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배우식의 ‘북어’
106. 배우식의 ‘북어’
  • 김형중
  • 승인 2019.07.31 15:02
  • 호수 14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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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삶 속 소재를 깊이 통찰한 시인
북어 눈 통해 중생 허위 해학적 노래

불립문자·교외별전 설법인 듯
수행승처럼 눈을 부릅뜬 북어
자기 모든 것 바친 살신성인은
중생들을 위한 아낌없는 보시

사람한테 잡혀가도 입을 크게 벌리고만 있으면 산다고 아버지한테
귀 닳도록 들었습니다. 사람한테 잡혀가도 눈만 크게
부라리고만 있으면 사람들이 겁먹고 도망간다고, 눈을 똑바로
뜨고만 있으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며 도망간다고
아버지한테 귀빠지게 들었습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눈 하나
깜박대지 않고 크게 뜨고 있는 내가 무섭지요. 벌벌 떨리지요?


명태의 이름은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명천(明川)에 사는 어부 중에 태씨(太氏)가 처음  잡은 고기라서 그 고기 이름을 명태라고 불렀다는 설과, 함경도에서 명태간으로 기름을 짜서 등불을 환하게 밝힌 데서 ‘크게 밝히다’란 뜻의 ‘명태(明太)’ 호칭이 생겼다는 것이다.

명태를 북어(北魚)라고 부른 이유는 동해 북쪽 바다에서 잡히는 고기란 뜻에서 생긴 것이다. 보통 생것을 명태라고 하고, 말린 것은 북어(건태)라고 한다. 명태새끼를 노가리라고 한다. 명태는 암컷이 약 10만~100만 개의 알을 낳고, 그 위에 수컷이 정자를 뿌려 수정시키는 체외수정이 일어난다. 이 알이 바닷물을 떠다니다가 9~28일이 지난 뒤에 부화한다. 노가리의 어원은 ‘노가리하다(농업용으로 경지 전면에 씨를 흩뿌리는 일)’에서 생긴 말이 아닌가 유추해 본다. 

우리나라 밥상에서 명태만큼 친숙한 생선은 없다. 술안주로도 으뜸이다. 술꾼들은 소주를 마시면서 노가리를 깐다. 노가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상사의 험담도 늘어놓고, 술에 취하여 앞과 뒤가 맞지도 않는 말을 횡설수설한다. 

명태는 겨울 추위에 바람에 얼렸다가 바람에 말리는 과정을 되풀이 하여 누런 황태가 생산이 되고 하얀 백태, 검은 흑태가 만들어진다. 소금기가 짭짭하게 관리된 먹태도 있다. 잡아서 바로 얼음에 얼리면 동태, 그냥 생물이면 생태가 되고, 반만 얼리면 코다리가 되고, 코다리찜용으로 쓰인다. 명태의 알젖인 명란젖도 최고의 밥도둑이다.

물고기는 잠을 잘 때도 모두가 눈을 뜨고 잔다. 그래서 불가에서 수행자가 물고기처럼 불철주야 잠을 자지 말고 공부를 하라는 것을 상징하는 목어(木魚) 즉, 목탁(木鐸)을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 불구(佛具)가 있다.

물고기 가운데에서도 특히 북어는 살아서 물속에서는 물론이고, 죽어서 불속에 구워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마치 “너는 나를 어쩌지 못해” 하면서 두 눈을 부릅뜬 형상이다. 배우식(1955~현재) 시인도 이 모습을 보고 ‘북어’란 시를 형상화한 것이다. 술을 마실 때는 누구나 용심이 생겨서 마치 북어처럼 똥배짱이 생긴다.

북어는 말이 없다. 술꾼들의 헛소리를 끝없이 들을 뿐 자신은 한 마디 말이 없다. 침묵이다. 마치 수행승처럼 오직 말없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을 뿐이다. 북어의 특징은 대가리가 크고 눈이 크다.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을 설법하고 있다.

북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술꾼들의 밤마다 안줏거리가 된다. 보살의 살신성인이다. 자신의 몸을 추위에 얼리고 말리고, 굽고 찌고 끓여서라도 아침이면 술꾼의 속풀이 해장국으로 나타난다. 가없는 중생들을 위하여 아낌없는 보시를 되풀이 한다.

마치 촛불이 자신을 태워서 불빛을 밝히듯이 명태는 중생에게 자신의 몸을 100% 무주상보시하는 한없는 베풂으로 생을 마감한다. 보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시인은 ‘북어’란 시에서 명태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 중생의 허위와 허풍을 북어의 눈을 통해서 해학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눈을 똑바로 뜨고만 있으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며 도망간다고 아버지한테 귀빠지게 들었습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눈 하나 깜박대지 않고 크게 뜨고 있는 내가 무섭지요. 벌벌 떨리지요?” 시적 감각이 순수하고 위트가 있다.

배우식의 시는 일상 삶속의 소재를 가지고 깊은 사색과 통찰을 통하여 사람들이 살아가는 참모습을 상상과 해학으로 읊고 있다.

김형중 동대부여고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99호 / 2019년 7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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