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교수의 ‘직지’
카이스트 교수의 ‘직지’
  • 이재형 국장
  • 승인 2019.04.15 11:37
  • 호수 1485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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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 직지·한글 폄하
‘직지심경’이란 호칭부터 잘못
무책임하고 비판 받아도 마땅

우파 지식인 단체 대표를 맡고 있는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직지’와 한글을 폄하하는 글을 올려 논란을 빚었다. 그는 ‘어거지 세계 최초 5G’라는 제목으로 5G개발을 ‘직지’ 및 한글 창제와 비교한 뒤 한국이 5G 세계 최초를 자랑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비꼬았다. 그의 글 중 논란이 된 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직지심경의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라고 자랑하지만 세계는 구텐베르그의 인쇄술을 기억한다. 그것은 구텐베르그의 인쇄술이 성경을 보통 사람들 손에 쥐어주는 정보의 대중화로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의 기폭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지심경이나 세종대왕의 한글의 발명은 그런 혁명적 효과가 없었다. 즉 보통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세계사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페이스북에 올린 정제되지 않은 글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의 대학 교수가 썼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오류와 논란의 여지가 많다. ‘직지심경’이라는 명칭부터 그렇다.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사전만 검색해도 ‘직지심경’은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의 잘못된 표현으로 명확히 나온다. 또한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경전에만 경(經)을 붙일 수 있기 때문에 고려 말 백운 스님이 원나라 석옥청공이 편찬한 ‘불조직지심체요절’ 1권을 들여와 증보·편찬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은 ‘직지심경’으로 불릴 수 없다고 서술돼 있다. 따라서 직지의 온전한 이름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을 줄여서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 ‘직지’ 등으로 부르는 것은 가능해도 ‘직지심경’은 적절치 못한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덕분에 유럽 사회가 ‘정보의 대폭발’을 경험할 수 있을 수 있었고, 서구의 르네상스, 기독교개혁, 과학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성경을 보통 사람들 손에 쥐어주는 정보의 대중화로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 구텐베르크 인쇄술 영향력이 지대했더라도 ‘성경→정보대중화→시민혁명’으로 이행했다고 보는 것과는 별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요즘 언론에서조차 ‘직지심경’이라는 호칭이 사라지지 않은 풍토에서 그의 실수는 사소할 수 있다. 또 기독교 성서가 정보대중화에 기여하고 그것이 시민혁명의 기폭제가 됐다는 견해도 그의 종교적 신념일 수 있다. 그러나 ‘직지심경이나 세종대왕의 한글의 발명은 그런 혁명적 효과가 없었고, 보통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세계사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은 무책임하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미국 대학에서 공부한 그에게는 직지가 현존 세계 최초의 책으로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사실이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한글도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 유럽 언어에 비해서는 혁명적 효과가 없었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문화사 및 사상사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직지’로 대표되는 인쇄문화가 절대적인 기여를 했음은 분명하다. 또한 세종대왕 주도로 창제된 한글이 조선시대에 얼마나 효용성이 있었는지는 평가가 엇갈릴 수 있더라도 오늘날 한글을 배제하고 어떤 지식도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적절치 않다. 그가 직지와 한글을 먼저 사례로 언급한 뒤 한국의 5G를 공격하며 “먹자골목 원조집 주장과 유사하다” “택시 카풀 하나 해결 못하는 나라에서 5G는 개 발에 편자다” 등 원색적인 비판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재형 국장

그는 직지와 한글이 ‘보통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이 없었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가 말하는 보통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우리 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폄하를 계속한다면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이 땅에서 살아가는 보통사람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mitra@beopbo.com

 

[1485 / 2019년 4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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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주의 쩐다 2019-04-23 10:26:33
저 사람은 미국사람이 아닌 것에 대해 무한히 열등감을 느낄 것이고, 미국에서 박사 땄다는 것에 대해 무한히 우월감을 느낄 것이다. 저런 사람에게 배우는 학생들은 알게 모르게 얼마나 열등감에 시달릴까.

지켜보는이 2019-04-21 21:28:11
이런 사람이 정치하면 안됩니다. 비전문가가 전문가인척....교수 감투를 쓰면 무엇이든 전문가가 되는 거랍니까? 고작 업무용 IT소프트웨어 전공한 사람이 무슨 경제 정치 사회 산업 역사 다 아는 것처럼 지껄인답니까?

이상용 2019-04-19 18:09:22
란글과 직지....우리 한국인에게는 대단해도 전 세계인들에게는 혁명적인 영향이 없었다는 이야기 인 거 같은데...이제라도 그런 자부심이 있다면 널리 알리면 되고 그것은 우리의 몫.

보통사람들 2019-04-19 10:56:39
이 교수라는 사람이 말하는 보통사람은 반짝구두와 나비넥타이 맨 서양의 보통사람들만 얘기하는가보네요. 그때 구텐베르크 활자가 동양 보통사람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그리고 구텐베르크 활자가 보통사람들 손에 정보의 대중화를 쥐어줬다는데 그 당시 서양의 문맹률을 생각해보지도 않고 책을 살 수 있는지 여건도 헤아려보지 않고 그냥 생각나는대로 쓴 글이군요. 카이스트 교수라는 호칭이 무색합니다.

나건연 2019-04-18 23:50:04
서로의 이야기에서 좋은 점 의미하는 바를 찾고 미래 지향적인 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