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뿍꾸사띠의 슬픈 이야기
4. 뿍꾸사띠의 슬픈 이야기
  • 마성 스님
  • 승인 2019.07.02 10:45
  • 호수 14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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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누가 설했냐보다 진리 부합 여부가 중요

세존에 ‘벗'이라 칭한 뿍꾸사띠
잘못 참회하며 구족계 간청해

발우·가사 구하려고 나갔다가
성난 암소 공격으로 생명 뺏겨

​​​​​​​그의 내세 궁금해하는 비구에
세존 "진리에 눈떠 열반 들 것”
인도의 소들은 대부분 온순하다. 그러나 새끼를 보호 중인 암소는 매우 사납다. 뿍꾸사띠는 새끼를 보호하고 있는 암소에 받혀 죽었다.
인도의 소들은 대부분 온순하다. 그러나 새끼를 보호 중인 암소는 매우 사납다. 뿍꾸사띠는 새끼를 보호하고 있는 암소에 받혀 죽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마가다국을 유행하시다가 라자가하에 도착하여 옹기장이의 움막에서 하룻밤을 지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움막에는 먼저 도착하여 머물고 있던 젊은 유행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뿍꾸사띠(Pukkusāti)였다.

예나 지금이나 인도 옹기장이의 움막은 넓고, 밤에는 조용하기 때문에 유행자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유행자들이 하룻밤을 보내기에는 최적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붓다와 그 제자들도 옹기장이의 움막에서 밤을 지냈다는 기록이 초기경전에 나타난다.

옹기장이의 움막에 도착한 붓다는 뿍꾸사띠 존자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비구여, 만일 그대가 불편하지 않다면 나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물고자 하오.”
“벗이여, 도공의 작업장은 넓습니다. 존자께서 원하신다면 편하게 머무십시오.”

이와 같이 뿍꾸사띠는 세존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옹기장이의 움막으로 들어가서 한 곁에 풀을 깔고 가부좌한 채로 선정에 들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밤을 거의 앉아서 보냈다. 뿍꾸사띠 존자도 밤을 거의 앉아서 보냈다. 붓다는 이 젊은 유행자의 수행 태도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물었다.

“비구여, 그대는 누구를 의지하여 출가하였소? 누가 그대의 스승이오? 누구의 법을 믿고 따르오?”
“벗이여, 사꺄의 후예이고, 사꺄 가문에서 출가한 사문 고따마라는 분이 있는데, 그 고따마 존자께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따릅니다. ‘이런[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이며, 완전히 깨달은 분이며, 지혜와 실천을 구족한 분이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이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이며, 가장 높은 분이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이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며, 부처님이며, 세존이다’라고. 저는 그분 세존을 의지하여 출가하였습니다. 그분 세존께서 저의 스승이십니다. 저는 그분 세존의 법을 믿고 따릅니다.”
“비구여, 그러면 지금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자는 어디에 머물고 계시오?”
“벗이여, 북쪽 지방에 사왓티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서는 지금 그곳에 머무십니다.”
“비구여, 그러면 그대는 전에 그분을 뵌 적이 있소? 그분을 보면 알아볼 수 있소?”
“벗이여, 저는 그분을 뵌 적이 없습니다. 저는 그분을 뵈어도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이 젊은이가 자신의 이름으로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뿍꾸사띠 존자에게 법을 설했다. 그때 설한 법문이 바로 유명한 ‘다뚜위방가-숫따(界分別經)’(MN140)이다.

뿍꾸사띠는 세존의 법문이 끝나갈 무렵, 자기에게 법을 설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가 그토록 존경하던 ‘사꺄무니 붓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려 엎드리고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어리석고 미혹하고 신중하지 못해서 제가 세존을 ‘벗이여(āvuso)’라고 호칭하였습니다. … 제 잘못에 대한 참회를 받아주소서.”

일반적으로 ‘벗이여’라는 호칭은 동년배 간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뿍꾸사띠는 붓다를 알아보지 못하고, 붓다께 ‘벗이여’라고 호칭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붓다께 진심으로 참회했다. 붓다는 그의 참회를 받아들였다.

이와 같이 뿍꾸사띠는 붓다께 진심으로 참회한 뒤, 세존의 곁에서 구족계를 받고자 원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붓다는 발우와 가사를 구비하였는가를 물었다. 그러나 뿍꾸사띠는 발우와 가사를 갖추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붓다는 “여래는 발우와 가사를 구비하지 않은 자에게 구족계를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후대의 주석가들은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해석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승단의 일원인 비구가 되기 위해서는 비구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도구인 발우와 가사는 입어야 한다. 그래야 형식적으로나마 비구의 모습을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뿍꾸사띠는 자신을 승단의 일원으로 받아준다는 붓다의 말씀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발우와 가사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암소에게 받혀서 죽고 말았다. 인도에서는 지금도 소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다닌다. 대부분의 소들은 유순하고 난폭하거나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간혹 어린 새끼를 보호하고 있는 암소는 본능적으로 매우 사납고 공격적이다. 뿍꾸사띠는 그런 암소에게 생명을 빼앗겼던 것이다.

나중에 이 슬픈 소식이 붓다께 전해졌다. 비구들은 세존께 그가 태어날 곳은 어디이며, 그는 내세에 어떻게 되겠느냐고 여쭈었다. 붓다는 비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했다.

“비구들이여, 뿍꾸사띠 선남자는 현자이다. 그는 법답게 수행했다. 그는 법을 이유로 나를 성가시게 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뿍꾸사띠 선남자는 다섯 가지 낮은 족쇄를 완전히 부수고 정거천(淨居天)에 화생하였으며, 그 세계에서 다시 돌아오는 법이 없이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이다.”

이것은 뿍꾸사띠가 붓다의 설법을 듣는 잠깐 사이에 수행의 세 번째 단계인 불환과(不還果)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이 이야기로 미루어 보아, 뿍꾸사띠가 붓다의 법문을 듣고 그의 가르침을 이해했을 때, 그는 누가 자신에게 설법했는지 혹은 누구의 가르침이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법을 보았고 진리에 눈을 떴다.

만약 약이 좋다면 질병은 치료될 것이다. 그것을 누가 준비했는지 혹은 그것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시 말해서 누가 법을 설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설한 법이 진리에 부합하는가에 달려 있다. 뿍꾸사띠의 슬픈 일화가 주는 교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495호 / 2019년 7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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