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수행 임미란(57, 수덕행)-상
사경수행 임미란(57, 수덕행)-상
  • 법보
  • 승인 2019.06.04 10:39
  • 호수 14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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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동떨어져 있던 부처님 말씀
가게를 접어야 했던 상황 속에서
‘법화경’과 만난 뒤 일들이 풀려
‘무늬만 불자’서 수행 초심자 돼
57, 수덕행

불교는 내 삶에 저만치 떨어져 있는 종교였다. 부처님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멀게만 느낀 불교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친구를 통해서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절친한 친구가 어느 날 불교대학을 다니겠다고 했다. 단순히 절에 다니며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을 배워보겠다는 친구 말에 단호함이 있었다. 엉겁결에 나도 함께 하겠노라 따라나섰다. 친구와 불교대학을 오가며 때론 부지런히 때론 쉬어가면서 1년 동안 불교공부를 무사히 마쳤다. 

하지만 부처님 가르침은 공허한 메아리였다. 바쁜 일상 속에서 수행과 기도는 여전히 뒷전이었기 때문이다. 배운 바를 실천해야 진정한 불자로 살아가는 것인데 “그래! 이렇게 해서 저렇게만 하면 된다”고 수차례 입으로만 예습했다. 정작 삶에 녹아들지 못한 부처님 가르침은 애먼 부채감만 가져왔다. 그렇게 부처님 가르침과 인생이 따로국밥처럼 떨어진 채 불교대학을 다니기 이전으로 돌아가 바쁜 나날을 보냈다. 부끄럽지만 부처님오신날 도반을 따라 나서거나, 불교대학에 큰 행사가 있을 때 혹은 뜻있는 나눔 소식이 들릴 때 조금씩 동참하는 것을 그나마 ‘나도 불자’라는 위안으로 삼았다. 

그러던 3년 전의 일이다. 건물주가 바뀌더니 갑자기 점포를 빼달라는 요청이 왔다. 건물 리모델링이 목적이었다. 제법 규모 있는 책 대여점을 운영해온 나는 덜컥 어떻게 이사를 하나 막막했다. 정확히는 이사할 자신이 없었다. 이 많은 책을 갖고 이전할만한 가게는 좀처럼 구해지지 않을 것이 뻔했다. 결국 점포를 빼달라는 주인 요청은 나에게 가게를 접으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받은 통보에 당황하고 막막하여 도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불안한 심정으로 용하다는 철학관을 찾아 막연한 희망을 쫓아다녀 보았지만 어떤 명쾌한 해답도 없이 기로에 서 있기만 했다. 그 때 도반은  ‘법화경’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사경, 불교대학에 다닐 때 접한 이후로 이미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단어였다. 도반은 ‘법화경’ 사경수행의 공덕과 가피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답답한 상황에서 사경 수행을 하라는 제안에 마음 한 구석에서는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그 당시의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심정이었다. 

도반은 직접 나를 데리고 ‘법화경’ 사경수행을 알리고 수행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하며 동행했다. 그곳에서 ‘법화경’과 더불어 사경에 필요한 여러 가지 필기구도 한가득 사주었다. 정성을 들여 간절히 발원하며 사경하면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도반의 격려를 들으며 그 마음이 참으로 고마웠다. 말만으로도 힘이 되고 큰 위로가 되는 느낌이었다. 당장 내게 어떤 변화가 오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마운 도반 덕분에 희망찬 마음으로 무조건 ‘법화경’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당시 나는 ‘법화경’의 뜻도 내용도 아무것도 몰랐다. 한글로 풀이된 ‘법화경’이었지만 좀처럼 그 의미에 다가가지 못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났을 때, 혹은 아침에 쓰지 못한 날에는 잠들기 전 30분 정도 사경을 했다. 말 그대로 글자를 옮겨 쓰기만 했다. 아무 뜻도 모른 채….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렀고, 나도 모르게 가게 이사를 해야 한다는 고민조차 잊고 지냈다. 몇 달 후 어느 날, 주인이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보내왔다. 너무나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신기하기도 했다. ‘법화경’을 쓰기만 했는데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한시름 놓으면서 ‘법화경’은 계속 썼다. 가끔은 게으름도 피웠다. 하지만 며칠 집을 비우거나 바쁜 일정으로 미처 쓰지 못하는 날에는 무엇인가 할 일을 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그럴 때에는 다음날, 그 다음날 ‘법화경’을 다시 펼치게 되었다.

물론 지극히 수행하는 분들에 비하면 내가 하는 것은 수행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만큼이라도 ‘법화경’을 쓰면서 수행하는 기쁨을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배워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1491 / 2019년 6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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