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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양해의 ‘도림백낙천문답도(道林白樂天問答圖)’

기자명 김영욱

악은 짓지 말고, 선은 받들어 행하라

도림 선사 일러준 불법의 대의
지식과 현실 경험의 차이 설명
간극 줄어들수록 마음 맑아져

양해 作 ‘팔고승고사도(八高僧故事圖)’ 중 ‘도림백낙천문답도’, 26.6×66.4㎝, 비단에 채색, 13세기, 중국 상하이박물관.
양해 作 ‘팔고승고사도(八高僧故事圖)’ 중 ‘도림백낙천문답도’, 26.6×66.4㎝, 비단에 채색, 13세기, 중국 상하이박물관.

諸惡莫作(제악막작)
衆善奉行(중선봉행)
自淨其意(자정기의)
是諸佛敎(시제불교)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많은 선은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마음을 맑게 하니 이것이 모든 부처의 가르침이라네.’ ‘법구경(法句經)’ 중 제183번째 게송.

진망산(秦望山)이라는 산이 있다. 험한 봉우리와 푸른 산허리의 절경으로 저장성에서 이름난 산이다. 열국을 평정한 진의 시황(始皇)이 천하를 돌며 위무할 때 이 산에 올랐다. 시황이 정상에서 남해를 보았다고 하여 ‘진망산’으로 불렸다. 당시 승상 이사(李斯)가 289자의 글을 새긴 비가 ‘진회계산각석명(秦會稽山刻石銘)’이다. ‘이사비(李斯碑)’가 그것이다. 산의 다른 이름이 ‘각석산(刻石山)’인 이유다. 뛰어난 풍광은 산의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렇게 산은 이름난 묵객과 시객들을 품게 되었다.

때는 당 목종의 장경(長慶, 821~824) 연간이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백거이(白居易; 白樂天, 772~846)가 항저우의 지방관을 자처했다. 자사로 부임한 그는 진망산에 머무는 조과 도림(鳥窠道林) 선사의 이름을 듣게 되었다. 선사가 소나무 위에서 자리를 잡았는데 그 모습이 새가 둥지를 튼 것과 같다고 하여 ‘조과’라고 했고, 그의 곁에 늘 까치가 머물렀다고 하여 작소(鵲巢) 화상이라 했다. 어느 날, 백거이가 도림 선사를 방문했다.

양해가 그린 한 폭의 작은 그림은 그날의 모습을 담고 있다. 시종 한 명을 데리고 간 백거이가 선사를 만나 공손히 두 손을 모아서 예를 갖추었다. 선사는 낭떠러지에 솟아난 소나무 위에 앉아있었다. 백거이가 선사의 자리가 매우 위태롭다고 말하니, 선사는 도리어 자사가 더 위태롭다고 대답했다. 그 연유를 물어보니, 선사는 “장작과 불이 서로 사귀듯이 식(識)의 성품이 멈추지 않으니, 위험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백거이의 입이 열렸다.

“불법의 대의가 무엇입니까?”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많은 선은 받들어 행하라.”
“세 살짜리 아기도 그런 것은 압니다.”
“세 살짜리 아기도 말은 할 수 있으나, 팔십에 이른 노인도 행하기는 어렵다네.”

누구나 선악을 구별하고 인의예지를 안다. 하지만 누구나 선과 악을 가려서 행하고 인의예지를 실천하지 못한다. 관념적인 지식과 현실적인 경험의 차이가 그러하다. 백거이가 지닌 위험은 관념적인 지식인 앎이고, 도림 선사의 한 마디는 현실적인 경험인 삶이다. 앎과 삶의 간극이 그러하다.

선사의 말은 ‘법구경’에 나온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많은 선을 받들어 행하라. 앎과 삶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수록 마음이 점점 맑아진다. 이것이 부처의 가르침이다. 선사의 한 마디가 울려 퍼지는 진망산의 가을빛이 부처의 마음처럼 참 맑기도 하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98호 / 2019년 7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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