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법성게’ 제18구 :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
30. ‘법성게’ 제18구 :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
  • 해주 스님
  • 승인 2019.03.12 17:17
  • 호수 14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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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 연 따라 나타난 존재 모두가 참 성품 구족한 대인

부처님세계가 증분이라면
보살세계는 연기분 해당

십불은 일체 부처님이고
보현보살은 보살의 대표

십불의 외화가 보현이고
보현의 내증이 십불이라
내증과 외화 통틀어 총론

연 따라 일궈내는 모든 것
본래 자기에게 구족돼 있어

현실대긍정의 세계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이사명연무분별”은 바로 열 부처님[十佛]과 보현보살의 대인 경계이다. 법성게 제18구인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도 앞 구절과 함께 연기분의 총론에 해당한다. 

‘화엄경’ 교설을 경 제목에 주목하여 크게 둘로 나누어 볼 때, 불세계[대방광불]가 증분이라면 보살세계[화엄]는 연기분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불·보살의 인과 관계도 연기분에 속한다. 십불(十佛)은 일체 부처님이고, 보현보살은 불과와 다르지 않은 인행의 보살로서 모든 보살을 거두어 대표하는 보살이다. 

‘법성게’의 “십불보현대인경”이 연기분의 총론이라 함은 십불의 경계도 보현보살과 함께 연기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의상 스님은 또 십불 자체는 법성원융을 달리 표현한 구래불의 구체적 경계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이 십불에 대해서는 ‘법성게’ 마지막 구절의 구래불 설명에서 말씀드리기로 한다.) 

이처럼 십불이 증분 세계이지만 연기분에서 보이고 있는 것은, 일단 보살과 상대적인 인과 관계의 측면에서 언급한 것이라 하겠다.  

‘진수기’에서는 연기분의 총론에 “십불보현대인경”이라고, 십불이 포함된 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문답으로 풀이한다.

문. 연기분은 오직 보현보살의 경계인데 어째서 열 부처님[十佛]을 말하는가?
답. 부처님의 밖으로 향하는 마음이 보현보살의 마음과 그윽이 합하여 나뉘지 않기 때문에, 바로 보현보살을 취하고 나뉘지 않는 뜻 가운데서 아울러 열 부처님을 들었을 뿐이다.      

부처님의 밖으로 향하는 마음이 바로 보현보살의 마음이라서 두 마음이 나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십불을 보현보살과 같은 연기분에 두었다는 것이다. 

‘대기’에서는 총론 2구가 교분 즉 연기분의 대의를 맺는 것임과 아울러, 증분과 교분의 대의를 통틀어 맺는 것이라고 확대 해석하기도 한다. 

십불의 위대한 성인의 경계를 연기분의 총론이라 한 것은 연기분 역시 십불이 밖으로 향하는 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총론이 증분과 연기분을 통틀어 맺는 것이라 함은 ‘증분과 교분의 두 법은 예부터 중도이고, 하나로서 무분별이다’라는 말씀에 근거하고, 또 ‘십불과 보현보살의 위대한 성인의 경계’라고 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계를 이사(理事)와 연계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증분을 기준으로 하면 부처님의 증득한 마음으로 이(理)를 삼고 나타나는 바인 세 가지 세간의 법으로 사(事)를 삼는다. 또 연기분 중에서 머무름 없는 본법은 이(理)가 되고, 22위(二十二位)는 사(事)가 된다. 

그러므로 증분의 이(理)와 사(事)가 무분별한 것은 십불의 위대한 성인의 경계이며, 교분의 이(理)와 사(事)가 무분별한 것은 보현보살의 위대한 성인의 경계이다. 

22위란 육도·소승·대승·일승원교 등의 인과를 합한 22인과를 말하며, 이 22위는 모두 보현위(普賢位)에 포섭된다. 

여기서 증분은 오직 십불의 경계이고 교분 중에서는 십불을 말하지 않은 것은 안으로 향하면 십불이고 밖으로 향하면 보현보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십불의 외화(外化)가 보현이라면 보현의 내증(內證)이 십불이라서 내증과 외화를 통틀어 총론하였다고 함을 알 수 있다.

균여 스님은 “안으로 증득함은 오직 십불의 경계이므로 다른 경계가 아니며, 연기분도 또한 십불의 경계이므로 십불보현대인경이라 한다”(원통기)라고 해석하고 있다.

아무튼 연기분의 세계는 보살행을 통해 드러나고 모든 보살을 거두어 대표되는 보살이 보현보살인 것이다. 

그러면 ‘화엄경’에서 보현보살은 어떤 보살이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문수, 보현보살과 선재. ‘화엄경’ 제80권 변상도. 봉녕사소장
문수, 보현보살과 선재. ‘화엄경’ 제80권 변상도. 봉녕사소장

첫째, 보현보살은 부처님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에 대해 설하는 설주(說主) 보살이다. ‘화엄경’은 두 품을 제하고는 다 부처님께서 광명으로 설법하신다. 그리고 그 광명설법 내용을 청법 대중 가운데 대표되는 보살이 다시 한 번 언설로 설해 보이고 있으니 그 보살을 설주라고 한다. 

설주로서는 ‘약찬게’에서도 거론하고 있듯이 보현·문수·법혜·공덕림·금강당·금강장 보살들이다. 이 가운데 보현보살은 증분에 해당하는 불 세계를 말하고, 보현보살 이외 다른 보살들은 연기분에 속하는 보살도를 말하는 설주이다. 

법혜·공덕림·금강당·금강장 보살들의 설법내용은 차례로 십주·십행·십회향·십지의 보살도이며, 그 설처는 도리천·야마천·도솔천·타화자재천의 천상이다. 이 천궁4회설은 향상일로의 일승보살도이다. 

그리고 문수보살은 보살도 중에 특히 중생으로 하여금 신심을 원만히 해서 발보리심하게 하는 보살이다. 중생을 발심케 하는 그 특별한 지혜가 미묘하다고 하여, 문수보살의 지혜를 묘혜(妙慧)라고 한다. 

문수보살이 설주인 제2회의 설처는 보현보살이 등각·묘각 경계를 설하는 장소와 동일한 보광명전이다. 신심을 설하는 장소가 각을 설하는 장소와 똑 같은 보광명전인 것은, 중생이 신심으로 발심해서 성불하는 것이 중생에게 부처씨앗인 불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문수보살의 묘혜는 발심하게 되는 중생들에게 이미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둘째, 보현보살은 문수보살과 함께 ‘화엄경’의 대표적인 두 보살[兩大菩薩]로 일컬어진다. 더 나아가 이 두 보살은 서로 다르지 않으니, 보현보살이 문수보살이고 문수보살이 보현보살이다.

‘여래출현품’에서는 세존께서 미간의 백호상으로부터 놓으신 광명[如來出現]이 문수[如來性起妙德] 보살의 정수리로 들어가고, 입으로 놓으신 광명[無礙無畏]이 보현보살의 입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문수보살의 질문으로 보현보살이 여래출현법을 설하고 있다. 

문수보살의 질문에 따라 보현보살이 답하는 내용이 바로 문수보살의 정수리로 들어간 광명설법인 성기묘덕 즉 여래출현법이다. 또 보현보살의 입으로 말씀한 것이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놓으신 광명 설법이다. 이로 볼 때 문수와 보현보살의 경계가 다르지 않다고 하겠으니, 문수와 보현이 동시에 부처님 경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셋째, 보현보살도 선재동자의 선지식이다.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에게서 발심하여 선지식을 역참해서 해탈법문을 듣고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친견하고 그 여정이 일단락된다. 선재동자는 차례로 보현보살의 행과 원의 바다를 믿어서 보현보살과 평등하고 부처님과 평등하며, 세계와 평등하게 된다.

넷째, 보현보살의 주처 즉 선재동자가 보현보살을 만난 장소는 다른 선지식들의 주처와는 색다르다. “보현보살의 몸은 허공과 같아서, 참됨을 의지해 머물고 국토가 아니다. 모든 중생들의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서, 넓은 몸을 나타내어 일체에 평등하다.(普賢身相如虛空 依眞而住非國土 隨諸衆生心所欲 示現普身等一切)” 라는 ‘보현삼매품’의 게송에서 보현보살의 주처를 알 수 있다.

다섯째, 보현보살은 모든 보살을 대표한다. 보현보살행은 보살행의 총상으로서 모든 보살행을 다 거둔다. 선재동자가 선지식에게 보살도를 물을 때 열 번씩 반복하고는 통틀어 보현행을 묻고 있다. 예를 들면, “보살은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행을 닦으며, 어떻게 보살행에 나아가며, 어떻게 보살행을 행하며, 어떻게 보살행을 깨끗이 하며, 어떻게 보살행에 들어가며, 어떻게 보살행을 성취하며, 어떻게 보살행을 따라가며, 어떻게 보살행을 생각하며, 어떻게 보살행을 더 넓히며, 어떻게 보현의 행을 빨리 원만케 합니까?”라고 한다. 보현행으로 모든 보살행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여섯째, ‘화엄경’의 모든 수행이 통틀어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으로 일컬어지니 보현보살의 십종대원이다.(40권 ‘화엄경’) 보현보살은 선재동자에게 열 가지 대원을 일러주면서 계속 실천하도록 한다. 법계에서 법계에 들어간 선재동자는 중생들이 부처님의 공덕을 이루어 법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끝없는 원[十大願]을 펼치게 된다. 모든 부처님께 예경하고 찬탄하며 내지 널리 회향하는 원 등이다. 균여 스님은 보현십원가(11수)를 통해 보현행원이 민중들에게 널리 퍼지게 하였다.  

회향하는 원 역시 ‘화엄경’에서 열 가지로 설하고, 이를 보리회향·실제회향·중생회향의 삼처회향(三處廻向)으로 거두어 묶을 수 있다. 닦은 공덕을 깨달음으로 돌리고, 본래 자리인 실제로 돌리고, 모든 중생들에게 돌려서 그 공덕이 원만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찰에서 기도 때마다 ‘삼처에 회향해서 다 원만하여지이다(廻向三處悉圓滿)’라고 축원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불보살의 대인 경계에 해당하는 연기분의 세계를 설잠 스님은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대인의 경계를 알고자 하는가(要見大人境界麽)? 

마침 사람이 있어 천태로부터 왔다가 도리어 남악으로 간다(適有人 從天台來 却從南岳去).

중생들이 여기서 저기로 일상 오가는 모든 일이 바로 대인 경계 그 자체임을 설파한 것이다. 

우리의 일상사가 바로 불세계의 장엄인 보현보살의 경계이다. ‘화엄경’에서 “다른 이의 깨달음을 말미암지 않는다(不由他悟)”고 자주 말씀하고 있다. 연(緣)따라 수행하고 일구어내는 모든 것이 본래 자기에게 구족되어 있는 것이다. 일용사란 바로 그 구족되어 있는 것이 나타난 경계임을 알 수 있다. 진성이 연 따라 나타난 존재 모두가 참 성품을 구족하고 있는 대인(大人)인 것이다. 

해주 스님 동국대 명예교수 jeon@dongguk.edu

 

[1480 / 2019년 3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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