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 나눠주는 스님
부적 나눠주는 스님
  • 이재형 국장
  • 승인 2019.03.08 20:32
  • 호수 1480
  •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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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 나쁘게 보는 건 편견
얼마든 긍정적 활용 가능
조계사 지현 스님이 대표적

며칠 전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을 찾아뵀다. 음력으로 정월 막바지였기에 세배를 겸한 인사였다. 세뱃돈이라며 스님이 건넨 봉투에는 2달러 지폐 한 장과 부적이 담겨 있었다. 달러를 넣은 것은 화폐 가치보다 기념의 의미라고 했다. 달러보다 눈길이 더 간 것은 부적이었다.

한때 정월이면 사찰마다 부적을 나눠줬었다. 시골마을이 슬레이트지붕과 네모반듯한 콘크리트로 획일화될 무렵 부적은 미신의 상징물로 간주돼갔다. 부적을 향한 지식인들의 비판이 자주 등장했고, 그들의 ‘일갈’이 반복될수록 부적은 음성화됐다. 부적을 전근대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근대적 사고는 사찰 부적을 부정적으로 보게 했다. 스님들 사이에서 점차 부적을 꺼려했고, 그나마 부적을 나눠주는 스님들도 신도들 요구 때문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렇기에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 주지스님이 직접 부적을 나눠주는 것은 의외였다. 지폐 정도 크기로 괴황지에 붉은 색 경면주사가 선명했다. 문양은 여느 부적들과 달리 위아래로 다라니와 화불이 새겨져있었다. 2016년 11월 보물로 지정된 청량사 건칠부처님의 왼쪽 어깨에서 나온 복장유물 문양이었다. 이 부처님은 제작시기로 논란을 겪다가 방사성탄소연대측정 끝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칠불로 판명됐다.

주지스님은 다라니와 화불이 번뇌를 불태우고 평안을 가져온다고 했다. 불자들이 이 부적을 늘 지녀서 부처님과 진리를 향한 간절함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했다. 부적을 한꺼번에 인쇄하지 않고 문양을 도장에 새기고 질 좋은 경면주사를 이용해 한 장 한 장 찍은 것도 불자들이 정성껏 보관했으면 하는 스님의 마음에서 비롯됐다.

부적은 기원이 선사시대와 맞닿아 있을 정도로 오래됐다. 부적에는 화를 피하고 복을 얻기 바라는 인간의 본성과 각 문화권의 고유 의식 및 정신활동이 반영됐다.

1970년대 사전에는 부적을 ‘불교나 도교를 믿는 집에서 악귀나 잡신을 쫓고 재액을 물리치기 위하여 야릇한 글자를 붉은 글씨로 그리어 붙이는 종이’로 설명하고 있다. 불교와 부적이 깊은 관련을 맺은 것은 조선시대부터다. 조선후기 편찬된 ‘일용집’ ‘진언집’ 등 불교문헌에는 후손들에게 복을 주는 부적, 장애와 재난을 벗어나게 해주는 부적, 수명을 길게 해주는 부적, 거듭되는 초상을 막아주는 부적, 애를 잘 낳게 해주는 부적, 악귀를 쫓아내는 부적 등 온갖 부적이 등장한다. 심지어 ‘왕생정토부’라는 부적은 주기적으로 먹으면 다음 생에 극락에 태어난다며 복용법까지 설명돼 있다. 불교의 타락으로 비춰질 수 있다.

“내가 상대방의 모카신을 신고 1마일을 걷기 전에는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도록 지켜주소서”라는 인디언 기도문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 불교도 그 시대 눈으로 봐야한다. 신라, 고려의 정신문화 주류였던 불교는 조선의 등장과 함께 유교에 그 자리를 내줘야했다. 불교계가 향할 곳은 백성들뿐이었다. 오늘날 관점에서 당시 스님들이 사람들에게 “정법을 익혀라” “깨어있으라” “불평등 문화를 바꿔라” 등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면 너무 가혹하다. 대다수 백성들이 글을 배울 수 없었을 뿐더러 질병과 굶주림, 온갖 재해로 늘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하는 시대였다.

그렇기에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의지처가 되어주는 것이 조선시대 불교계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일 수 있다. 부적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도교나 무속의 부적과 달리 불교 부적에는 일정기간 살생을 금하거나 계를 지키거나 음식을 베풀어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따라붙는다. 척박한 시대를 살았던 조선 스님들의 중생제도 염원과 고민이 담겼다고도 볼 수 있다.

불교문화의 어떤 측면이 부정적인 요소가 있다 하여 아예 폐기하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무조건 옛것을 따르는 것은 나태하고, 얄팍한 장삿속은 비판받아야 한다. 시대 흐름에 맞추면서도 불교 정신을 담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부적도 그렇다. 조계사 주지스님은 그 모델을 보여주고 있었다.

mitra@beopbo.com

[1480 / 2019년 3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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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 2019-03-20 13:41:46
조계사 주지 위상 에 걸맞는지 의문이 드는데요
올해로서 끝내세요

또 방송에서 불교패싱 2019-03-18 10:05:56
이번에도 또 방송에서 불교패싱 사례가 또 터졌습니다.지난주 방송된 mbc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프로에서 불교국가 태국사람들이 한국으로 여행올려고 하는데
한국에 이미 사는 태국친구에게 한국에도 태국같이 큰 절이 있냐고 물어보니까
태국친구 왈 한국에는 태국같은 절은 하나도 없고
한국사람들은 절에 잘 가지도 않는다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이는 한국불교 전통사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르고 템플스테이가 한국에서 꼭해봐야할 10대 관광명소에 올랐고 한국불교신도가 2천만이란 사실을 무시한 명백한 불교패싱입니다.
법보신문과 조계종 종교평화위에서는 mbc사과와 다시보기에서 해당장면 삭제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마련해야 한다는 기사 칼럼 성명 항의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2019-03-15 11:01:50
부적이 마음의 안정을 주는 것이면 그 자체로 약방문이다.
때론 인간이 가진 조작성이 신비한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교회 가면 걸려 있는 십자가나, 절에 만 자가 부적과 뭐가 다를까
그 기능과 쓰임은 다르지 않다.

지나다 2019-03-12 19:17:30
무엇을 비호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다만, 타종교적 시각에선 제사 지내는 것도 미신으로 보지요...
그러나 한국불교를 포함한 대승불교 시각에선 그 지역적 무속신앙도 함께
더불어 동사섭하는데 이것이 대승불교의 특색 아닐까요.

막연히 부적이나 49재를 미신적 요인으로만 한정지어 치부한다면 혹시 편견에 해당되지 않을지
한번 쯤은 생각해 봐도 덕목 있을 껏 같고요..

더군다나, 서양불교 영어불교를 혹시나 남방불교니 원음이니 근본이니 오해하는것 아닌지
의문도 갖게 되는 요즘의 고개꺄릇한 불교현실에 있어서는 더욱 아닐까요?....

우바새/ 2019-03-12 13:05:10
딴에 우바새라고 하면서 그 깜량으로 불자 흉내내기 어렵겠습니다.
당신의 관점으로 본다면 어느 나라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 불교가 있었더랩디까.
대승경전에서 주문이 따라 붙지 않는 경전이 거의 없고 수륙재, 49재, 천도재는 대다수 불교 국가에서 다 있는데 이것도 불교가 아니랍니까
부처님 모습과 다라니가 담긴 부적이고 그것으로 일상에서 부처님 기억하고 살자는데 그리 나쁘고 문제가 됩니까.
아마 당신의 불교는 머릿속 불교에 불과할 것이며
초기경전에 수많은 실천행이 강조되지만 당신은 아마도 실천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비판을 위한 도구일 뿐이겠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