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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수행 신명섭-하

기자명 법보

몸에 부담 줄어드니 절 수월
감사·참회 등 여러 마음 보며
난생 처음 오천배 정진 회향
만 번의 헛절 후 참절 한 번

35, 공문

한 번에 많은 절을 한 뒤, 길게 쉬는 식의 방식의 횟수는 줄었지만 그만큼 한 번에 몸에 가는 부담이 줄었기에 꾸준하게 절을 해나갈 수 있었고, 나중에 가서는 오히려 처음 기도 할 때 보다 일찍 그날의 절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편해진 마음은 절을 하는 동안 많은 것을 살피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원주 스님께선 내게 본인이 생각하시기에 절은 “세상의 모든 존재들과 내가 서로 따로가 아닌 하나이며, 그것을 느끼는 행위가 절이다.”라고 하셨고, 어느 거사님은 “21일 기도 후, 모든 것을 끊고 출가할 결심이 서지 않으면 그 기도는 헛 절 한 것이다.”라며 강한 어조로 얘기 해주시기도 했으며, “자신의 마음에 진심으로 절을 하라.”라고 하신 분도 있었다. 21일간 혼자서 절을 해나가며 어떤 때는 숫자를 채우기 위해 그냥 굴신운동으로 한 것도 있고, 정말 감사의 마음으로 정성껏 한 절, 불현듯 든 참회의 마음에 울컥하며 한 절도 있고, 머리에 말벌이 붙어 살기위해 정말 천천히 조심조심 해야만 했던 절, 절하기 싫은 마음과 절을 하고 싶은 마음이 부딪히며 오히려 무심하게 해나갔던 절도 있었다. 누군가 기도가 끝난 후 내게 절이 무엇이라 생각 하냐고 묻는다면 그것에 대해서 한 마디로 딱 “절은 이런 것이다.”라고 답을 해드릴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진정한 한 배가 되려면 형식과 방식, 자세를 차치하고서라도 절하는 사람의 전정한 마음을 온전히 잘 담아내는 그것이 절 한 배가 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혜국 스님께서 삼칠일 5000배 기도 중에 느끼신 '만 번의 헛 절 후 나온 한 번의 참 절'을 나도 꼭 해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이번 기도 중에는 내 마음이 만들어 낸듯한 상들을 마주하는 경험들은 몇 번 있었으나 그것이 스님께서 느꼈던 한 번의 참 절은 아닌듯하여 그냥 넘기려 한다. 그래도 스님께서 경험하신 참 절 한 배는 죽기 전에 꼭 한 번 느껴보고 싶은 바람이지만 지금은 그 또한 하나의 욕심이 아닐까 하여 현재는 마음을 비우고 오롯이 절하는 데에만 집중하려 한다.

기도를 하며 내가 마주한 백련암은 참 예쁜 곳이다. 새벽 2시 25분, 미리 맞춰 둔 알람에 깨어나 밖으로 나오면 달님과 별님이 까만 하늘 속에서 환한 얼굴을 빛내며 내 하루의 시작을 맞아준다. 그런 달과 별을 뒤로 하고, 밤새 닫혔던 고심원 문을 열고 들어서면 큰 스님 존상이 오늘도 미소로 반겨주신다. 그 미소에 반배로 살짝 답례한 뒤 초, 향, 청수를 살피고 좌복에 수건을 깔아 하루의 기도를 준비한다. 새벽 3시, 매일 같은 시간 정확히 울리는 스님의 목탁 소리에 맞춰 죽비를 치고 부처님께 삼배를 드리고 오분향예불문을 낭독하며 시작된 기도의 장소에는 나방과 벌레 도반, 때로는 고양이님과 개구리님까지도 기도에 동참하여 힘을 보태주신다. 계속 이어지는 기도에 아침 공양 시간이 다가올 때쯤이면 참새 보살님들과 매미 거사님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목청껏 노래를 하며 아침 햇님을 마중한다. 해가 뜬 뒤에는 온갖 형상의 구름님들이 가야산 하늘을 유유자적 하는데, 한 폭의 산수 같은 멋들어진 가야산 절경과 함께 내 눈길을 사로잡아 멍하니 바라보게 만들고 이내 지친 내 심신을 어루만져 주신다. 낮 시간 산사에서는 스님들과 공양간 보살님들, 참선방 도반님들, 염화실, 좌선실 불사 현장의 인부님들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분주히 하루를 보내시고, 하루를 마칠 때 쯤 마주한 말간 노을을 품은 고운 얼굴의 불면석은 이내 내 시선과 마음을 빼앗는다. 거기에 풀잎에 스치는 바람 소리, 비가 올 때면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마저도 넉넉하며 한적하기 그지없다. 절을 할 때든, 공양을 할 때든, 잠을 잘 때든, 내가 보고 듣고 마주하는 이 모든 존재들이 내겐 부처님이고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크나큰 법문이었다.

고심원에서 기도를 하고 있으면 하루 종일 큰 스님 존상과 마주하게 된다. 기도 초반 절이 잘 될 때면 큰 스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는 것 같았고, 마음이 조급하거나 아플 때는 불쌍히 여기시는 표정이라 느껴졌고 때로는 무심하게도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기도가 차츰 진행될수록 이 또한 내 마음이 만들어낸 하나의 상이 아닐까 생각되어 오롯이 절하는 데에만 집중하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몸이 아프기 전보다 오히려 아프고 힘들 때 스스로 만족할 만한 절들이 더 많이 나왔던 것 같다. 물론 매일 아침 일어날 때면 ‘오늘 절하다 아파서 기도를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어리석은 일말의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그런 것들은 ‘부처님께 드리는 삼배’와 함께 이내 없어졌고, 어떻게든 하려하면 부처님과 큰스님, 불보살님들이 도와주실 거라는 믿음에 의지해서 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중요한건 한 치의 의심 없이 믿고 담담히 해나가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두 다리로 온전히 절을 해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나아가 숨 쉬고 삶을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라고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시간이었다.

이번 백련암에서 기도를 하며 새로운 인연도 많이 만났고, 과거의 인연과 재회하기도 했다. 그리고 기도가 끝난 지금,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고 잠시 스쳐지나간 인연들 까지도 언젠가 다시 좋은 모습으로 재회하길 기대하며, 이번 기도 기간 중 고심원을 드나들면서 기도하는 나의 모습을 보셨던 분들께 그 모습이 힘들어 보이거나 피곤한 모습이 아닌 진심을 다해 간절히 기도하는 행복한 한 수행자의 모습으로 남았으면 참 좋겠다고 잠시 생각해본다.

기도 초반 영자당 옆 벽에 능소화가 한 일주일 정도 정말 예쁘게 피어있었는데, 중간 중간 쉴 때 바라보며 힘을 많이 얻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기도에 집중하느라 사진으로 남기질 못하고 마음속에만 남겨두게 된 것이 아쉽다. 하지만 ‘화무십일홍’, 그 또한 자연의 섭리이고 내 욕심이라…. ‘혹여나 연이 되면 다시 만나겠지.’라는 담담한 기대만 잠시 해 본다. 기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찬찬히 생각을 해보니 바뀐 것은 별로 없는 듯하다. 살이 조금 빠지고, 욕심이 많이 줄고 마음이 잔잔해지고 편안해진 것 같다는 정도가 아닐 듯싶다.

기도를 마친 뒤 원주 스님께서 ‘회향’에 대해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회향’은 돌이킬 ‘회’에 방향 ‘향’이 합해진 말로써, 기도 중 깨치거나 느낀 것으로 삶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회향’이라 하고, 진정한 회향은 결국 ‘견성’을 의미한다고 하셨는데, ‘회향’이 마냥 기도의 끝을 뜻하는 단어인 줄로만 알았던 내게는 마음에 참 와 닿는 말씀이었다. 아마 이번 기도를 통해서 앞으로 내 삶의 방향도 차차 바뀌어 갈 것이다. 그 방향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의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앞으로도 나를 마주보고, 남을 위해, 그리고 시방세계에 자재하시는 부처님이신 모든 존재들을 위해 성심껏 기도하며 담담히 나아갈 것이라는 다짐을 해 본다.

삼칠일 5000배의 기도가 나에겐 나름 큰 기도였지만, 같은 절 수 라도 1000배 100일, 108배 1000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더 큰 공덕을 쌓는 것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항상 남을 생각하고 존중하며 진심으로 대하며 하는 기본적인 삼배나 반배, 그리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남을 위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큰 기도의 공덕을 쌓는 것보다 더 중한 것이라 생각되기에 삼칠일 기도는 끝났지만 계속해서 내 마음을 살피고 정진해 나가려한다.

기도 기간 중 절이란 행위만 온전히 내가 했지, 기도는 실질적으로 백련암 스님들, 공양간 보살님들, 사무장님, 참선방 도반들, 고심정사와 백련암 도반들, 아비라카페 도반들, 그리고 부모님 등 주변 분들이 도와주시고 신경 써 주신 덕에 무사히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분들께 한 번 더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 두 손 모아 합장하며 감사와 존경의 삼배를 드리는 바이다.

지난여름 행복했던 21일 기도가 끝난 후, 내 삶은 많이 것이 바뀌었다. 생각지도 못한 백련암 인연의 이어짐으로 함께 기도하는 도반님의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어,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게 되었다. 인적 드문 여유로운 산중에서 기도를 하던 내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복잡하고 바쁘게 흘러가는 곳에서 살아가게 되다니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일을 시작하고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하루 1000배씩 하던 일과 절은 300배로 그 수가 줄게 되었다. 하지만 일과 절을 하는 그 시간의 소중함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그리고 몇 배를 하든지 한 배 한 배 소중히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해 나가고 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인연들과 마주하게 되면서 때로는 고민하고, 때로는 흔들리기도 하지만 매일 하는 일과 수행을 통하여 그런 불안한 마음들은 이내 사라지고, 감사함과 존중의 마음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됨으로써 이내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다.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가끔, 하루 종일 일념으로 절 하는데 집중할 수 있었던 지난여름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참 행복했었다고, 좋았다고 그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의 그 순간은 내 수행의 한 부분이었을 뿐이고 현재의 생활 속에서도 나의 수행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일상의 생활 속에서 수행을 계속 해 나갈 수 있고, 남을 위해 기도하고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그 사실에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이다.

비록, 불교에 대하여 아직 잘 모르고 절만 할 줄 아는 서툰 수행자이지만, 절을 하고 수행을 함으로써 내 마음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느꼈기에 오늘도 어김없이 모든 일체 중생의 행복을 빌며 두 손 모아 간절히 감사의 삼배를 올리는 바이다.
 

[1481호 / 2019년 3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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