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파라미타청소년협회 출범
103. 파라미타청소년협회 출범
  • 이병두
  • 승인 2019.06.24 17:58
  • 호수 14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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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의 미래 희망 위한 초석

개혁종단 출범후 청소년 대책 
1996년 전문포교단체 설립해
‘문화재 지킴이’ 특화로 주목
대통령 표창 등 성과도 이루어
1996년 5월12일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1회 파라미타 청소년문화축제.
1996년 5월12일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1회 파라미타 청소년문화축제.

1994년 봄, 길고 긴 고통을 겪은 끝에 이른바 ‘조계종 개혁불사’가 이루어지고 ‘개혁종단’이 출범하였다. 1980년 ‘10‧27법난’으로 신군부 세력의 압력을 받아 자리를 강제로 떠났던 월주 스님이 총무원장으로 선출되고, 새로 들어선 총무원 집행부는 종단 역사에 볼 수 없었던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교육원과 포교원을 ‘별원’으로 승격하면서 행정 중심의 총무원이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사업을 기획해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새 출발한 포교원은 이듬해인 1995년에 ‘한국불교 중흥 제1차 5개년 포교사업계획’을 수립하고 1996년을 ‘불교청소년의 해’로 지정해 청소년 문제에 대한 종단의 관심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여러 차례 토론회 등을 개최하면서 청소년 문제를 연구하고 논의해 불교계의 대책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이미 기독교계는 오래 전부터 정부의 교육정책 변화에 맞추어 학교의 특별활동에 초점을 맞춘 단체를 설립하고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적극적으로 10대들의 교실을 파고들고 있었다. 늦었지만 이 문제에 눈을 뜨게 된 조계종에서도 보이스카우트‧걸스카우트나 기독교의 YMCA 같은 청소년 조직이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고, 그 결과 ‘불교청소년의 해’ 예산을 크게 편성해 종단의 청소년 포교 전담 조직인 ‘파라미타청소년협회’를 출범시키게 되었다.

이 사진은 5월12일 서울 잠실의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제1회 파라미타 청소년문화축제’를 겸해서 열린 발대식에 참석한 내외빈의 모습이다. 파라미타 총재를 겸하고 있던 포교원장 성타 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고, 그 뒤로 총무원장 월주 스님과 원로의원 석주 스님 그리고 정부를 대표한 문광부 청소년정책실장이 앉아 있다. 파라미타가 출범하기 전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불교학생회가 거의 없었다. 조사 결과 불교학생회가 조직되어 활동하는 곳은 전국 중학교의 1%에 지나지 않았다. 고등학교라고 해서 나을 것이 없었으며, 사찰 학생회도 어려움을 겪으며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던 현실은 획기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서는 뚫고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쨌든 포교원의 파라미타 설립 의지와 개혁종단이라는 명분을 가진 총무원 집행부의 적극 지원에 힘입어 출범한 파라미타는 그해 여름 무주 덕유산야영장에서 3000여명의 학생과 지도자가 참가하는 3박 4일의 연합캠프를 열었고, 몇 달 만에 사단법인 허가를 받아 공신력을 확보하였다. 이어서 ‘파라미타청소년문화연구소’를 개설, 매월 토론회를 개최해 중장기적인 청소년 포교대책을 세워나갔으며, 전국 지도자들을 위한 교재를 개발해 배포하고 연수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창립 초반부터 불교계 단체라는 점을 살려서 ‘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특화해, 창립 20년이 지난 오늘에는 문화재청과도 협력관계(MOU)를 맺어 활동하는 공신력을 확보하였고, 대통령 표창을 받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94호 / 2019년 6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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