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자신을 보면 전생의 효행과 악행이 보인다”
“지금 자신을 보면 전생의 효행과 악행이 보인다”
  • 허만항 번역가
  • 승인 2019.03.25 17:49
  • 호수 14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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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공 스님의 '무량수경청화' 법문 ㊶

대승보살계경 부모에 효 강조
효행이 무극의 대도라고 함은
부모님에 대한 효도로 시작해 
손윗 사람과 스승님으로 확장
다시 친구와 중생으로 넓어져
그렇게하여 도덕의 근본 완성 
정공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효행은 법신이기에 부모에 효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설한다.
정공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효행은 법신이기에 부모에 효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설한다.

“세상에는 존귀한 자, 부유한 자, 현명한 자, 장자, 지략과 용맹을 갖춘 자재능이 뛰어난 자 등이 있나니 이는 모두 지난 세상에서 자비와 효를 행하여 선을 닦고 덕을 쌓았기 때문이니라(其有尊貴 豪富 賢明 長者 智勇 才達 皆由宿世慈孝 修善積德所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지위가 있고 대중의 존경을 받는 자, 기업처럼 돈을 많이 벌고 큰 재산이 있는 자, 지혜롭고 총명한 자, 학문과 부를 지닌 장자, 지략 용맹을 갖춘 군인과 재능과 기술을 지닌 인문인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좋은 과보로 세상 사람들이 동경하며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번 세상의 과보는 한 세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략 몇 세상 동안 자비심을 닦고 효경심을 닦아 얻은 것입니다.  

불교는 부모에게 효순(孝順)해야 할 뿐만 아니라 ‘대승보살계경'에서는 부모에게 효순하는  마음을 널리 알리고 일체중생에게 효순하는 것이 효를 다하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그래서 대승불법은 효도의 기초위에 건립되고 ‘효’ 한글자를 특별히 중시합니다. 전체 불법이 설하는 것은 ‘효’ 한 글자입니다. ‘효(孝)’ 자는 회의문자에 속합니다. 위는 노(老) 자이고 아래는 자(子) 자로, 위의 한 세대는 아래의 한 세대와 일체라는 뜻입니다. 세대차이가 있으면 불효로 효가 없습니다. 위의 한 세대에는 또한 위의 한 세대가 있어 과거는 시작이 없습니다. 아래 한 세대는 또한 아래의 한 세대가 있어, 미래는 끝이 없습니다. 시작과 마침에 사무침(徹始徹終)이 한 생명의 전체입니다. 이는 시간상으로 말한 것입니다. 공간상으로 말하면 효는 진허공변법계(盡虛空遍法界)가 일체임을 대표합니다.

불법에서 효는 법신을 말합니다. 시방삼세 부처님은 모두 하나의 법신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효도를 다한다고 하면 그 얼마나 어려울까요? 성불해야 효가 원만합니다. 등각보살은 여전히 일품생상 무명을 깨뜨리지 못하여 그의 효도는 일분 모자랍니다. 효는 진실로 대도이고 무극의 대도입니다. 이는 부모님께 대한 효도로부터 시작하여 천천히 손윗사람과 스승님으로 확장되며 다시 친척 친구, 그리고 일체중생에까지 확장됩니다. 대자대비로 효도를 실천함이 도덕의 근본입니다. 

선을 닦고 덕을 쌓는 강령에서 말하면 정토종은 가장 닦기 쉽고 그 방법도 가장 간단하여 현대인이 수학하기에 매우 적합합니다. 믿음과 발원, 집지명호(正行)를 제외하고 그 밖의 행으로는 서방극락세계에 가지 못합니다. 인간으로 사는 한 우리는 사회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염불인은 어떻게 대중과 함께 살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몇 가지 원칙을 가르쳐주셨는데 이를 조행(助行)이라 합니다. 정행과 조행을 함께 닦아야 우리의 서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조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삼복(三福)입니다. 삼복의 제1구는 부모님께 효도로 봉양하고, 스승과 어른을 받들어 모시며, 자애로운 마음으로 살생을 하지 않으며, 열 가지 선업을 닦음입니다. 삼복은 자기수행의 기초입니다. 둘째는 육화경(六和敬)으로 세존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단체 대중들과 함께 지낼지 가르쳐 주신 가장 중요한 계율입니다. 그것은 여섯 가지로 첫째 견해로서 화합하여 함께 이해하고 둘째 행으로 화합하여 함께 닦으며 셋째 몸으로 화합하여 함께 머물며 넷째 입으로 화합하여 다투지 않으며 다섯 째 뜻으로 화합하여 함께 기뻐하며 여섯 째 이익으로 화합하여 함께 나눕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대중 속으로 들어갑니다. 어떤 단체가 이 여섯 조항을 실천하고 대중이 모두 준수하면 이 단체는 제불보살이 호념하고 천룡신장이 옹호합니다. 

위에서 말한 조행의 셋째는 삼학(三學)으로 계율·선정·지혜를 닦습니다. 넷째는 육바라밀이고 다섯째는 보현십원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대중과 함께 지내면서 일을 처리하고 사람을 상대하며 사물을 접촉할 때 이 다섯 조행을 준수함이 바로 선을 닦고 덕을 닦는 것입니다. 

“세간에는 이렇게 눈앞에 나타나는 인연과보의 일들이 있나니, 목숨이 다한 후 어두운 저승에 들어가 몸을 받아 다시 태어나니, 몸의 형상이 바뀌고 육도가 바뀌게 되느니라(世間有此目前現事 壽終之後 入其幽冥 轉生受身 改形易道).” 

세상에서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접촉하는 이러한 인연 과보의 일은 냉정하게 유의해서 관찰하면 또렷하고 명백해집니다. 악인을 지은 사람, 악연을 지은 사람은 수명이 다한 후에 삼악도[幽冥]에 떨어질 것입니다. 사람 몸을 잃어버린 후 이번 일생에 지은 업에 따라 선업이면 삼선도에서 몸을 받고, 악업이면 삼악도에서 몸을 받습니다. 

악업을 지으면 인간에서 축생으로 떨어지니, 몸의 형상이 바뀌어 형상이 같지 않습니다. 이런 일들은 이 세간에는 늘 있는 일입니다. 대만 가오슝(高雄) 시 작은 마을에 작은 절이 하나 있었는데 절에서 개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습니다. 이 개는 이 절을 잘 지키고 아침저녁 염불에도 모두 함께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삼귀의를 할 때 개가 갔는데 노화상처럼 자세가 매우 컸습니다. 스님 한분이 이 개에게 설법하였습니다. 

“아마도 옛날 이 절에서 노화상이 죽어 환생하셨는데 바로 당신이다. 당신은 이제 주지가 아니고 짐승이다. 아침저녁 염불이 끝나야 갈 수 있고 삼귀의 때 바로 가서는 안 된다.” 이 말을 들은 이후로 개는 아침저녁 염불을 다 끝내고 마지막에 갔습니다. 그러나 2, 3개월 후 개는 죽었습니다. 다행히 선근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스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었고 계속 염불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지옥과 축생, 기거나 날거나 꿈틀거리는 벌레의 권속이 있나니 비유컨대 세간의 법으로 감옥에 들어가 격심한 고통과 극형을 받는 것처럼 그 신식이 그 죄업에 따라 삼악도로 가서 그 받는 수명은 혹 길기도 하고 혹 짧기도 하느니라(故有泥犁 禽獸 蜎飛蠕動之屬 譬如世法牢獄 劇苦極刑 魂神命精 隨罪趣向 所受壽命 或長或短).”

그러나 한번 미혹하면 바로 아귀ㆍ지옥ㆍ축생의 응보가 있습니다. 이는 마치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삼악도는 세간의 감옥과 같아 죄업을 지으면 응당 과보를 받아야 합니다. 

당연히 이 몸이 환생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태에 들어가 환생하는데 불교에서는 신식(神識)이라 합니다. 사람들은 영혼이라 하는데 이는 잘못된 관념입니다. 이 혼은 전혀 신령하지 않습니다. 신령하다면 어떻게 축생으로 바뀌고 아귀로 바뀌겠습니까? 그의 죄업에 따라 어느 한 세계에 환생하고, 받는 수명의 장단도 다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축생은 수명이 매우 길고, 어떤 축생은 수명이 매우 짧습니다. 지옥에서도 무간지옥은 그 수명이 너무나 길지만, 유증지옥(遊增地獄)은 소지옥으로 그 수명은 길지 않습니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482호 / 2019년 3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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