 이 논죄에 대해 반박할 수 있으면 해보아라.”

경공이 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재상은 그만두시오! 재상은 그만두시오!”

초나라 장왕에게 사랑하는 말이 한 필 있었는데 그 말이 병에 걸려 죽었다. 왕이 대부 벼슬에 준하여 말을 장례하려 하자 신하들이 옳지 않다며 반대했다. 왕은 불같이 화를 내며 이 문제를 거론하는 자는 참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소식을 듣고 악사 우맹(優孟)이 대궐 안으로 들어가 하늘을 우러러 크게 곡했다. 왕이 그를 불러 왜 우느냐고 묻자 우맹이 말했다.

“초나라의 강대함에 비추어 볼 때 말을 대부의 예로 장사하시는 처사가 너무 서러워서 웁니다. 마땅히 제후의 예로써 장사해야 합니다. 옥돌을 다듬어 속관을 만들고, 무늬가 아름다운 나무로 겉관을 만들며, 단풍나무로 횡대를 만드십시오. 병사들로 하여금 땅을 파게 하고 늙은이로 하여금 흙을 지게 하며, 제나라, 조나라 신하들이 앞에서 모시고, 한나라, 위나라 신하들은 뒤에서 모시게 하십시오. 사당을 세워 제사 지내고, 만 호의 봉읍을 내리십시오. 이 처사가 천하에 널리 알려지면 모든 사람들이 대왕께서 원하시는 바, 즉 대왕께서 사람을 천히 여기고 말을 귀히 여긴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초왕이 탄식하며 말했다. “과인의 잘못이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장차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우맹이 웃으며 대답했다.

“가축을 장사하는 법도에 따르시는 게 좋겠습니다. 가마솥으로 속관을 삼고, 부뚝막으로 겉관을 삼으며, 생강과 대추로 양념을 하고, 나무를 밑에 깔며, 짚으로 제사 지내고, 불로 옷을 입혀 사람의 창자 속에 장사 지내십시오.”

왕은 죽은 말을 음식을 담당하는 관리에게 주었다.

불교는 법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이다. 문제는 법은 딱딱하다는 점이다. 법의 세계에서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항상 둘이고, 셋에 셋을 곱하면 항상 아홉이다. 그러나 사람살이는 이같은 수학적, 논리적, 이론적, 인과적 법칙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사람살이는 때로 하나에 하나를 더하여 열둘이 되고, 셋에 셋을 곱하여 마이너스 스물둘이 되며, 또 그것을 요구한다.

수학, 과학, 논리적 정합성은 마음을 답답하게 하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의 파괴를 꿈꾼다. 여기에서 법외법(法外法), 즉 격외(格外) 도리로서의 선(禪)이 탄생하게 된다. 선은 재치에 넘친다. 넓은 의미에서 안영과 우맹의 재치는 답답한 삶을 깨뜨려 자유로움으로 확장하는 생활 속의 선이라 할 수 있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68호 / 2018년 1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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