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스스로 제도하며 다른 이 교화도 가능한 존재”
“사람은 스스로 제도하며 다른 이 교화도 가능한 존재”
  • 허만항 번역가
  • 승인 2019.03.04 16:04
  • 호수 14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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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공 스님의 '무량수경청화' 법문 ㊳

태어날 때도 늙을 때도 고통 
병들어도 극심한 고통 겪고 
죽을 때 역시 극심한 고통뿐
​​​​​​​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하고 
선근의 근본 쌓아 나간다면 
생사윤회 고통 없앨 수 있어 
정공 스님의 글, 스님은 생사윤회의 고통은 지극히 발원하고 선근의 근본을 쌓아야 끊을 수 있다고 강설한다.
정공 스님의 글, 스님은 생사윤회의 고통은 지극히 발원하고 선근의 근본을 쌓아야 끊을 수 있다고 강설한다.

“그대들은 시방세계 사람들이 무량겁 이래 오도를 전전하면서 근심과 고통이 끊이지 않음을 알아야 하나니, 태어날 때 고통을 겪고, 늙을 때 또한 고통을 겪으며 병들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죽을 때 극심한 고통을 겪느니라.(若曹當知十方人民 永劫以來 輾轉五道 憂苦不絶. 生時苦痛 老亦苦痛 病極苦痛 死極苦痛)” 

시방세계 사람들은 우리들이 사는 사바세계에 국한되지 않고, 시방세계 일체 제불찰토에 있는 육도중생이 모두 이러한 모습입니다. 영겁은 무량겁입니다. 우리는 과거 무시무량겁 이래로 모두 생사윤회를 하고 있습니다.  

오도(五道)는 아수라도를 말하지 않으나, 육도에는 아수라도가 포함됩니다. 그래서 오도와 육도는 뜻이 완전히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아수라도를 포함하지 않았을까요? 세존께서는 ‘능엄경’에서 뚜렷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수라는 천상에도 있고, 인간에도 있으며, 축생 아귀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도라고 하는데, 지옥도에는 아수라가 없습니다. 육도라고 말하는 경우 오직 천도의 아수라만 말하고, 인도(人道)의 아수라는 인도이지 아수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육도에 윤회하면서 겪는 근심과 고통은 이루다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지장보살본원경’에서 비교적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능엄경’은 매우 긴 경문에서 육도윤회의 인과를, 특히 지옥도에 대해 그 근심과 고통이 끊이지 않음을 매우 상세하게 설하고 있습니다.

사바세계에 태어날 때는 매우 괴롭습니다. 사람은 장수를 좋아하나, 장수하려면 늙는 시련을 겪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늙는 괴로움을 겪어야 합니다. 늙는 고통을 좋아하지 않으면 단명합니다. 당신은 어쨌든 감수해야 합니다.

육도의 중생으로 생로병사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간에는 즐거움이 없고 단지 괴로움만 있다고 하고, 괴로움이 진실이고 즐거움은 거짓이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몸이 매우 건강하고 매우 즐겁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온 몸에 결함으로 즐거움이 어디에 있습니까? 세 끼 밥은 세 끼 약으로 먹지 않으면 배가 고파서 고통이 바로 닥칩니다. 그때 약으로 치료하지 않을 때 병이 발작하여 배고픈 병에 걸립니다. 당신은 비로소 이 몸은 생로병사를 제외하고 좋은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몸에 악취가 나서 깨끗하지 못하여 즐겁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惡臭不淨 無可樂者)” 

더운 여름에 하루 종일 씻지 않으면 온 몸에 냄새가 나니, 무엇이 즐겁겠습니까? 그래서 즐겁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는 사실 진상입니다. 우리는 왜 이를 소홀히 여기고 발견하지 못할까요? 눈 밝은 사람에게는 똑똑히 보입니다. 이 세상에는 즐거운 것이 없음을 분명히 압니다. 모두 가짜이고 진실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스스로 미혹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미혹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미혹하여 스스로 죄업을 짓습니다.

“그대들은 스스로 결단하여 마음의 때를 씻고, 언행을 성실히 하고 신뢰를 지켜야 하며, 겉과 속이 상응하여야 하느니라. 이러한 사람은 스스로를 제도하고, 서로 번갈아 도와주고 제도할 수 있느니라(宜自決斷 洗除心垢. 言行忠信, 表裏相應. 人能自度 轉相拯濟).”

자기 마음속으로 명백히 알고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은 탐진치와 교만으로 물듭니다. 마음속에 이런 독소를 깔끔히 씻어야 합니다. 

언어행위의 표준은 충신(忠信)입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남을 속이지 않아 겉과 속이 한결같습니다. 안으로는 진성(眞誠)이고 밖으로는 충심입니다. 이것이 수행을 시작하는 기본태도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악을 끊고 선을 닦음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닦기 시작했습니다. 공자께서는 말씀하시길 “사람은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신용이 없으면 사회에서 설수 있는 땅이 없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제도할 수 있다.” 

이 일구는 자기 수행으로 자신이 자기를 제도함을 말합니다. 

“서로 번갈아 도와주고 제도한다.” 

이 문구는 다른 사람을 교화함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하고 구하여 선근의 근본을 쌓을지니, 비록 한 세상 부지런히 고행정진할지라도 잠깐일 뿐, 나중에 무량수불의 국토에 태어나 즐거움이 끝이 없고, 생사윤회의 근본뿌리를 영원히 뽑아버려 다시는 고통번뇌의 우환이 없으며, 수명이 천만 겁이고 뜻하는 대로 자재하리라.(至心求願 積累善本. 雖一世精進勤苦 須臾間耳. 後生無量壽國 快樂無極 永拔生死之本 無復苦惱之患. 壽千萬劫 自在隨意).”

“지극한 마음”은 진성심, 청정심, 자비심입니다. 발원하고 구함은 첫째 불도를 이루길 발원하고, 둘째 중생을 제도하길 발원합니다. 이것이 진실한 대원입니다. 이러한 원심이 있으면 진정으로 실천하여야 하고 선근의 근본을 쌓아야 합니다. 이 경에서 말하는 모든 것이 바로 선의 근본입니다. 

이번 일생에 부지런히 고행 정진할지라도 시간이 길지 않음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매우 짧은 시간 수행하더라도 이러한 노력은 매우 큰 대가를 받고 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런 고통을 기꺼이 겪지 않으면 지극한 즐거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무량한 수명과 진실한 즐거움을 얻고 싶으면 눈앞에 이런 고생인들 겪지 못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무량수경’을 한권 더 많이 유통하면 한 사람이 더 제도할 기회가 생깁니다. 우리가 이 방면으로 꼼꼼히 계획하여야 합니다. 당신이 조금만 절약하면 세상 사람이 복을 얻습니다. 특히 경전 한권은 확실히 중생을 도울 수 있으니, 그로 하여금 일생에 생사의 대사를 해결하고, 왕생하여 성불할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공덕의 이익은 무량무변합니다. 항상 이 일에 마음을 두고 이 일을 실천해야 합니다.  

육도의 생사윤회를 영원히 여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습니다. 견사번뇌(見思煩惱), 진사번뇌(塵沙煩惱), 무명번뇌(無明煩惱)를 모두 다 끊어 버려서 다시는 이런 번뇌가 없고, 또 괴로움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다함없는 행복과 원만한 행복을 포함하여 생각대로 되지 않은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들의 생활공간은 진허공(盡虛空) 변법계(徧法界)로 확장됩니다. 우리들은 제불여래를 수시로 뵐 수 있고, 생각하는 대로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자재한 즐거움은 실제로 불가사의합니다. 가르침대로 수행할 수만 있으면 우리는 이번 생에 증득할 수 있습니다. 
말과 행동에 믿음이 있음으로써 안과 밖이 서로 상응한다(언해충신 표리상응 言行忠信 表裏相應)’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479호 / 2019년 3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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