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스님
비구니스님
  • 원영상 교수
  • 승인 2019.06.17 13:27
  • 호수 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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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스님들과는 인연이 꽤 있는 것 같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생 때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집이 있던 경주 남산자락의 한 절을 배회했다. 그때 어떤 비구니스님이 다가와 우리 주지스님이 식사를 같이 했으면 한다고 해서 나를 데리고 갔다. 조용한 산사에서 수행의 품격이 묻어나는 비구니 주지스님과 단 둘이서 식사했다. 스님께서는 고뇌에 찬 내 모습을 보고 함께 식사라도 했으면 해서 불렀다는 것이다. 말씀은 다 잊었지만 산채의 구수한 맛과 스님의 자상했던 인상이 남아 있다. 

또 하나는 일본에서 유학할 때다. 현재 아름다운 지방도시의 절 주지스님으로 계시는 이분은 마치 누님 같았다. 박사논문을 쓸 때, 냉장고에 먹을 것을 늘 넣어주셨다. 내가 전생에 빚 받을 일이 있나 할 정도였다. 연세가 있던 스님은 일본어 공부를 시작으로 젊은이들과 즐겁게 박사과정을 마쳤다. 암에 걸린 스님은 국내에 들어와서 자연적인 치유에 여생을 맡기고, 시간 나면 전화로 인생의 의미와 자신의 수행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학문과 수행의 일치점을 찾고 계시는 스님이 이제는 생사해탈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내 경험으로 보건데 한국의 많은 불자들도 이처럼 비구니스님들의 자비로운 심법에 감화되어 절을 찾아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여성의 존재는 신비롭다. 더구나 비구니스님들의 존재는 관음보살과 같은 자비의 화신과도 같다. 남성 중심의 권력사회에서 여성의 모성은 지구와 인류의 마지막 보루다. 기업, 국가, 군대 등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곳에는 반드시 남성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긴장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종교를 찾는다. 종교는 프랑스어로 친다면 남성 혹은 중성이 아니라 여성의 세계다. 때문에 여성종교인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세상의 인구구성이 남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종교 또한 남녀가 동등한 입장에서 포교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비구스님도 줄고 있지만, 비구니스님은 출가자가 1년에 두 자리 숫자로 줄어들었다. 강원·선원에서는 울력하는 것도 점차 힘들어지고 있다. 이는 예견된 일이다. 종교의 시대가 저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교는 오히려 서구로 이동하여 새로운 불법을 꽃피우고 있다. 불교야말로 여전히 생명력이 식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의 출가자 감소는 그만큼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이다. 일본의 선종은 미국에 정착하여 미국식 선종으로 확대되고 있다.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에 정착해간 불교와 흡사한 양상인 것이다. 미국에서 비구니스님의 당당한 참선지도는 흔한 일이 되었다. 서양불교의 특징 중 하나는 여성중심의 불교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동서양 문명이 혼재된 이 시대에 왜 여성중심의 교단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일까. 원불교는 이미 총무원장에 해당하는 교정원장에 여성이 임명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다. 평등한 불성 아래 남녀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남녀·문중·나이를 넘어 오조 홍인선사가 육조 혜능선사를 단박에 인가해서 뭇 수행자들의 스승이 되도록 했던 깨달음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갈 수는 없는가. 일단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루기 위해 비구니스님들의 교단적 위상을 높이고, 종단을 함께 운영해가는 공동체 의식의 고양이 필요하다. 

인도에서 발생한 남성형의 보살상이나 보살도는 동아시아로 건너오며 여성화된다. 이는 대중의 신앙심을 반영한 것이다. 이성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삶의 모순과 부조리를 신앙세계에서 위안받고 싶은 것이다. 성공한 삶이든 실패한 삶이든 최종 의지처는 부처님 품안이고 싶어 한다. 가톨릭에서 예수를 낳은 성모마리아처럼 하나님 혹은 진리 사이에 중재해주기를 바라는 심성인 것이다. 중생구제의 원력 가득한 불도·보살도를 갖춘 비구니스님들이 많이 배출될 때, 한국불교도 희망이 있다. 비구니스님들을 귀하게 여기는 동시에 좋은 양성프로그램을 확충해 갔으면 한다.

원영상 원광대 정역원 연구교수 wonyosa@naver.com

 

[1493호 / 2019년 6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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