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길과 암자에서 마주치다  ① - 동은 스님
14. 길과 암자에서 마주치다  ① - 동은 스님
  • 동은 스님
  • 승인 2019.07.16 13:21
  • 호수 14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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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걷고 쉬기도 하니 길과 암자를 닮았다”

길은 동적이고 암자는 정적이라 
길은 항상 걷고걸어야 제맛이고 
암자는 걸터앉아서 쉬어야 제맛 
​​​​​​​
주저하면서 길 나서지 않았다면
수행자의 길에 들어서지 못했고
암자와 인연도 얻지 못했을 것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집을 나서면 길이 있다. 길은 우리네 삶과 닮았다. 늘 갈림길이 나타나며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 이 길이다 싶어 갔는데 길이 막혀 아까 포기했던 다른 길로 돌아갈 때도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듯 질주할 때도 있고 비포장 길을 만나 덜컹거리며 갈 때도 있다. 인생의 봄날처럼 경치가 좋은 곳에 차를 세워 놓고 꽃구경 할 때도 있고 꽃자린 줄 알고 갔다가 진흙탕에 빠져 곤욕을 치를 때도 있다. 차가 고장이 나면 견인차를 부르듯이 삶의 간난(艱難)에 허덕일 때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있다.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 옷을 흠뻑 적실 때도 있고 비를 피하러 들어선 처마 밑에서 평생배필을 만날 수도 있다. 다만 이 모든 상황들은 길을 나설 때는 모른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의 인생길이 있다. 내 인생의 길을 숫자로 표현한다면 7과 33이다. 7은 내가 출가했던 동해안 7번 국도이고 33은 고향에서 해인사로 연결되는 33번 국도이다. 지금 쓰는 전화번호도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해인사는 내가 가장 오랜 시간 머물면서 수행정진 하던 곳이다. 나는 가끔 도로 번호를 하나 정해서 여행을 할 때가 있다. 특정한 목적지를 두고 길을 나서는 것이 아니라 도로번호를 따라 길을 가다보면 평소에 가볼 수 없는 곳을 갈 때가 많다. 바로 과정의 소중함이다. 목적지를 정해서 갈 때는 그곳에 마음이 가 있기 때문에 지나쳐가는 풍경에 크게 관심을 줄 수가 없다. 그러나 과정에 의미를 두고 가다보면 재촉하는 마음이 없어져 여유를 갖게 된다. 그때야 비로소 사람 사는 모습들이 보이고 길가에 핀 들꽃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작년 봄에 법정 스님께서 수행하시던 송광사 불일암에 다녀왔다. 도반 현진 스님이 3년 동안 봉행한 ‘내 생애 꼭 가보아야 할 108암자 순례’ 마지막 회향법회를 이곳에서 했기 때문이다. 요즘 많은 곳에서 산사순례를 하는데 스님의 암자순례 프로그램이 좋아 순례단에 끼어 몇 군데 가기도 했다. 암자는 걸어서 가야 한다. 차에서 내려 몇 발짝 안가 있는 관광사찰과는 다르다. 뻘뻘 땀을 흘리며 몸과 마음에 찌든 삼독심을 비워내야만 다다를 수 있다. 길이 끝날 때 까지 가야만 마침내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순례를 하면서 이 산하 곳곳에 보석처럼 숨어있는 아름다운 암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알게 되었다. 아마 우리나라 명산들은 이 암자들이 있기에 더욱 빛이 나는지도 모른다. 

송광사는 젊은 날 율원에서 수행하던 추억이 깃든 곳이다. 방문 앞 돌담 너머에는 우거진 대숲이 있었다. 그 사이로 난 오솔길은 감로암을 거쳐 불일암까지 이어졌다. 가끔 대숲에 바람이 불어 “솨아~ 솨아~”하고 속삭이는 소리들이 들려오면 나도 모르게 홀린 듯 길을 나서 불일암에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무렵 법정 스님께서는 강원도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겨 가끔 내려오긴 하셨지만 스님의 손길이 닿은 암자 구석구석은 정갈하기 그지없었다. 중학생 때부터 ‘샘터’ 지에 실리던 법정 스님의 ‘산방한담’을 즐겨 읽던 나는 스님의 삶에 매료되어 있었다. 늘 불일암 구석구석을 상상하며 스님의 삶을 존경했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벌써 출가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길이란 인연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나는 출가 전 삶의 막다른 길에서 방황하다가 우연히 혼자 수행하는 스님의 작은 암자에 든 것이 출가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만약 절망해서 주저앉아 길을 나서지 않았다면 결코 수행자의 인연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길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걷는 자의 몫인 것이다. 

길과 암자라, 참으로 잘 어울리는 말이다. 길은 동적이고 암자는 정적이다. 길은 걸어야 제맛이고 암자는 마루에 걸터앉아 먼 산을 바라보며 쉬는 곳이다. 우리네 삶은 걷기도 하고 쉬기도 해야 한다. 걷기만 하면 지쳐 쓰러지고 일도 없이 쉬기만 하면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다. 땀 흘리며 길을 걸어오지 않은 사람은 퇴색된 암자 마루의 고마움을 모른다. 온 힘을 다해 걸어온 길 끝 암자 툇마루에 앉아 땀을 식힐 때, 문득 들려오는 풍경소리 한 자락이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할 수도 있다. 산다는 것은 걸어야 할 때와 쉬어야 할 때,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걸어가야 할 때가 있다. 그때를 놓치면 인생이 고달파진다. 삶 자체가 기도이며 수행인 셈이다. 

2012년 개봉한 이창재 감독의 영화 ‘길 위에서’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길에서 젠(Zen) 센터의 경험으로 출가한 상욱 행자와 어린시절 절에 버려져 동진 출가의 업을 지닌 선우 스님, 인터넷 검색으로 절에 왔다는 신세대형 민재 행자, 37년간 수행의 길을 걸어왔지만 아직도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영운 스님 등이 백흥암에 모여 수행하는 이야기다. 인생의 굴곡진 길을 걸어 마침내 암자에서 만난 사람들. 이들은 무엇 때문에 이곳으로 왔는가? 

이 영화의 초점은 ‘사람’에게 있다. 모든 삶은 행복을 지향한다. 수행도 결국 나는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고속도로를 편하게 가는 사람이든 가시밭길을 피 흘리며 가는 사람이든 모두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다. 나처럼 출가한 수행자도 그 여정이 행복해야 하고 길을 떠난 여행자도 길 위에서 행복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린 모두 행복하기 위해서 길을 나섰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암자는 삶의 끝에서 더 나아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한 걸음을 더 내디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자리를 내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 모두 평생 길 위에 있는 암자에 있는 셈이다. 

나는 지금 어느 길 위에 서 있는가? 지나온 수많은 길과 거쳐 온 암자에서 무엇과 마주쳤나? 7번 국도에서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와 마주쳤고 33번 국도와 만나는 해인사에서는 ‘삶이란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는 이놈은 무엇인가’라는 화두와 정면 대결했다. 이제 처음 출발했던 그 길, 7번국도 위 삼척에 섰다. 결국 다시 ‘삶이란 무엇인가’이다.

동은 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dosol33@hanmail.net

 

[1497호 / 2019년 7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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