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지광국사탑’ 108년 만에 원주로 귀향
‘떠돌이 지광국사탑’ 108년 만에 원주로 귀향
  • 임은호 기자
  • 승인 2019.06.21 14:16
  • 호수 149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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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법천사지로 이전 결정
해외반출·폭격·해체 등 수난에도
“정교함은 고려 승탑 걸작” 평가
유출·이전 문화재 제자리 찾기로
예경 대상 장소성 회복 의미 커
문화재청 제공.
고궁박물관 앞에 전시됐던 법천사지 지광국사탑(2015년) 문화재청 제공.

일제의 불법 반출과 한국전쟁 폭격 등 한국 근·현대사 수난을 겪은 고려시대 승탑(僧塔)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 이하 지광국사탑)이 108년 만에 고향 원주로 돌아간다. 국보 문화재의 환지본처로 유출·이전됐던 성보문화재의 제자리 찾기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재청은 “6월20일 건축문화재분과 문화재위원회를 열고 지광국사탑을 원래 있는 곳인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지로 이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광국사탑은 고려 시대에 국가에서 최고의 승려에게 내리는 ‘왕사(王師)’와 ‘국사(國師)’의 칭호를 받았던 지광국사(984~1070)의 사리탑으로 법천사에 세워졌다. 화강암으로 제작된 높이 6.1m의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유행했던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 기단·탑신 등이 팔각형으로 된 형식) 양식에서 벗어나 평면 4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양식을 보여주며, 정교하고 화려한 이국풍의 조각이 돋보이는 고려 시대 사리탑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모습. 문화재청 제공.
한국전쟁 당시 파손 된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지광국사탑은 국외반출과 폭격, 잦은 해체 등으로 ‘비운의 석탑’이라 불린다. 바람 잘 날 없었던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한 탑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일본인에 의해 무단 반출되면서 본격적인 수난의 길로 접어들었다. 경성 무라카미 병원 정원(현재 명동 인근)에 몇 달 동안 머물렀던 탑은 이듬해 또 다른 일본인에 의해 남창동으로 옮겨졌다가 일본 오사카로 반출됐다. 석탑 반출로 국내 여론이 시끄러워지자 국내로 돌아왔지만 고향인 원주로 가지 못하고 1915년부터 경복궁 내 여러 곳을 전전했다. 해방 후 전쟁 통에 폭탄을 맞아 일부가 파손돼 1957년 긴급 수리도 받았다. 1990년 다시 국립고궁박물관 앞으로 이전했다가 2016년 해체·보수 결정이 내려져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산하 센터로 이송됐다. 현재 법천사지에는 옛 탑 자리만 남아 있고 당시 함께 조성된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탑비(국보 제59호)만이 홀로 남아 사지를 지키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1977년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의 모습.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지광국사탑을 원주로 옮긴 이후 어떻게 보존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원래 위치에 보호각을 세워 복원할지, 사지 내 건립을 추진 중인 전시관 내부에 전시하게 될지 결정하지 못했다”며 “보존환경이 석탑에 미치는 영향 등을 추가 검토하고 관계전문가 논의를 거쳐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광국사탑의 이번 귀향은 유출·이전됐던 성보문화재에 대한 역사성과 장소성을 회복한다는 데서 큰 의미가 있다. 박물관이 아닌 본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은 단순 유물이 아닌 예경의 대상인 성보로서의 의미를 되찾고 불교 정신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또 지광국사탑이 원주로 돌아가면 현재 강원도와 원주시가 추진 중인 법천사지와 거돈사지, 흥법사지 등 고려시대 남한강 유역 폐사지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 실장은 “국보급 문화재의 환지본처는 최근 흔치 않았던 일로, 지광국사탑의 귀향은 신심 고취와 환희심 면에서 성보 문화재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선조들의 뜻을 기리는 동시에 불자로서 예경의 대상인 성보로서의 의미를 되찾고 불교정신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제공.
법천사지 전경. 문화재청 제공.

한편 부서진 부재들로 상태가 엉망이었던 지광국사탑은 그간 정기조사(2005년·2010년), 문화재 특별 종합점검(2014~21015년), 정밀안전진단(2015년) 등을 받았다. 그 결과, 기단부와 시멘트로 복원된 옥개석, 상륜부의 구조적 불안정까지 더해져 석탑의 추가적인 훼손이 우려되는 상황이 확인됐다. 결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16년 5월부터 전면 해체‧복원작업을 벌였고 최근 보존처리 마무리 단계다. 해체 수리 도중 100여년 전 누군가 탑 표면에 먹으로 쓴 일종의 ‘낙서’도 발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묵서는 탑 복원을 위해 탑이 1911년 서울로 옮겨졌을 당시를 촬영한 유리건판 10여장을 확인하던 중 발견됐다. 원주·여주·충주 등 탑 근방 지역명과 인명, 연월일이 기록돼 있어 1879∼1905년 사이 폐사지를 지나던 인물이 흔적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한글용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됐다.

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문화재청 제공.
법천사지 전경. 문화재청 제공.

[1494 / 2019년 6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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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 2019-06-23 22:00:53
마음 아프다.
영화롭던 시절은 가고 한국불교의 오늘을 보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