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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

기자명 김순석

지난 4월9일 7명의 노인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된 ‘퇴계선생귀향길재현단’은 서울 강남 봉은사를 출발하여 21일 안동 도산서원까지 320km를 걷는 행사를 진행하였다. 이 행사는 안동시 도산면 퇴계종택 뒤에 자리하고 있는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에서 기획하고, 시행하였다.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은 이 행사를 기획한 배경에 대해서 퇴계 이황의 학문과 애민정신을 후대 사람들이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재현단은 기록을 바탕으로 음력 1569년 3월4일부터 17일까지 퇴계가 고향으로 돌아왔던 이 길을 수차례 예비답사를 통해 현장 고증을 마치고 경로와 여정을 잡았다고 한다. 

퇴계는 배와 말을 타고 돌아왔지만, 450년 만에 퇴계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된 재현단은 도보로 가기로 했다고 한다. 그때 나이와 지금 나이를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800리를 완주했던 사람들은 당시 69세였던 퇴계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있었다.  

출발지는 강남 봉은사였는데 그 까닭은 이렇다. 조선시대 불교는 억불정책의 영향으로 교세가 위축되어 겨우 잔명을 유지할 정도였는데 명종의 생모인 문정왕후의 배려로 불교계는 부흥기를 맞게 되었고 그 중심에 보우 스님이 있었다.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보우 스님은 유림들의 빗발치는 상소를 당할 수 없었다. 영남 선비들도 여기에 가담하여 분주하게 움직였고, 퇴계에게 동참을 요구하였다. 퇴계 또한 성리학자로서 불교를 옹호하지는 않았으나 사람들의 생각이 다양함을 인정하고, 소신에 따라 처신할 일이지 통문을 돌려 대궐까지 나아가서 집단행동으로 보우 스님을 탄핵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이런 까닭에 그의 고향인 예안과 안동 선비들은 이 사건에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인하여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은 이 행사에 나와서 축사를 하였다.

봉은사를 출발한 재현단의 일정은 광나루와 미음나루(남양주시), 양평, 여주, 충주, 제천, 단양, 영주시를 거쳐 마지막 12일째는 퇴계 종택이 있는 삽골재에서 도산서원에 이르는 길이었다. 재현단은 낮에는 퇴계가 내려왔던 길을 걸었고, 밤에는 숙소에서 퇴계학 전공학자들과 함께 퇴계의 시를 읊기도 하고, 강연을 듣기도 하였다. 유럽에서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유명한데 성야고보가 이베리아 루시타니아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사망하자 그의 시신을 스페인으로 옮겨 매장한 그 길을 가톨릭 신자들은 성지 순례를 하기 위해 몰려든다고 한다. 퇴계 귀향길 재현 행사 또한 금년처럼 일반 시민 누구나가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매년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퇴계는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1년 9개월 동안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불교를 이단으로 간주하고 비판하였다. 왜 그랬을까? 고려말에 등장한 조선의 건국 세력들은 유교를 바탕으로 한 신흥사대부였고, 당시 부와 권력을 누리던 세력은 불교를 기반으로 한 권문세족이었다. 신흥 세력이 기득권층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그 근거지를 공격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대상이(그 파장이) 불교와 사찰까지 미쳤다. 신흥사대부들은 불교를 잘 모르면서 집중적으로 공격하였다. 정도전의 ‘불씨잡변’을 살펴보면 ‘인과응보설’ 같은 과학적인 설들을 유학자의 측면에서 허황된 것으로 비판하였다. 공자는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불교는 정법이라고 이름지울 수 있는 법이 없다고 한다. 안다는 것은 곧 확신으로 이어지고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로 작용할 때가 많다. 불법은 그 무엇도 분명하게 확정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안다는 것은 경계하고 또 조심해야 할 일이다.

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sskim@koreastudy.or.kr

 

[1490호 / 2019년 5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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