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일제강점기 스님들의 회갑연
96. 일제강점기 스님들의 회갑연
  • 이병두
  • 승인 2019.04.22 15:33
  • 호수 14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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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엄한 감시 속 스승의 환력 축하하다

대각사서 열린 용성 회갑잔치
소박하지만 각계 축하 이어져
친일 이회광까지 축시 전달해
일제 경찰들의 감시 따랐을 것 
1914년 통도사에서 열린 성해 스님 회갑기념 사진.
1914년 통도사에서 열린 성해 스님 회갑기념 사진.

1924년 서울 종로 대각사에서 용성 스님의 회갑연이 열렸다. 자리는 소박했지만, 불교 개혁과 민족 독립에 투신하다 옥고를 치르고 나온 스님의 환력(還曆)을 기리는 진심어린 축하가 각계 인사들에게서 울려 퍼졌다.

용성 스님과 오랜 교분을 이어오며 뜻을 같이 했던 선암사 경운 스님과 통도사 경봉 스님은  “진리의 바다에서 신령스런 용처럼 경론을 번역하시고/ 율문(律門)의 맹호가 되어 선림(禪林)에 드셨도다/ … 뛰어난 노승들이 다 칭송할 뿐만 아니라/ 꾀꼬리와 제비도 참례하여 축하시를 읊고 있네.”(경운), “경전을 번역하여 육안을 열어 주시고/ 법을 강론함에 꽃비가 내려 구름숲(雲林)을 비추네”(경봉)라며 스님의 경전 번역과 계율 확립을 극찬하였다. 뿐만 아니라 친일 승려로 낙인찍혀 불교계에서 배척당하던 이회광까지 찾아와 축하 시를 지어 올렸으나 이 자리는 그가 발을 들이밀 곳이 아니었다.

스님과 3‧1운동에 함께 참여했던 나용환‧나인협‧이종일 등 천도교 지도자들도 축하의 마음을 시로 전했다. “포부는 높고 높으신데 있으나/ 스님은 작은 절에 거처 하신다네/ 고해의 많은 번뇌 중생에게/ 복덕이 있기를 바라며 노심초사 하시네/ … ”(나용환), “서대문 감옥에서 헤어져 오늘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초청하여 불러주시니 깊이 감격할 뿐/ 농사꾼이라 부끄럽게도 배운 것이 없어/ 도시에 선림이 있음을 누가 알았으리오”(나인협), “지난날 감옥에서 인자한 가르침에 보답할 길 없었는데/ 주장자의 지혜와 복덕으로 오래도록 선림을 보살펴 주소서/ … 오래도록 현세에서 무량수 누리기를 축원하며/ 운율에 맞추어서 수연시를 읊습니다.”(이종일)

용성 스님의 회갑연이 열린 대각사는 공간이 좁다. 이 좁은 곳에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찾아왔으니 일제 경찰도 긴장했으리라. 하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회갑잔치나 전국의 5일장 등 조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혹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그들이었으니 이날 대각사로 향한 눈초리가 얼마나 번득였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면 일제강점기 스님들의 회갑연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10년 전인 1914년에 통도사에서 열린 성해 스님 회갑기념사진을 통해 당시 분위기를 짐작해보자. 성해 스님은 통도사의 면모를 새롭게 하고 경봉‧구하 스님 등의 제자로 배출한 당대의 고승이었다. 사진을 보면 전각 어간에 ‘환력(還曆)기념’이라고 쓴 큰 현수막을 걸고 그 앞 가운데 잔치의 주인공인 성해 스님과 스님 세 분이 앉아 있고 축하객 수십명이 서있다. 그 중에는 갓을 쓴 노인과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인도 있고, 맨 앞줄에는 학인으로 보이는 젊은이들 여러 명이 그리고 맨 뒷줄에는 모자를 쓴 학동들이 있다.

서울 대각사에서 열린 용성 스님 회갑연의 분위기는 이와 많이 달랐을까?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86 / 2019년 4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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