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라오스 대표 불교성지
4. 라오스 대표 불교성지
  • 남수연 기자
  • 승인 2019.03.12 13:48
  • 호수 14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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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탑마다 서린 전설은 란쌍왕국 종교·문화 전해주는 타임캡슐

비엔티엔으로 천도한 국왕
사원·탑 세워 수도 위상 갖춰
인신공양 전설 담긴 사원엔
힌두교의 민간 영향력 보여

진신사리 봉안돼 있다는 탑은
인도 아쇼카왕 전법사의 흔적
란쌍 건축의 백미 ‘왓씨엥통’
공예·조각에 생활상까지 엿보여
라오스 최고의 불교성지 파탓루앙. 부처님 가슴뼈가 봉안돼 있다는 진신사리탑이다. 진신사리는 아쇼카왕의 전법사들이 가져왔다고 하여 이 탑도 기원전 3세기 경에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탑을 복구해 최고의 불교성지로 삼은 것은 쎄타티랏왕이다. 지금의 탑은 근현대 재건된 것이다.

강성했던 란쌍왕국의 지도자 쎄타티랏은 버마족 따웅우왕국의 침입에 대비해 비엔티엔을 새로운 수도로 낙점했다. 천도를 앞두고 비엔티엔에는 대대적인 건설공사가 진행됐다. 국왕이 거처할 왕궁뿐 아니라 에메랄드불상을 모실 사원도 지어졌다. 관공서, 귀족들의 거처와 도로정비 등등. 필요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실상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일, 이 모든 건축물들을 배치하기 위해서는 중심이 되어줄 기준점이 필요했다. 쎄타티랏은 그 중심점으로 사원 한 곳을 지목했다. 1563년 쎄타티랏이 세운 사원 왓씨므엉은 새롭게 수도가 된 비엔티엔의 배꼽, 즉 중심이 되었다.

원래 왓씨므엉은 힌두교 사원이었다. 이곳에는 신성하게 여겨지는 바위 ‘락므엉’이 있다. 크메르왕국에서 가져왔다고 여겨지는 바위는 사각형의 기둥형태다. 전설에 따르며 사원이 세워질 때 ‘씨’라는 여인이 사원 건립을 도우라는 꿈을 꾸고는 스스로 이곳을 찾아와 인신공양을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씨는 임신한 상태였으며 돌기둥이 서있는 곳이 바로 씨 여인이 인신공양을 한 자리라고 한다. 목숨을 바친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시신을 화장할 때 아내가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띠, 그런 사띠를 아내의 최고 미덕이라 여기던 힌두교의 관습이 연상된다. 씨는 어쩌면 남편과 사별한 가련한 여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띠를 행한 여성을 신으로 추앙하는 관습이 힌두교에 있음을 미루어 볼 때 왓씨므엉에 남아있는 씨 여인에 대한 숭배의 흔적은 이런 상상을 더욱 자극한다. 

보통사람으로서는 생각하기도, 범접하기도 힘들고 약간의 두려움까지 불러일으키는 이런 이야기가 사원에 대한 신비감과 외경심을 더욱 높여주었을 것이다. 쎄타티랏이 이곳을 도시의 중심으로 정하고 신성하게 여겨지던 사원의 기둥을 도시의 번영과 안전을 기원하는 상징물로 삼은 것은 신성한 사원을 숭배하던 토착민들의 지지를 단박에 끌어들이기 위한 포석이었을 수 있다.   

금색으로 칠해지고 오색천으로 감겨있는 바위기둥이 락므엉이다. 대웅전 불단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왓씨므엉은 지금도 비엔티엔을 대표하는 사원으로 여겨진다. 다만 중심법당 안에는 불상 대신 사람 키를 훌쩍 넘기는 돌기둥 ‘락므엉’이 우뚝 서서 지금도 참배객들의 예경을 받고 있다. 그 뒤로 씨를 기리는 제단도 마련돼 있다. 

왓씨므엉을 새 도시의 중심으로 낙점한 쎄타티랏은 왕국의 번영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또 하나의 대대적인 불사를 시작했다. 바로 ‘신성한 탑’으로 불리던 파탓루앙의 재건이었다. 파탓루앙은 기원전 3세기경, 마우리아왕조의 아쇼카왕 시절에 조성됐다고 전해진다. 아쇼카가 파견한 전법사들에 의해 세워졌는데 탑에는 전법사들이 가져온 부처님의 가슴뼈가 봉안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13세기 크메르제국의 침입 당시 파괴되어 방치돼 있었다. 이 탑을 쎄타티랏은 대대적으로 재건했다. 왕국을 수호하는 ‘호국불교’의 중심지로 삼은 셈이다.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다는 파탓루앙은 당시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가장 신성한 탑으로 여겨진다. 라오스 화폐에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건축물이다. 

탑은 욕계, 색계, 무색계를 상징하는 3단의 정사각형 기단부로 구성돼 있다. 각 단 한쪽 면의 길이는 욕계 68m, 색계 47m, 그리고 무색계 29m다. 중심부로 올라갈수록 좁고 높은 형태다. 무색계를 상징하는 중심부에 솟아있는 탑은 높이가 45m다. 탑 전체는 순금으로 덮여있다. 이 중앙탑을 중심으로 사방에 30개의 금빛 탑들이 줄지어 둘러싸고 있지만 이들 탑에는 순금이 아닌 금색의 도료가 사용됐다. 탑 주변으로는 회랑이 설치돼 있어 탑돌이를 할 수 있는 구조다.
 

라오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손꼽히는 루앙프라방의 왓씨엥통. 중심법당은 전통적인 란쌍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세타티랏왕이 재건한 당시 탑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파탓루앙은 1828년 태국의 침략을 받아 심하게 파괴되었다. 상당기간 복구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던 파탓루앙은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반도, 특히 라오스 지역에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산하며 다시 주목 받았다. 프랑스 출신의 건축가 겸 탐험가였던 루이스 델라포트가 1867년 파탓루앙을 조사, 상세 도면을 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프랑스는 1900년대에 들어 복구 작업을 시작했지만 1940년 발발한 프랑스와 태국의 전쟁, 그리고 이어진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복구되기도 전에 또 다시 파괴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지금 파탓루앙의 모습은 근현대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졌다. 

하지만 파탓루앙이 란쌍왕국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641년 라오스를 방문한 네덜란드의 상인 게리트 반 우이스토프는 당시 국왕이었던 수리야웡사로부터 지극한 환대를 받았는데 그 장소가 바로 파탓루앙이었다. 그는 왕국의 수도에 많은 외국의 상인들이 있었으며 진귀한 상품들이 거래되는 부유한 도시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단시간 내에 비엔티엔을 수도로 정착시킨 세타티랏은 옛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에도 손꼽히는 건축물을 남겼다. 바로 1559년 왕실사원으로 건립된 왓씨엥통이다. 라오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손꼽힌다. 특히 전형적인 란쌍왕조의 루앙프라방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학적으로도 주목받는다. 하지만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된다. 왓씨엥통은 한눈에 보아도 아름다운 사원이다. 
 

왓씨엥통에는 수백명의 스님들이 상주한다. 이른 아침부터 스님들이 모여 도량에 자라난 잡초를 뽑고 있다. 

특히 대웅전은 정교한 금 채색과 모자이크 장식으로 덮여 있어 참배객들의 발길을 불러모은다. 중심법당 뒤편 벽 전면을 차지하는 모자이크 장식은 거대한 나무를 표현하고 있다. 신비롭게 가지를 뻗고 있는 나무 주변으로 사람을 비롯해 수많은 동물과 천상의 생명들이 어우러져 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여겨져 ‘생명의 나무’라고 불린다. 본전 옆에 있는 작은 법당 외벽에는 당시 란쌍왕국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모자이크 기법으로 표현돼 있어 눈길을 끈다. 붉은 바탕의 외벽 위에 장식돼 있는 다채로운 빛의 모자이크 장식은 그 정교함과 아름다운 빛깔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왓씨엥통이 이처럼 아름다운 사원으로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외부의 침략에도 약탈당하거나 훼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도가 이미 비엔티엔으로 옮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란쌍왕국 시대 대부분의 건축물은 목조로 지어졌다. 수많은 전란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라오스에서 왓씨엥통은 란쌍 시대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당시 조각, 미술, 공예의 수준을 전해주는 타임캡슐과도 같다. 

지금도 왓씨엥통에는 수백 명의 스님들이 거주하고 있다. 스님들은 경내에 자란 잡초를 일일이 손으로 뽑으며 청정한 도량을 가꾸고 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도량을 지키고 가꾸어 온 이들은 승가였다. 
 

왓씨엥통 대웅전 외벽에 모자이크로 장엄돼 있는 ‘생명의 나무‘.

라오스에서는 스님이 상주하는 사원에 ‘왓’이라는 명칭을 붙인다. 우리말로 ‘사찰’이라는 뜻이다. 왓씨엥통을 비롯해 왓씨므엉과 같이 대부분의 사원들이 ‘왓’으로 불린다. 하지만 스님이 없는 사원도 있다. 이런 경우 ‘왓’을 사용하지 않고 ‘호’라고 부른다. 프라방불상이 봉안돼 있지만 왕궁에 있던 법당 ‘호파방’, 에메랄드불상인 프라케오가 봉안돼 있었으나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호프라케오’가 대표적이다. 스님이 거주해야만 진정한 사원이 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태양볕이 쏟아져 내리는 경내 마당에 동자스님들이 쭈그리고 앉아 작은 꼬챙이 하나들고 돌 틈 사이 비집고 올라온 잡초를 뽑아내고 있다. 그 뒤를 또 다른 스님들이 따르며 비질을 한다. 저 스님들의 정성스런 손을 잡고 라오스불교는 굴곡진 과거를 넘어 내일로 나아가고 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480 / 2019년 3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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