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정인보의 ‘자모사(慈母思) 12’
92. 정인보의 ‘자모사(慈母思) 12’
  • 김형중
  • 승인 2018.12.24 17:37
  • 호수 14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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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향한 한량없는 부모마음 담아
어머니의 자애로운 사랑 읊은 시조

당신은 헐한 옷에 찬밥 먹으며
자식에겐 따뜻한 옷과 밥 주는
어머니 마음 담아낸 시구에는
부모은중경 가락 흐르고 있어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히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補空)되고 말어라

정인보(1893~1950)는 1928년, 35세에 두 어머니를 생각하며 40수의 연작 시조 ‘자모사’를 발표하였다. ‘자모사(慈母思)’는 자애로운 어머니를 생각한다는 뜻이다. 아버지는 자식을 엄하게 훈육하고 어머니는 자식을 자애롭게 양육한다는 뜻으로 ‘엄부자모(嚴父慈母)’란 말이 있다. ‘자모사’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사랑을 읊은 시조이다.

정인보는 1921년 ‘기진 어머니’란 시를 발표하여 등단하였고, 자타가 인정하는 천재 지성인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담원 시조집’이 있다. 양주동의 ‘어머니 마음’과 쌍벽을 이루는 어머니의 간절한 사랑을 읊은 시이다. 불교 경전에 어머니의 열 가지 큰 은혜를 설한 ‘부모은중경’이 있다. 두 분 모두 동국대에서 교수를 한 불자로서 당대의 최고 지성인이다. 따라서 ‘부모은중경’을 읽고 그 영향을 받았음은 불문가지이다.

‘부모은중경’은 불교 효경으로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한량없는 은혜를 설했다. 부모는 나의 부처이고 관세음보살이다. 그래서 부모가 돌아가시면 조상신이라 하여 신의 반열에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복덕을 빌었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까마귀(孝鳥)나 호랑이도 자신을 길러준 어미의 은혜를 알고 갚는데 인간이 불효하면 금수만도 못한 인간의 탈을 쓴 축생이라 하였다.

‘자모사 12’는 3·4·4조의 전통적인 시조이다. 초장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는 인간의 삶 속에서 의식주 생활이 근본인데 가난한 시절 어머니는 먹는 것과 입는 것에서 당신은 헐고 찬밥을 잡수시고 자식에겐 따뜻한 밥을 먹이는 어머니 마음을 나타낸 시구이다. ‘부모은중경’에서는 “쓴 것은 삼키시고 단 것은 뱉어 먹이신 은혜…굶주림과 배고픔을 채워주며 비단옷 소매로 찬바람을 가려주네”라고 하였다.

중장과 종장에서는 추운 겨울에 자식을 입히고 덮으려다 솜치마는 아끼고 엷은 옷만 입다가 결국 솜치마를 당신이 죽을 때 관 속에 자신의 시신을 흔들리지 않게 채워 넣는 옷자락인 보공(補空)으로 쓰고 말았다고 읊고 있다. ‘부모은중경’ 첫째 은혜인 ‘아기를 품고 지켜주신 은혜’에서 “비단옷은 걸치지 않고 거울 속에는 먼지만 쌓였네”라고 하였는데, ‘자모사 12’ 전체에서 경전 가락과 구절이 흐르고 있다. 양주동의 ‘어머니 마음’의 가사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또한 ‘부모은중경’의 10중 대은을 잘 번역한 환골탈태이다.

일제강점기 온 나라가 못 먹고 못 입은 가난한 시절에 조선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언설로서 표현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시인은 실제로 두 분의 어머니가 있었다고 한다. 한 가정사에서 보면 슬프고 가련한 현실이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천재 아동은 두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어쩌면 증오의 대상이 되었을 양어머니가 축복이 되었다.

다반사가 부모가 돌아가시고 후회하는 불효가 대중을 이루듯이 ‘자모사’ 종장에서 지극한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음에도 시대적 상황에서 효도를 다하지 못하고 보공(補空)의 애닯은 일이 됨에 슬프고 애틋한 가락이 흐르고 있다.

항상 자식은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에 배반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철이 들어 유행가 가사처럼 “불효자는 목 놓아 웁니다”이다. 무술년 세모(歲暮)에 불효자가 문득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위당 선생의 ‘자모사’를 소개한다. 어머니의 고운 청춘은 애오라지 내 인생의 거름이 되었다.

김형중 동대부여고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70호 / 2018년 12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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