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안원찬의 ‘법고(法鼓)’
93. 안원찬의 ‘법고(法鼓)’
  • 김형중
  • 승인 2019.01.07 16:08
  • 호수 14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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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을 깨워 진리 법음 연주하는
지리산 화엄사의 큰 북 노래한 시

법고 소리를 중생 아픔 대신해
암소·수소가 껴안고 운다 표현
군더더기 없는 짧은 시구에서
법고의 맥놀이 여운 길게 울려

천오백 년 전
화엄사에 끌려왔다는 암소와 수소

한 울음이 한 울음을 껴안고 운다

새 아침과 헌 오후 두 차례
매 맞으며 운다


백두대간의 정기가 남으로 뻗은 지리산 천왕봉에 붉은 해가 솟는다. 화엄사 운고각(雲鼓閣)의 큰 북이 둥둥둥 울린다. 기해년 새해를 여는 축복의 북소리이다. 온누리의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을 구원하는 북소리이다.

‘법고(法鼓)’는 천오백 년이 넘는 고찰 화엄사의 큰 북을 노래한 시이다. 화엄사의 새벽예불을 여는 법고소리에 잠에서 깨어난다. 미명 속에서 들려오는 무명을 깨우는 법고소리이다. 불가에서의 북은 악기가 아니라 진리의 법음을 연주한다고 해서 법고(法鼓)이다.

안원찬(1953~현재) 시인은 법고소리를 암소와 수소가 껴안고 운다고 표현하였다. 중생의 아픔을 대신해서 울고 있다. 중생들의 삶은 암컷과 수컷이 웃고 울고 부둥켜안고 사는 삶이다. 암컷과 수컷이 보듬고 울고 웃어야 새끼도 낳고 세상이 그렇게 굴러갈 수 있다.

화엄사의 큰 북은 한 마리 소가죽으로는 만들 수 없다. 그러하니 암소와 수소 두 마리의 가죽을 합쳐서 만들었다. 그래야 소리가 잘 난다고 한다. 천년을 울린 북소리가 깊은 산사에서 새벽 마다 일찍 일어나 울어대니 가슴을 두들기는 아픔이다. 그래도 암소와 수소가 부부가 되어 지금까지 화엄사의 법고는 우리 중생들의 애환을 지켜보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의 인생도 고해요, 화택이라고 하지만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있기 때문에 인생은 살만 한 것이다. 남자 여자가 각각 혼자만 이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고 백년을 넘기지 못하고 인류는 종말을 맞을 것이다. 세상의 젊은이들이 떨어지지 말고, 살아도 죽어서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껏 소리치고 울고 노래해야 한다.

시인은 천오백년이 넘는 화엄사의 역사를 상징하는 법고를 암소와 수소가 깊은 지리산 산사에 끌려와 아침·저녁으로 매를 맞고 운다고 법고를 비유와 상징으로 표현하였다. 북소리를 암소와 수소가 아침저녁 하루에 두 차례 매를 맞으며 운다고 멋지고 격조 있게 조석예불을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짧은 시지만 긴 법고의 맥놀이의 여운이 울리는 좋은 시이다.

소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인간의 착한 성품(불성)과 가장 닮았다고 하여 ‘심우도’에서 인간의 마음 수행 과정과 방법을 잃어버린 소를 찾아가는 과정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법고소리는 불법의 진리를 울리는 소리를 상징한다. ‘법화경 화성유품’에 “하늘의 범천이 부처님께 간청하시되, 정법(正法)의 북을 울리시고, 법비(法雨)를 내리시어 중생을 제도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였다.

소가죽으로 만든 법고와 더불어 쇠로 만든 쇠북이 있다. 북채로 쇠북을 치면 쇠북에서 나오는 묘한 소리는 세상 모든 중생들의 고통과 죄업을 없애준다. 법고와 쇠북에서 나오는 아름답고 묘한 울림은 중생들의 가슴을 울리며 온갖 번뇌와 두려움을 없애준다.

법고소리는 아침저녁 예불할 때 사물(四物: 법고, 목어, 운판, 범종) 가운데서 가장 먼저 두드리는 법구(法具)이다. 시작을 알리는 곡조가 없는 우주의 첫 소리음으로 일음(一音)이요, 원음(圓音)이다. 화엄사의 법고소리가 새벽마다 울리면 전국토의 마을에서 황소들의 울음소리, 아이들이 태어나는 울음소리가 한 울음이 한 울음과 어우러져 기원과 희망으로 퍼져나간다.

김형중 동대부여고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72호 / 2019년 1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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