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누워계신 부처님(臥佛)  ② - 동은 스님
9. 누워계신 부처님(臥佛)  ② - 동은 스님
  • 동은 스님
  • 승인 2019.05.07 17:05
  • 호수 14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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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부처님 곁에 누워 슬며시 손을 잡고 싶었다”

부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같은 모습으로 열반 맞아
운주사에 누워계신 부처님 보면
너무나도 인간적인 정감 느끼져
법문 요청하면 벌떡 일어나셔서 
“이제 법문하러 갈까” 말씀할 듯
그림=허재경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첫 해외 성지순례지로 미얀마를 갔다. 도반 스님들과 함께 어머니들을 모시고 갔으니 효도순례였던 셈이다. 아들을 출가시킨 어머니들과 출가 사문이 된 아들들이 한 자리에 모여 10여일 정도 순례를 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행복한 순례였다.

여러 성지를 갔는데 유독 양곤에 있는 ‘차욱타치 와불상’이 기억에 남았다. 크기도 대단했지만 사진으로만 봐왔던 와불상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누워있는 부처님은 모두 열반에 드신 모습인줄 알았다. 그런데 팔을 괴고 눈을 뜨고 있으면 쉬고 있는 모습이고, 눈을 감고 팔을 베고 있으면 열반하신 모습이라고 했다. 

이 와불상은 휴식불이었다. 얼굴에는 아름답게 화장도 하고 손톱에는 분홍빛 매니큐어도 발랐다. 눈과 입가에는 은은하게 미소를 띠고 참배하는 불자들에게 너도 옆에 누워 쉬어가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미얀마 사원은 불자들의 기도처이면서 휴식처이다. 청춘 남녀가 데이트도 하고 어르신들과 아기들은 법당 한 쪽에서 편안하게 누워 잠을 자기도 한다.

오래 전 인도 순례길에서 쿠시나가라 열반당에 모셔진 와불을 친견했다. 정성껏 백팔 배를 하고 조용히 앉아 부처님의 열반장면을 떠올렸다. 45년 동안 중생을 위해 설법하시다가 몸은 쇠약해지고 지쳐 “아난아! 나는 이제 좀 쉬고 싶구나. 사라수 아래에 자리를 깔아다오” 하고 누워 다시 일어나지 못하신 붓다의 마지막 모습. 이 얼마나 가슴 찡한 인간적인 모습인가? 마치 나도 그 자리에 제자들과 함께 있는 듯 하여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는 ‘가장 인간적인 삶이 가장 수행자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 줄 아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중생들과 마음을 같이 나눌 줄 아는 그런 수행자가 진정한 수행자라고 생각한다.  

부처님의 모습도 다양하다. 보통은 대웅전에 앉아계신 부처님이다. 미륵반가사유상처럼 의자에 앉아 있는 부처님도 있다. 산 중턱 커다란 바위에 서서 멀리 중생들을 굽어보며 모든 소원 다 들어주겠다는 수인(手印)을 한 아미타부처님도 계신다. 또한 힘들면 누워 쉬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휴식불이 있다. 그리고 평생을 맨발로 걸어 다니시며 지친 몸으로 마침내 쿠시나가라 사라수 아래 누워 열반에 드신 부처님도 있다. 

화순 운주사에 가면 편안하게 누워 하늘을 보고 있는 부처님이 있다. 우리가 ‘와불’이라고 하는 부처님은 팔을 베고 오른쪽으로 누워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운주사의 ‘와불’은 아예 잠자는 듯한 모습으로 편안하게 누워있다. 중생을 제도하다가 힘이 들어 잠시 누워 쉬고 계시는지, 아니면 할 일을 다 해 마친 뒤 편안하게 누워 열반에 드셨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런데 누워 있는 일도 보통일이 아니다. 아무 일도 안하고 몇 백 년 누워 있어보라. 얼마나 답답하고 허리가 아프겠는가. 어쩌면 운주사 와불은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누워 지내야 하는 중생들의 고통을 동사섭하기 위해 누워있는지도 모른다. 나도 이렇게 누워있으니 용기를 잃지 말라며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라고 해서 맨날 앉아 있고 서 있는 것만 아니다. 피곤하고 지치면 누워서 쉬기도 하고, 잠이 오면 잠도 자야 한다. 부처님은 신이 아니다. 우리처럼 인간 몸을 받아 이 사바세계에 오셨다가, 고행 끝에 깨달음을 이루셨다. 제자들이 탁발해주는 밥을 받아 드셔도 될 텐데 매일 직접 탁발해서 공양을 드셨다. 그리고 발우를 씻어 설거지 하고 법을 설하셨다. 

평생을 맨발로 다니다가 돌아가실 때는 보통 인간처럼 배탈이 나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만약 부처님께서 돌아가실 때에 공중으로 날아 올라가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인 제행무상 시생멸법, 즉 ‘꽃은 피고지고 사람은 나면 이윽고 죽는다. 이것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라는 명제에 부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오직 단 하나, 운주사에서 하늘을 보고 누워 있는 부처님은,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서의 감내해야 할 고락을 다 겪으시고, 삶 가운데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마지막 순간까지 가르치다가, 인간처럼 누워서 돌아가신 가장 인간적인 부처님이다. 해탈하러 가는 길, 조금은 힘이 드셨을까? 아니면 모든 일을 해 마친 뒤 편안하게 누우셨을까? 가다가 힘이 들어 잠시 앉아 졸다 넘어졌는데,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길게 누워 있는데, 중생들의 눈으로 보니 너무 오랜 시간으로 보이는 건 아닐까? 운주사 와불은 독창적이고 개방적이면서 지역 민중들과 살아 숨 쉬는 신앙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할아버지 같은 푸근한 부처님, 아버지 어머니 같은 다정한 부처님, 우리 가족 같은 친근한 부처님. 

나도 운주사 와불 곁에 누워 슬그머니 부처님의 손을 잡아보고 싶다. 그리고 부처님과 함께 한숨 깊이 자고 싶다. 혹시 꿈속에서 부처님을 만나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부처님, 허리 안 아프세요? 이제 그만 일어나시지요? 요즘 사바세계에 골치 아픈 일거리들이 많이 생겼답니다. 불자들의 신심도 많이 떨어졌구요. 서울 한복판 조계사에서 시원하게 특별법회 한번 하고 오시지요. 그동안 차디찬 흙바닥에 누워 허리도 편치 않았을 텐데, 다녀오시는 동안 제가 자리 잘 정리해서 푹신한 요 깔아 놓겠습니다.” 

세상일은 알 수 없는 일. 단꿈을 꾸고 아침이 되었는데 “내가 너무 오래 누워 있었나? 이제 한 번 일어나 볼까?” 하시면서 정말 흙을 툭툭 털며 부처님이 일어나실지도 모른다. 그리고 삶의 고뇌에 힘겨워하는 중생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며 “힘내시게, 암만 살기 힘들어도 살다보면 그래도 살아볼만한 세상이라네. 난 몇 백 년을 누워 있다가도 이렇게 일어나질 않았는가?” 하시며 등을 토닥거려 주실 것만 같다. 아직 산 벚꽃 드문드문 남아있는 아름다운 봄 날 아침, 너무나 인간적인 부처님을 뵙는, 깨고 싶지 않은 긴 꿈을 꾼 듯하다.

동은 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dosol33@hanmail.net

 

[1486 / 2019년 4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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