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련사 안정불교대학 범패과 강주 상진 스님
청련사 안정불교대학 범패과 강주 상진 스님
  •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 승인 2019.05.27 13:58
  • 호수 14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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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齋)의 시공간서 울린 범패승 소리는 망자·산자 깨우치는 사자후!

성공·월봉스님 염불에 출가
벽응·구해 스님 소리 품어

‘향·당풍 범패’ 관통 후 
‘소리 없는 소리’ 체득

영산재 등 불교의례 공연화
한국문화 정수 세계에 전파

신구의 삼업 정재해 
신심 청정케 하는 게 ‘재’

지혜·자비 충만한 소리가
안락국으로 고혼 인도
“의례에 배어 있는 의미를 나름의 혜안으로 해석해 소리·무용으로 전해야 한다”는 상진 스님은 “범패승의 소리는 부르는 게 아니라 토해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사람의 몸에서 난다.’ 인간의 목소리가 최고의 악기라는 얘기다. 하여, 판소리계의 타고난 소리꾼도 궁극의 소리를 얻고자 깊은 산 속 수직 폭포 아래서 피를 토하는 고통을 감내했다. 그 고된 수련 끝에 ‘폭포수 쏟아지듯 장단고저 변화무궁 이리농락 저리농락’하는 경지의 득음(得音)에 이른 창자(唱者)를 명창(名唱)이라 칭한다. 한국 3대 성악으로 꼽히는 범패(梵唄)계의 스님들도 자신만의 소리를 얻어야 한다. 다만 희로애락을 표현하고 이끌어내는 가곡·판소리와는 결이 다른 숭고미가 배인 소리여야 한다. 불교 전통의식에 쓰이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범패는 크게 안채비와 겉채비(바깥채비)로 나뉜다. 안채비는 약간의 곡조가 살아있는 염불이라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다. 겉채비는 불보살 명호 등을 여럿이 함께 부르는 짓소리(고음을 지른다는 의미)와 한시·게송의 가사를 혼자 노래하는 홑소리(한 사람의 소리·홋소리)로 구분된다. 홑소리 범주에는 천수바라 등의 무용도 포함된다. 논하는 사람에 따라 엄밀하게 구분할 때는 성악만으로 이뤄진 짓소리를 범음(梵音)이라 하고, 노래·무용(작법)을 아우른 홑소리를 범패라 하기도 한다. 범음범패라는 용어가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는 안·겉채비와 화청(和請, 민속 음악에 우리말 사설(辭說)을 중심으로 한 민속 풍의 노래·회심곡)까지 포함해 범패라 한다. 또한 언어에 따라 크게 범풍(범어·梵語범패, 진언, 다라니 등이 포함된다), 당풍(한어·漢語범패. 국내 현존 범패 대부분은 당풍이다), 향풍(당풍 이전에 내려온 신라풍·육자염불, 장엄염불 등이 포함된다)으로 나누기도 한다.

뛰어난 짓소리와 불세출의 호적(胡笛·태평소) 연주자였던 벽응(1915∼2009), 범패의 정수인 홑·짓소리를 통달한 구해 스님은 한국 범패계를 대표(중요무형문화재 50호) 하는 스님들이다. 기라성 같은 두 스님의 소리를 체득한 인물이 바로 경기도 양주 청련사에서 범패 인재 양성에 매진하고 있는 상진(常眞) 스님이다. 

근대 염불홍법의 선구자로 평가 받는 성공 스님과 차세대 선두 주자로 꼽혔던 월봉 스님의 독경 소리(테이프)를 듣고 자랐던 청년은 그 소리의 근원을 찾아 창녕 영명사로 들어섰다.(1987) 주지 지종 스님에게 목탁 잡는 법부터 삼보통청(三寶通請, 불법승을 청하는 의식)에 이르기까지의 기본의식을 배웠는데, 당시 지종 스님은 영남 범패를 이끌었던 한파 스님(1951∼2016)과 함께 의례활동을 하고 있었다. 영명사 점안법회 때 펼쳐진 한파 스님의 범패를 본 직후 ‘범패승의 길을 걷겠다’는 원력을 세웠다.

3년에 이르는 행자시절을 보낸 상진 스님은 염불과 시다림(屍茶林·尸陀林, 장례식 전에 망자에게 전하는 설법의식)에 능했던 순천 선암사 철화(鐵華)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1990) 한파(법성게)·금파(영남 범패)·명파(법기타주)·석봉(북가락) 스님을 사사한 상진 스님은 동방불교대학 상주권공 2년 과정을 통해 서울·경기 범패(경산제·京山制) 의례와 악가무를 익히며 범패의 진수를 터득해 갔다.(1992∼1994) 
 

독경소리 따라 출가한 상진 스님은 서울·영남 범패를 이끌고 있다.

졸업 후엔 성공(천수경)·월봉(장엄 염불) 스님의 소리는 물론 신촌 봉원사를 중심으로 전개된 서울·경기 범패까지 본격적으로 수학하며 벽응·구해 스님의 소리마저 올곧이 품었다. 출가 10년 만에 당풍(서울경기·영남 범패)과 향풍(장엄 염불)을 구현해 낸 상진 스님이다. 

전통문화 보급과 불교의례 대중화를 위해 ‘한국의 혼과 예술(예술의전당·1999)’ ‘일요예술 무대(운현궁·1999)’ 등의 대중무대에 적극 출연한 상진 스님은 2000년대 접어들며 ‘한국 전통문화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해외로 운신의 폭을 넓혔다. ‘세계로 도약하는 한국문화예술 5000년(뉴욕 카네기홀·2000)’에 출연한 이후 ‘한국 불교의식 범패(부탄·2007)’ ‘3층탑 사리이운 법회(스리랑카·2014)’ ‘6·25참전용사 위령 영산대재(LA슈라인극장·2016)’ ‘킬링필드 희생자 위령합동천도 영산대재(캄보디아·2017)’ 등을 기획총괄해 각국에 선보였다. 

범패는 가곡이나 판소리와 달리 장단과 화성이 거의 없는 단성선율인데다, 악보가 아닌 구음(口音)으로 전해져 왔다. ‘천상의 소리’라는 범패를 품는다는 건 득음의 경지를 뛰어 넘은 ‘소리 없는 소리’를 얻는 것이다. 그 세계의 일미라도 엿보고자 청련사로 향했다.

범패를 악보화한다는 건 지금도 불가능에 가까운데 상진 스님은 범패소리를 어떻게 지어 갔을까? 

“대가 반열에 오른 스승들의 소리를 직접 녹음했습니다. 그리고 들었습니다. 앉으나 서나, 걷거나 쉴 때도 귀에는 늘 이어폰이 꽂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따라했습니다.”

동방대 입학 전후 상진 스님에게 직접 가르침을 준 스승은 서울·경기 범패를 구사하는 혜산·구해 스님이다. 한 가지 짚어보자. 상진 스님이 출가 직후 접한건 영남 범패였다. 표준어에 가까운 깔끔한 맛의 서울 범패와 사투리 특유의 구성진 가락의 영남 범패 소리의 음악적 차이는 상상 이상이라고 봐야 한다. 똑같은 가락이라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 음색 차이로 달리 들리는 법인데, 지역 말씨에 따른 미세한 떨림·고저 변화까지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상반된 두 세계의 소리를 새겨간다는 건 실로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신촌 봉원사를 중심으로 한 서울 범패의 긍지는 대단했다. 자신들이 주도한 영산재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기 때문이다.(1987) 사투리 특유의 색깔(영남 범패)이 짙은 염불을 했던 상진 스님은 서울 범패승들로부터 “무당 소리 같다”는 놀림(?)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상진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저는 문화재청이 아닌 부처님께 출가 했습니다!”

크나 큰 담대함과 범패를 향한 열정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을 터다. 

김포에서 서울 봉원사로 오고가는 벽응 스님을 직접 차로 모시고 다니며 짓소리를 배웠다. 틈만 나면 구해 스님을 찾아 갔다. 소리를 내던 중 탈장사태까지 맞고도 멈추지 않고 스승의 숨소리까지 따라하려 애쓰고 또 애썼다. 급기야 상진 스님이 소리를 하면 도반들은 "벽응 스님이 오셨나?", “구해 스님이 오셨나?” 라며 방문을 열곤 했다. 스승의 소리를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상진 스님 소리 좋다!”는 소문은 태고종을 중심으로 급격히 퍼지며 그 명성이 쌓여갔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좋다고 한 그 소리. 저는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상진 스님이 ‘LA슈라인극장’에서 영산재를 선보이고 있다.청련사 제공

자신의 소리에 만족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상진 스님은 대구·경북교구종무원 부설 범음범패연구원에서 상주권공 과정의 의식반 강의(2003∼2009)를 하던 2007년 겨울의 어느날을 회상했다. 승납 17년의 상진 스님 강의에 법납 50년 이상의 대덕 스님들도 강의실을 찾았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범패 강의는 강주가 직접 소리를 내어 보이고, 따라 하는 후학들의 소리를 들어가며 지도해야 한다. 그날, 목욕 마친 영가들을 위해 새 옷을 만들어 입게 하는 가지화의(加持化衣) 시범을 보였다.

“무상비밀지언 가지명의… 승전소복지의 변성해탈지복(無上秘密之言 加持冥衣… 勝前所服之衣 變成解脫之服·이제 부처님의 무상 비밀지언으로 저승옷을 가지하여 드리리니… 앞서 입던 옷보다 훨씬 좋아 변하여 해탈의 옷이 되었습니다.)”

순간! 

자신의 소리가 달라졌음을 직감했다. 한숨 돌린 후 다시 소리를 이어가며 그 소리에 집중해 보았다. 분명 달랐다. 그리고 그 소리 참으로 좋았다. 

“이전의 소리가 ‘생 목소리’였다면 그 소리는 ‘툭 터진 소리’였습니다. 제 마음에 딱 들었습니다.” 

자신만의 소리, 궁극의 소리를 체득한 순간이다. 자신에게 쏟아진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끊임없이 닦아가고 있었기에 닿은 일대사인연일 터다. 그 이후 무엇이 달라졌을까? “범패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게 됐다. 이는 소소하지만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고 힘주어 말했다. 

“재(齋)란 불보살님께 공양 올리는 의식, 망자의 천도를 위한 법회를 이릅니다. 불보살 찬탄·공양 못지않게 천도 역시 범패의 주요 기능 중 하나입니다. 일례로 시식게(施食偈)를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원컨대 이 밥으로 널리 시방에 있는 모든 고혼에 베푸니 이 밥을 먹는 자는 배고픔과 갈증을 없애고 부처님 가피로 안양국(安養國)에 태어날지어다.’ 이 게송은 부처님께서 항하사수 언덕으로 가던 중 아귀떼가 몰려드는 연유를 여쭙는 아난·가섭존자와의 대화에서 비롯된 겁니다. 마주 앉아 있는 중생의 의식을 돌려놓는 것도 녹록치 않은데, 망자의 혼을 달래어 안양국으로 인도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간절, 진심, 신심 등 온 마음, 온 정성을 다한 소리여야 가능한 일입니다.”

범패승의 불심과 위의를 말하고 있음이다. 

“법성게·화엄 사구게, 오조 홍인과 육조 혜능이 나눈 법담, 달마대사의 선(禪) 일화 등도 범음 형태로 들려줍니다. 미혹한 영혼을 깨우쳐주기 위함입니다. 집착을 끊고 생사가 둘이 아님을 알아야 안양국에 갈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천도에 집중할 것만 같았던 범패승이 망자의 선지도 열어 준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다.

“범패승은 의례에 배어 있는 의미를 나름의 혜안으로 해석해 소리·무용으로 전해야 합니다. 범패승의 소리는 ‘부르는 게 아니라, 토해 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다. 우주를 송두리째 울릴 수 있는 사자후여야 한다.  

“의식이 마무리되면 결국 재단 공양물은 산 사람이 드십니다. 영산재·수륙재·생전예수재·상주권공재·시왕각배재도 산 사람의 목전에서 펼쳐집니다. 결국 범패승의 소리는 망자의 가슴을 지나 우주 법계를 관통한 후 다시 그 자리에 참석한 사부대중에게 돌아가는 겁니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신구의 삼업을 정재(淨齋)해 신심을 청정케하는 재(齋)의 본래 의미가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범패의 방점은 망자와 생자를 아우른 ‘중생제도’에 찍힘을 알겠다. 좋은 소리, 멋진 소리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자비심 충만한 소리여야 가능한 일이다. 범패 발성법이라 할 수 있는 ‘자비성(自悲聲)’이 왜 중요한지 읽혀진다. 숭고미의 원천은 자비성일 터다.

불자들에게 드리는 메시지를 부탁 드리자 서울에서 양주 청련사로 넘어오며 문득 떠올랐다는 게송을 전했다.       

‘자광조처연화출(慈光照處蓮華出) 
혜안관시지옥공(慧眼觀時地獄空) 
자비광명이 비치는 곳에 연꽃 피어나고
지혜의 눈으로 살피면 지옥이 사라지네.’

자비심 일어나면 극락세계가 나타나고, 지혜로운 눈으로 보면 지옥은 없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소리 없는 소리’를 얻은 상진 스님이 궁극에 마주한 건 ‘문 없는 문’이었음을 알겠다. 청련사로 들어차는 5월의 바람이 산뜻하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상진 스님은

- 철화 스님 은사로 출가.(1990)
- 동방대학원대학 의식과 교수 역임. 
- 태고종립 동방불교대학 교수 및 교학처장 역임.
- (재)천년고찰 청련사 이사장.          
- 청련사 예수시왕생칠재 보존회 회장.

 

[1490호 / 2019년 5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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