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때만 깨친 듯 살고 있지 않나
말할 때만 깨친 듯 살고 있지 않나
  • 희유 스님
  • 승인 2019.02.25 16:20
  • 호수 14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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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상 잘 챙기고 있는지
초발심 퇴색 아닌지 돌아 보고
말·행동 일치하는지 반성해야

얼마 전 정월대보름이 지났다. 평소의 복지관이었으면 어르신들과 함께 오곡밥과 나물로 맛난 공양을 하고 ‘부럼 깨시라’고 땅콩이나 호두를 선물로 드리는 등 갖가지 행사를 했을 터인데, 올해 정월대보름날은 공사관계로 조용히 지냈다.

절집에서 정월대보름날은 동안거 구순안거의 해제일이라 안거를 지낸 운수납자들은 살짝 들뜬 기분으로 만행을 떠나게 된다. 운수행각을 하면서 많은 선지식을 만나고 자신의 공부를 점검하지만, 나는 복지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나의 선지식이자 채찍질을 하여 주어 공부하게 해준다. 

며칠 전 우리 기관의 닫혀 있는 문 앞을 서성거리시는 한 어르신이 계셨다. “어르신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직 공사 중이라 복지관 문을 안 열었어요”하니 어르신이 수줍은 듯 미소를 띠면서 “아, 그냥 이 부근에 사는데 복지관에서 무엇을 배울 것이 있나 싶어서 나왔다”고 하신다. 이날 나는 회의가 있어서 그냥 간단히 “지금 공사 중이라 많은 프로그램은 없고, 옆에 분관에 가시면 좀 더 상세히 알려드린다”고는 바쁜 걸음 재촉하면서 지하철을 타러 갔다. 지하철을 타고 한숨을 돌리니 ‘아무리 바빠도 좀 더 친절히 어르신을 안내해 드릴걸’하는 마음이 밀려들면서 ‘무엇이 바쁘다고 진짜 바쁜 일은 뒤로 한 채 이리 지내는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짧지만 많은 생각들이 밀려오는 시간이었다. 

복지를 한다고, 현장에서 자비를 실천한답시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정작 나의 수행은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직원들에게는 늘 일상이 쌓여서 일 년이 되고 일 년이 쌓여서 평생이 되는 것이니 일상을 잘 챙기라고 하면서 정작 나는 일상을 잘 살아가고 있는가? 처음 출가하여 신심(信心)이 돈발(敦發)할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는 불교복지를 실천한다는 미명하에 오히려 초발심이 퇴색 되어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처음 현장으로 나올 때는 ‘수행이 꼭 선방에 앉아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고 늘 한 생각을 챙기고 깨어 있으면 되지’라는 오만한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선가귀감'의 ‘이수돈오 사비돈제(理雖頓悟 事非頓除)’라는 말을 되새기게 된다. 이치로는 단박에 깨달을 수 있다 하더라도 버릇은 한꺼번에 가시어지지 않는 것인데, 잘난척 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사람의 습관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부단히 노력하고 정진하여야 하거늘.
 

희유 스님

정월대보름 동안거 해제일을 지나면서 나의 공부를 등한시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면서 ‘학어지배 설시사오 대경환미 소위언행 상위자야(學語之輩 說時似悟 對境還迷 所謂言行 相違者也)’라는 글을 가슴에 다시 새긴다. ‘말을 배우는 사람들은 말할 때에는 깨친 듯하다가도 실지 경계에 당하게 되면 그만 아득하게 된다’라는 것이다. 즉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른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기해년도 이제 두어 달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열심히 정진하고 기도하는 우리들의 말과 행동이 부디 다르지 않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발원하면서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현장에서의 나 또한 ‘설시사오 대경환미(說時似悟 對境還迷)’ 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1478 / 2019년 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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